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한다. 약 3년8개월 만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공급망 리스크 해소에 대한 기대로 나뉜다.
◆尹 방문에 맞춰 종료된 日 수출규제
1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4일부터 사흘 동안 일본 경제산업성과 ‘제9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를 개최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산업부는 “양국 수출관리 당국의 체제, 제도 운용, 사후관리 등에 대해 긴밀한 의견교환이 있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3개 품목(불화수소·불화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 관련 수출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해당 내용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양국은 ‘국가 카테고리(화이트리스트)’ 조치 역시 원상회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리자 2019년 7월 반도체 소재 등 수출 제재로 보복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악화한 한일 관계는 윤석열 정부 들어 분위기 반전이 이뤄졌다. 지난 6일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제3자 변제’ 방안이 공개됐고 수출규제 협의 기간 WTO 분쟁해결절차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일련의 과정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마무리됐다. 두 사람은 양국 경제 협력 확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은 ‘한일 미래 파트너십’을 선언하기도 했다.
◆탈일본 현재진행형인데…소부장 지원 어떻게 되나
이제 시선은 반도체 업계로 향한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은 소부장 육성을 본격화했다. 동진쎄미켐, 솔브레인, 램테크놀러지 등이 소재 국산화를 이뤄냈고 부품과 장비 쪽에서도 내재화 성과가 났다. 이에 일본 기업들은 한국에 생산거점을 마련하는 등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 붙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을 “일본의 조치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태계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도쿄일렉트론(TEL), 후지필름, 스미토모화학, 쇼와덴코, 아데카 등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일제히 국내 투자를 늘렸다. 공교롭게도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ASML, 램리서치, 자이스, 머크 등 미국과 유럽 업체들도 연이어 한국행을 택했다.
앞으로 관건은 반도체 관련 정책이다. 일각에서는 양국 화해 무드가 소부장 국산화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자체 조달이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초고순도 또는 고부가 제품에서는 일본 의존도가 높다. 아직 진행해야 할 국산화 작업이 많다는 의미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수출규제 동안에도 국내 반도체 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절차가 늘어난 부분이 있긴 했으나 필요한 소재, 장비 등을 적시에 차질 없이 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관점도 있다. 한일 반도체가 시너지를 내면 국내 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한국무역협회는 “향후 한일 교역이 상호 규모에 걸맞게 회복되면 교역 증진뿐 아니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의 투자, 기술협력이 늘어나 양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