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아이러니, 경제는 위축되는데 삼성·SK하이닉스엔 길조?
[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미·중 무역전쟁 우려로 코스피 추락이 이어진 가운데,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을 압박하는 상황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국내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우리나라 산업을 이끄는 반도체 부문은 덕을 볼 가능성이 대두되는 형세다. 일찍이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을 추격하는 분야에서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실제 증권업계에선 중국 반도체 기업의 시장 진입이 국내 관련 주가에 심리적 악재로 작용해왔던 만큼 미국의 압박이 반도체 종목 주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식의 심리적 악재가 일부 걷히면 전체 시장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집에 금이 가는데 보석함만 감싸 쥐고 있을 수 없듯이 반도체 호재만 바라볼 수도 없다. 또한 업계에선 설사 미국의 제재가 없더라도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이 애초에 낮아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반도체만의 호재보다 전체적인 악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근 코스피 지수는 2016년 말 이후 22개월여 만에 2000 아래로 떨어지는 등 무역전쟁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 한편에선 국내 은행 1곳을 대상으로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행사할 것이란 소문이 도는 등 국내 주식시장 내 공포가 더 강화되는 모양새다.
만일 중국 경제의 뇌관인 부채가 해결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 공격이 장기화된다면 결국 반도체뿐 아니라 ‘시장 교란 종’으로 여겨져 온 중국 기업들이 도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중 중간재 비중이 80% 수준에 이르는 만큼 무역전쟁 여파는 우리나라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작년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 비중은 각각 24.8%, 12.0%였다.
◆ 미국의 중국 반도체 압박 시작 = 2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D램 제조업체 푸젠진화반도체(JHICC)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30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30일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2.29% 오른 4만2350원, SK하이닉스는 전일 대비 2.10% 상승한 6만82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양 사 모두 최근 들어 드문 상승이었다.
이번 미국 조치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단 푸젠진화반도체는 미국 반도체 장비를 살 수 없게 돼 양산 일정이 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어플라이드머티리얼, 램리서치, KLA-덴코 등 세계 선두권의 반도체 장비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번 압박이 실효를 거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압박 카드가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협상 전략의 일환이기에 중국 대응에 따라 압박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달리 말하면 상황에 따라 칭화유니그룹 자회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이노트론 등 다른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에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우선 현재로선 미국의 중국 반도체 압박이 국내에 수혜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KB증권의 김동원 연구원은 “이번 미 상무부 조치는 투자심리 개선에 긍정적”이라며 “특히 내년 중국 반도체의 시장 진입과 이에 따른 공급과잉 및 경쟁심화 등에 대한 우려가 다소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의 이승우 연구원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이 상당한 역풍을 만나게 됐다는 점에서 한국 반도체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NH투자증권의 도현우 연구원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에게 매우 긍정적”이라며 “원익IPS, 테스, 유진테크, 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에게도 수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중국 기술력 수준 낮다” VS “경계해야 한다” = 중국 업체의 메모리 기술력이 위협할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미국의 압박이 없더라도 큰 영향은 주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키움증권의 박유악 연구원은 “푸젠진화반도체가 현재 D램 생산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향후 수년 내에도 가능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조치가 D램 산업에 주는 실질적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불사한 BOE에 선두 자리를 내줬던 만큼 중국의 반도체 투자를 얕봐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 기술력이 실질적인 위협은 안 되는 수준이라 하더라도 이번 미국 조치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심리적 악재를 털어내 관련 주가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정부 지원을 토대로 한국 인력을 영입하면서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반도체 시장도 잡겠다는 야욕을 드러내 왔다. 중국의 첨단제조산업 육성정책 ‘중국 제조 2025’도 그 일환이다.
지금까지 코스피 지수는 무역전쟁 우려로 계속 하락해왔다. 29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1.53% 하락한 1996.05으로 마감했다. 2000 아래로 떨어진 건 지난 2016년 말 이후 22개월여 만이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큰 코스닥 시장도 개인 투매가 가세했다는 점에서 공포 심리가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코스닥 지수는 연저점을 갈아치운 629.7을 기록했다.
미·중 무역갈등의 장기화로 투자심리가 약화된 영향이다. 미국이 1차 대중 관세 조치를 시행한 후 중국산 제품 수입이 감소한 영향도 큰 것으로 풀이된다. 30일엔 코스피(▲0.93%)와 코스닥(▲2.29%) 모두 상승했으나 무역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 우려는 좀처럼 가시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오는 11월 말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별도 정상회담이 열린다. 무역관련 해법을 도출하지 못할 시엔 오히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2570억달러 규모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중국에 지식재산권 보호 관련한 개선안을 내놓지 않을 시 무역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증시에서 무역전쟁 공포가 가시기 어려운 분위기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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