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웹케시 석창규 사장, 그가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박기록 기자

[IT전문 미디어블로그 = 딜라이트닷넷]

 

지난 28일,‘웹케시가 한국HP의 함기호 대표 등 6인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 내용이 파격이었습니다. 대형 IT프로젝트 입찰과정에서, 대개 경쟁사의 불공정행위를 트집잡아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동일한 컨소시엄 파트너를 고소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240억원 규모로 발주된 ‘산업은행 홈페이지 및 인터넷뱅킹 시스템 재구축’ 사업에서 컨소시엄 파트너였던 한국HP가 웹케시와의 사전협의를 깨고 제안가를 300억원 이상으로 높게 제시함으로써 ‘고의 탈락’했다는 것이 웹케시측의 주장입니다.


만약 웹케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한국HP가 갑자기 합의를 깼는지, 그 이유에 관심이 모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체는 없지만 이번 사업을 수주한 삼성SDS와 한국HP간의 모종의 밀약설 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크게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사견입니다만, 웹케시의 고소로 인해 법정공방으로 비화되긴 했지만 웹케시가 소기의 성과를 얻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입니다.


만약 한국HP가 웹케시측과 사전 합의한대로 200억원 이하의 가격을 제안했다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이번 산업은행 프로젝트 수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대 이익의 상실’이 완전히 성립되기 어려운 사안이죠.




그렇다면 한국HP를 고소한 웹케시 석창규 사장의 진짜 의도(?)가 궁금해집니다.이번 사태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한국HP 제소건은 개인적으로 석 사장의 가슴속에 그동안 켠켠히 맺혔던 분노가 일시에 분출된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한국HP는 석사장에게 그냥 ‘분노의 소재’가 됐을 뿐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지난 28일 오전, 웹케시는 이번 건을 터뜨리기위해 각 언론사 담당 기자들을 여의도 본사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에 앞서 웹케시측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한국HP가 아니라 산업은행이었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으로서는 애꿎게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웹케시에게도 사실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산업은행뿐만 아니라 기존 다른 은행 고객사들도 웹케시가 이렇게 강하게 나가는 것을 어쩌면 내심 불편하게 생각할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경위야 어떻든 이번 일이 외부에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웹케시가 앞으로 영업하는데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웹케시의 기자 간담회는 예정대로 강행됐습니다. 석창규 사장은 직접 나와 ‘SI(시스템통합)사업을 안할 수도 있다’며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이 내용은 금융권과 IT업계에 널리 알려졌고, 그 다음날인 29일 웹케시 사무실에는 이런 저런 내용을 묻는 전화가 고객사들로 부터 적지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석 사장은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그렇다면 석 사장을 이렇게‘분노’케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견이지만 그의 분노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은행권 e뱅킹 사업에서 차곡 차곡 쌓인 응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2001년 웹케시가 설립될 당시부터 석 사장과 알고 지내왔습니다만 그가 힘들어 한 것은 최근 1~2년전 부터 입니다. 특히 국내 IT서비스 빅3가 금융권 e뱅킹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석사장의 고민은 커졌습니다.


지난해 석사장은“(경쟁사들이) 실체도 없는 것을 가지고 다 된다고 얘기하는데 속상하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형 IT서비스업체들의 횡포에 적지않게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실제로도 최근 1~2년간 은행권의 ‘모바일 플랫폼(MEAP)’ 구축 사업에서 웹케시는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웹케시에게 가격경쟁력, 마케팅 및 영업력 등 여러 부분에서 대기업들과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기술력’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석 사장은 국내 e뱅킹시스템 시장이 ‘불합리한 발주처 입찰 관행’,‘출혈 경쟁의 유도’, ‘강자의 횡포’등 기술외적인 부분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만도 한 것이, 웹케시가 지난해 입찰에서 탈락했던 한 시중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결국 웹케시측에 다시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하게 된 상황도 있었습니다.


석창규 사장은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부산대 전산통계학과)의 CEO입니다. 거기에다 보수적인 은행원(동남은행, 부산은행) 출신이기도 합니다. 은행원 시절, 전자금융업무에만 10년이 넘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IMF로 인한 금융권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지난 2001년 웹케시를 설립해, 10년간 한눈팔지 않고 한우물만 팠습니다. 단촐한 사업 포트폴리오만으로 매출액 677억원(20011년), 직원수 253명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뚝뚝하지만 가식없는 웃음, 그리고 금융권 IT관계자들이 모여있는 어려운 자리에서도 직설적인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돌쇠’같은 기질이 지금까지 그를 성공으로 이끈 매력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석사장의 그런 ‘순진함’ 혹은 ‘우직함’이 이제는 웹케시의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제 웹케시와 같은 불륨의 회사라면,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런 저런 복선을 깔고, 때론 안면을 몰수하고 고도의 정치적인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약삭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또 언제 ‘뒷통수’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10년전과 비교해 시장환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석 사장의 속깊은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애잔함이 짙게 묻어납니다.  


[박기록 기자의 블로그= IT와 人間]


 

박기록 기자
rock@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