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고인물’ 비아냥듣는 KB국민은행… DBS처럼 환골탈태 가능할까 [진단⑤]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KB국민은행이 현재의 IBM 메인프레임 기반의 주전산시스템에서 탈피, 오픈환경 전환과 클라우드 대응을 위해 추진했던 차세대시스템(일명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에 경고등이 켜졌다.
당초 2027년 이전까지 총 3단계로 계획됐던 이 차세대시스템 사업은, 앞서 지난 7월 완료된 2단계 사업 결과가 저조한 것으로 보고됨에 따라 국민은행은 새로운 선택을 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업계가 예상하는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국민은행이 프로젝트를 백지화하고 x86기반에서 가동되는 '제3의 코어뱅킹' 패키지를 찾아 2단계 사업을 다시 하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는 당초 계획을 수정해 기존 ‘IBM 메인프레임’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면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3단계 사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민은행은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당초 의욕을 가지고 목표로 잡았던 오픈 환경 전환이 아니기 때문에 ‘용두사미’라는 비판을 받겠지만 현실적으론 특별히 다른 묘수는 없어보이기때문이다.
2022년부터 시작된 PoC(개념검증)기간을 포함해 거의 3년간 투입된 비용 등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기존 메인프레임 체계위에서 제한적인 혁신 성과라도 이끌어내는 것이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안전한 선택을 하게되더라도 국민은행이 향후 감당해야 할 재무적‧기술적 리스크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점은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IBM 의존도' 줄인 싱가포르 DBS의 사례… 국민은행에게 주는 영감
이런 관점에서 국민은행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례가 바로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글로벌 대형은행 ‘DBS’이다.
국책은행인 DBS(싱가포르개발은행)는 한 때 대표적인 IBM의 레퍼런스였다. 하지만 현재 DBS는 IBM 의존도를 대폭 줄이고 자체 IT인력 비중을 높이면서 디지털전환(DX)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얘기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BS는 지난 2002년, IBM과 10년간의 토털 IT아웃소싱 계약(2002~2012년)을 체결한다. 당시 계약 규모는 무려 12억 달러(한화 약 1조6000억원)에 달할 정도의 초대형이었다.
계약에 따라 IBM은 DBS의 IT인프라 관리를 비롯해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운영 유지보수, 네트워크 서비스, 데이터센터 운영 등을 맡았다.
그러던중 지난 2010년 7월, 3시간 넘는 치명적인 전산중단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싱가포르 금융당국은 DBS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으며, DBS의 대외 신뢰도는 크게 추락했다.
이 사건이후 DBS는 지난 2013년 IBM과의 IT아웃소싱 재계약에선 보안 등 일부 업무만을 제외하고 아웃소싱 대상 범위를 대폭 축소시켰다.
물론 주전산시스템은 여전히 IBM 메인프레임이지만, DBS는 자체 IT인력 비중을 늘렸고 동시에 아마존웹서비스(AWS) 등과 퍼블릭 클라우드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등 위험을 분산시켰다.
그러나 당시 DBS가 IT아웃소싱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자체 IT 운영 비중을 높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다름아닌 특정 IT업체에 휘둘릴 수 있는 '밴더 종속성'의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차원이다.
DBS측은 기존 IBM 메인프레임 체제하에서 '디지털전환'이 광범위하게 진행될수록 IBM에 지불해야할 라이선스(사용료) 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보았다.
즉, IBM 메인프레임에 올려야 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비용 구조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예상했으며 이는 DBS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는 '오픈 환경'으로 주전산시스템 체제를 전환하려한 국민은행의 당초 의도와 맥락이 같다. 최근 몇년새 비대면 거래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급증하고 있고, 시스템 성능과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는 국민은행으로서는 이같은 DBS의 사례가 반면교사일 수 있다.
결국 DBS는 이를 해결하기위해 오픈소스 환경이 강화된 IBM 메인프레임 체계로 전환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오픈소스 전문가들을 비롯해 AI 및 빅데이터, 클라우드 분야 전문 인력들을 중심으로 자체 IT인력을 늘려나갔다.
DBS의 사례를 비춰볼 때, 국민은행으로선 ‘IBM 메인프레임’으로 잔류를 결정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같은 ‘밴더 종속성’ 문제 탈피라는 핵심 과제는 여전히 남게되는 것이다.
결국 국민은행이 이 '밴더 종속성'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앞으론 보다 더 치열하고 본질적인 IT혁신 과제가 될 전망이다.
올해들어 국민은행은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과는 별개로, 주전산시스템의 업무 비중을 분산시키기위한 ‘코어뱅킹 다운사이징(슬림화)’사업을 진행중인데 이런 제한적인 접근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이미 국민은행은 경쟁 은행 대비 월등히 많은 연간 IT비용때문에, IT운영 효율성측면에서의 경쟁력이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정보보호공시 포털에 공개된 국민은행의 2023년 총 IT비용은 5686억원으로, 신한은행(3788억원)보다 무려 50%나 많다.
이같은 두 은행의 IT비용 차이는 IT인력 규모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국민은행의 IT인력 구조가 오픈환경 기반의 주전산시스템을 운영중인 타 은행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분석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국민은행은 그동안 국내 은행권에서는 유일하게 오픈환경으로 전환하지않고 ‘IBM 메인프레임’을 고집했다는 이유때문에 IT부문에 있어서는 ‘고인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국민은행이 ‘코어뱅킹 현대화’ 프로젝트의 성패 여부와는 별개로, 과연 DBS와 같은 과감한 IT 혁신과 '밴더 종속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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