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무너진 엘피다, 비상하는 SK하이닉스…기술·근성의 차이!

한주엽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 전 사장은 지난해 일본 주간동양경제와의 인터뷰에서 “1년만 버텼다면 엘피다는 대단한 이익을 내는 회사가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버틸 수 있었다면, 마이크론에 흡수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엘피다가 마이크론에 인수됐던 지난해 D램 시장은 ‘호황’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간의 경영설명회에서 엘피다가 연속 적자를 내는 이유를 환율 변동, 즉 엔고에 따른 것이라고 변명해왔다. 그러나 D램익스체인지 같은 조사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원화 및 엔화로 환산한 D램 기준가격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규모 적자를 낸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력 차이에 따른 원가경쟁력 부재에서 왔다는 의미다. 유키오 전 사장이 엘피다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SK 입장에선 비교 상대로 놓인다는 것 조차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2000년대 초반 SK하이닉스와 엘피다는 닮은꼴이었다. 닷컴 버블이 한창이었던 1990년대 후반, 제조업 천시 풍조와 맞물려 한국과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구조조정에 시달렸다. 외환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에선 정부 주도로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이 이뤄져 하이닉스로 통합됐다. 비슷한 무렵 일본에선 NEC와 히타치가 D램 사업을 통합해 엘피다를 세웠다.

2000년대 초반 하이닉스의 대내외 사업 환경은 엘피다보다도 나빴다.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의 공동 관리를 받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헐값에 인수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노조와 이사회가 이를 결사 반대해 위기를 넘겨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하이닉스가 정부(채권단)의 부당한 지원을 받고 있다며 보복관세(상계관세)를 부과해 숨통을 조여왔다. 이 시기 SK하이닉스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것이라 봤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 14조1650억원, 영업이익 3조38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였다. 시장조사업체 IHS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순수 영업으로 창출된 매출액 가운데 성장률 1등 기업은 SK하이닉스였다. 반도체 소자 업계의 매출액 순위도 인텔, 삼성전자, 퀄컴 등에 이어 4, 5위에 랭크된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엘피다는 마이크론에 넘어가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SK하이닉스는 건재함을 넘어 지속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던 두 기업의 희비가 이처럼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기술력과 근성의 차이에서 온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 SK하이닉스의 경쟁사들은 300mm 웨이퍼 장비를 도입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 했다. 재무 여력이 없었던 SK하이닉스는 낡은 200mm 장비를 리모델링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액은 경쟁사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지만 기술력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 결과 2004~2005년 SK하이닉스의 D램 및 낸드플래시 원가는 세계 최저였으며 월간 웨이퍼 생산량과 메모리 비트(bit) 성장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기술력과 근성을 잘 설명해주는 사례다.

SK그룹의 일원이 된 이후 SK하이닉스는 질적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영업이익률 1위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다. 지난 2분기와 3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28%, 28.5%로 업계최고 자리에 올랐다. 영업이익률이 높아진 것은 미세공정 전환, 수율 개선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제품 측면에서도 최초 제품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20나노급 8기가비트(Gb) 저전력 모바일D램(LPDDR3)과 6Gb LPDDR3의 개발 및 양산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다. 8Gb LPDDR3 메모리를 4단으로 적층하면 기존 4Gb 제품으로는 구성할 수 없었던 4GB(기가바이트, 32Gb)의 고용량 제품을 한 패키지에서 구현할 수 있다. 64비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대중화되는 2015년에는 4GB 용량이 주력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고부가가치 모바일 D램 시장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잡았다는 평가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16나노 공정을 적용한 1세대 제품을 양산한 데 이어 칩 크기를 더 줄여 원가경쟁력을 강화한 2세대 제품도 업계 최초로 양산에 나섰다. 회사는 이 제품의 특성과 신뢰성을 기반으로 MLC 기준 단일 칩 최대 용량인 128Gb(16GB, 16기가바이트) 제품 역시 개발 완료했다. 이 제품은 조만간 양산될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는 “SK그룹의 안정적 재무력과 ‘기술’ 및 ‘근성’의 SK하이닉스가 만났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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