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정책

개인식별번호,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활용할까

이민형

[디지털데일리 이민형기자] 세계 어느 국가나 편의를 위해 국민 개개인에 식별번호를 부여해 활용한다. 하지만 개인식별번호를 어디까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점은 각국의 입장이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열린 ‘제2회 개인정보 국제학술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미국, 독일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인식별번호의 운영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히로시 미야시타(Hiroshi Miyashita) 교수는 “일본은 한국의 주민번호 제도와 개인정보보호법을 적극 참고해 지난해 법안을 수립했으며 2016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주 한후아(Zhou Hanhua) 교수는 “중국은 최근 발생한 개인정보침해 사건으로 인해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을 강화할 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존 라일리 교수(미국)와 요그 엔너샤트(Jörg Ennuschat) 교수(독일)는 현재 쓰이고 있는 개인식별번호가 특정 상황, 기관만 사용하는 것이므로 개인정보침해에 대한 문제소지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도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68년 주민등록법을 제정하면서 국민 개개인에게 부여한 주민번호를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현재가지 쓰고 있다.

◆일본 “한국의 개인정보·개인정보보호법제 뛰어나”=일본은 지난해 5월 ‘사회보장’과 ‘세금 분야’에 한해 개인번호제(번호법)를 수립했다.

미야시타 교수는 “당초 일본은 개인번호제를 프라이버시의 문제로 반대해왔으나 2007년 약 5000만명의 연금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사라지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보장과 세금 분야에 개인번호제가 수립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6년 1월부터 이용될 예정인 일본의 개인번호제도는 각종 행정서비스에서 서류제출을 생략하고 소득의 정확한 파악에 의한 탈세 방지 등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번호법 부칙에는 앞으로 민간의 개인번호 이용을 가능케하는 사항이 규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법률이나 과제도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미야시타 교수는 “일본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참고해 ‘특정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수립했다. 위원회는 독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개인번호의 부정 이용을 감시하기 위헤 권고, 명령, 입회검사 등의 권한을 가진다”고 전했다.

또 일본의 특정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현재는 번호법에서 규정하는 사회보장과 세금 분야에만 한정돼 있으나 형후 개인정보보호 전 분야에 걸쳐 감시, 감독할 수 있도록 강화된다.

◆중국 “아직 개인정보보호 초기단계”=중국은 지난 1983년 주민등록카드법 시행 이후 2001년 IC카드가 사용되기 이전까지는 개인정보보호는 뒷전에 두고 있었다. 최근까지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한 소송은 불가능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개인정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이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면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주 한후아 교수는 “주민등록카드법 초기에는 개인정보보호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2009년 형법 개정을 하면서 새로운 조항을 신설했는데, 국가기관·금융·전산 등에서 습득한 개인정보를 오남용할 경우 처벌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형법 개정 이후 중국에서는 개인정보보호 의무자의 범위가 확대됐으며 사후적 구제에서 사전적 구제로 전환됐다. 또 제재의 범위도 민사적 제재에서 형사적 제재로 확대됐다“

이러한 과정 중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왕페이 vs. 장레이’ 사건이다. 왕페이의 부인은 왕페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한다. 왕페이 부인의 친구인 장레이는 인터넷에 왕페이에 대한 신상정보를 올리게 됐는데, 이를 두고 법원이 장레이가 왕페이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한후아 교수는 “중국의 개인정보보호 관련법들이 점차 발전하고 있으나 여전히 입법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있다”고 말했다.

◆미국·독일 “개인식별번호는 필요한 영역에서만 사용돼야”=독일에는 일반적 개인식별번호는 존재하지 않고 영역특수성을 가진 분야에만 일부 적용돼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보험번호, 연금보호번호, 조세식별번호 등이 그것이다.

반면 독일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증명번호는 일생동안 연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식별번호로 보기가 힘들다.

요그 엔너샤트 교수는 “독일은 조세식별번호와 사회법역역에서 각종 개인식별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보의 취급은 엄격히 제한되며 다른 영역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말해 독일은 통일적인 사회보험번호를 두지 않고 필요한 영역에만 별도의 법적 근거를 통해 개인식별번호를 두고 있다. 이는 개인식별번호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독일은 향후에도 이러한 정책을 유지해 우리나라의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식별번호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엔너샤트 교수는 강조했다.미국의 사회보장번호 역시 개인식별번호로 쓰이고 있으나 민감정보로 사용을 제한하는 것보단 오히려 사회적 편리에 기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존 라일리 교수는 “사회보장번호는 행정관리와 납세의 목적으로 널리 쓰이다가 현재는 자동차 면허 취득, 납세, 은행 계정 설립, 의료 서비스 등 미국 사회에서 기본이 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설명했다.

사회보장번호는 우리나라의 주민번호와 유사하다. 하지만 미국은 일찍부터 사회보장번호의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 사회보장번호의 생성방식을 변경하는 등 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라일리 교수는 “사회보장번호는 개인식별번호라고 보기보다는 신원확인과 인증을 위한 수단”이라며 “미국에서는 사회보장번호 보호를 위해 다양한 법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형 기자>kik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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