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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정산주기, 독과점 강화 법안” vs “충분히 긴 시간”…학계·정부 평행선

왕진화 기자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수수료는 낮추고, 배상 책임은 더 지라고 하면 기업은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지금도 정부는 기업에 충분한 부담과 압력을 줄 수 있고, 규제법도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현재 플랫폼 기업들의 주가는 최대 주가의 절반이 됐고, 규제 때문에 투자 매력이 상실됐습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지 않으니, 한국 기업의 밸류업으로도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입법조사처·플랫폼법정책학회 공동 주최 특별세미나 ‘플랫폼 규제 법안의 주요 쟁점과 전망’ 종합토론에서 이같이 밝히며 “정부는 당장 옳아 보이는 규제가 발생시킬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해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법안 및 거래 공정화 법안의 각종 규제안들 부작용이 신생 플랫폼 기업 사업에 가장 큰 피해를 주고, 대기업 중심 집중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규제를 만드는 정책당국은 적반하장”이라며 “이미 기존 권한으로 사태가 커지기 전 수습이 가능했는데도, 플랫폼 규제의 문제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플랫폼 규제 문제가 아닌 특정기업의 부도덕한 처신에 대해 알고도 일찍 조치하지 않았던 당국 행정 문제”라고 꼬집었다.

온라인 중개거래 사업자를 대상으로 정산주기를 20일 내로 당기는 법안에 대해서도 유 교수는 플랫폼 성장을 저해시킬 수밖에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18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발표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안 방향에 따르면 국내 중개거래 수익(매출액)이 100억원 이상이거나 중개거래 규모(판매금액)가 1000억원 이상인 온라인 중개거래 사업자는 소비자가 구매를 확정한 날로부터 20일 이내 직접 혹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가 관리하는 판매대금을 입점 사업자와 정산해야 한다.

이같은 의견은 벤처기업협회가 앞서 밝혔던 “이커머스 플랫폼이 사업 확장과 혁신을 추진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관련 산업 전체의 줄폐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입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 교수는 “정산주기를 20일 이내로 당기면 당장 신생 기업들이나 성장해야 할 플랫폼 기업들은 맞추기가 어렵다”며 “쿠팡 등 대기업은 (정산주기를) 맞출 수 있겠지만 마이너한 플랫폼들은 이를 못 맞추기 때문에 독과점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설민 공정위 온라인플랫폼정책과 과장은 판매대금 정산에 있어 20일도 충분히 긴 시간이라고 반박했다.

박 과장은 “산정되는 시점의 시작점이 청약철회 기한의 만료일(구매확정일)로부터 20일인데, 보통 전자상거래법에서 청약철회 기한이라고 하면 최소 7일에서 많게는 30일에서 3개월까지 이어지게끔 예외 규정들이 촘촘히 달려 있다”며 “그런 것까지 고려했을 때 사실상 입점 사업자가 물건을 보내고 나서 돈을 받는 기간은 최소 27일에서 길게는 두세 달까지 넘어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플랫폼 기업들의 주가가 최대 주가의 절반이 됐는데, 이 이유가 규제 효과 때문이라는 (유 교수 의견) 것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며 “최근 공정위가 5년간 각종 사업자들을 제재하면서 부과했던 과징금 총액 중 순수 해외 사업자 비율이 30%가 넘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과장은 당초 내놨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지배적 플랫폼’ 매출액 기준 방향이 4조원에서 3조원으로 하향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9일 입법방향 당정협의회 및 공정위는 연초 추진해왔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을 현행 공정거래법에 반영하는 식으로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기존 규율 대상을 ‘사전 지정’에서 ‘사후 추정’으로 변경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 추정요건은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 추정 기준보다 강화해 독점력이 공고한 경우로 한정하되, 스타트업 등의 규제부담 등 우려를 고려해 연간 매출액 4조원 미만 플랫폼은 규율 대상에서 제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17일 강민국 의원(국민의힘)실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위원들은 연간 매출액 기준을 기존보다 하향 변경하는 데 합의했다. 이렇게 될 경우 배달의민족(배민)이 지배적 플랫폼으로 오르게 된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부나 국회에서 발의했던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법안 전반을 돌아보고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법안을 비교 분석하면서 ‘규제’ 자체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부나 국회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일부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방향에서의 사전 규제(사전 지정)와 사후 규제(사후 추정) 의미를 다르게 알고 쓰는 경우도 있다며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후적으로 적용대상 및 법 위반 여부 판단에 상당한 정도의 분석이나 규범적 평가가 필요한 지의 여부에서 개념이 나뉘게 된다”며 “즉, 사전에 특별히 무슨 판단의 필요 없이 사전에 적용 대상이나 법 위반 여부를 명확하게 정할 수 있으면 그건 사전 규제이고 사후적으로 그 법 적용 대상이나 법 위반 판단에 어떤 상당한 분석이나 규범적 평가가 필요하면 사후 규제”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사전 규제가 적합한 상황은 ▲규제당국이 예상되는 위험 내용과 정도 및 예방, 시정 수단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예측 능력을 갖췄을 때 ▲별다른 사후적 분석이나 규범적 평가가 필요 없이, 거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와 유형을 사전적으로 도출 가능할 때 ▲입법기술적으로 충분히 명확하게 위반행위 유형을 기술할 수 있을 때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한국 디지털 시장에 어떤 유형의 규제가 적합한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구체적인 법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무엇을 위한 사전 규제인지, 국내 디지털 시장이 경쟁법적 사후 규제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독과점인지, 문제된 행위 유형들이 본질적으로 경쟁제한적인지, 사전 규제를 통해 법집행상 효율성 및 신속성을 실현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사우대나 끼워팔기, 최혜대우 등의 경쟁 효과는 양면적이어서 면밀한 사실적 분석과 규범적 평가가 필요하다”며 “특히 배타적 거래는 상당한 경쟁촉진 개연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행위들을 입법 정책적으로 규제하는 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왕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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