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터넷은행①] 규제에 좌절된 인터넷 전문은행, 새해엔 비상할까
2000년대 한번 추진되다 좌초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이 다시 검토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핀테크(Fintech) 열풍에 힘입어 정부도 호의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서비스되고 있지만 활성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제라도 인터넷 전문은행을 통해 서비스와 기술력을 확보하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디지털데일리는 3회에 걸쳐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둘러싼 쟁점과 발전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지난 2000년대 초반, 닷컴열풍은 금융권에도 예외없이 몰아쳤다. 은행권이 인터넷뱅킹서비스를 선보이자마자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고 불과 2, 3년만에 e뱅킹 고객 1000만명 시대로 진입했다.
풍부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세계 최고수준의 높은 PC보급율, 똑똑한 20대~40대 유저 그룹의 존재는 ‘인터넷 전문은행’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요소로써 충분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말 그대로 오프라인 지점 없이 인터넷에서 은행업무 대부분을 서비스하는 은행을 말한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내에선 금융실명제라는 현실의 벽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 2002년 SK텔레콤, 롯데 등 대기업과 안철수연구소, 이네트퓨처시스템 등 벤처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 브이뱅크라는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당시 금융실명제법 적용 문제 등으로 인해 중도에 흐지부지된 바 있다.
또한 국내 시장확대를 노렸던 HSBC은행이 지난 2000년대 중반 오프라인(지점)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온라인 전문은행 서비스에 나선 바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금융실명제때문에 국내 저축은행 등과 연계한 실명확인 서비스를 제시했지만 고객들이 이를 불편하게 생각한 탓이다.
또한 당시만하더라도 일반 사용자들은 금융서비스 채널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전환하는 것에 어색해했다. 일종의 문화적 지체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기존 PC중심의 e뱅킹서비스 채널이 스마트폰뱅킹으로 다시 한번 진화되면서 이제는 완전히 ‘온라인 증심의 금융거래’가 일반화됐다. 여기에 최근 다양하고 강력한 모바일 결제 플랫폼이 제시되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의 등장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9월말 현재, 국내 모바일뱅킹 등록고객수는 5756만명이다. 전체 인터넷뱅킹 등록 고객 중 모바일뱅킹 등록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56.9%인데, 이는 금융거래가 모바일뱅킹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 채널로 완전히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부활한 인터넷 전문은행 청사진…순항할 수 있을까= 거의 15년만에 부활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논의가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국내 금융산업에 적지않은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터넷 전문은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금융실명제 논쟁외에도 최근 국내 금융권에서 일고 있는 대폭적인 인력 구조조정 논의와 맞물리면서 인터넷 전문은행 청사진이 자칫 금융 노사간의 정치적 쟁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변수를 일단 별개로한다면, ‘핀테크’로 대표되는 금융과 IT의 융합 서비스가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 IT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부의 규제완화 트랜드와 맞물려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게 금융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무엇보다 금융 당국이 적극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따른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나서면서 금융업계에선 인터넷 전문은행이 빠르면 내년에 탄생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 신제윤 위원장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업계는 다시 한번 기대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 제도적 난관은 무엇?= 시장의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현실적으로 풀어야할 숙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일단 인터넷 전문은행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은행업법 상 은행 허가 최소자본금 규정과 금산분리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 또 금융실명법도 일부 개정돼야 하는 상황이다.
최소자본금 규정은 현재 전국은행은 1000억원, 지방은행은 250억원으로 요건이 정해져 있다. 또, 실명확인의 경우 원칙적으로 금융상품 가입을 위해선 금융사 직원과 고객이 대면을 통해 가입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최근 찾아가는 금융서비스 등 모바일 금융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지난 11월 말 금융실명법 일부 개정을 통해 금융회사 간 위탁을 통한 실명 확인을 허용하면서 은행원과 고객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상품 가입이 가능해질 수 있는 법적 기초는 마련됐다.
다만 금산분리 원칙은 다소 까다롭다. 금산분리는 대형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4% 초과 소유를 제한하는 법으로 이를테면 ‘삼성은행’과 같은 대기업 은행 설립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금산분리는 최근 대기업에 대한 국민적인 감시 분위기가 확대되면서 정부로서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여신업무를 소액대출로 한정해 거액 기업대출을 막아 은행 자본이 대기업으로 다시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은행설립에 필요한 최소자본금 완화도 가능해진다. 또, 이를 통해 금산분리에 예외를 두는 방안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회에도 공을 넘겼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인터넷 은행 설립을 위해서는 은산분리와 실명제 등 큰 이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국회에서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업계의 과도한 관심을 의식한 듯 금융위원회는 29일 “현재 검토 중인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에 대한 세부내용은 내년 상반기 중 TF 운영 및 세미나 등을 통해 논의될 예정”이라며 “현재는 확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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