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쏟아진 물’ 역차별방지법…대응은 어떻게?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부가통신사업자(온라인서비스기업)의 실태조사를 법제화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부가통신사업자의 현황 파악을 위해 실태조사를 하고, 사업자는 정부가 요청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시행은 오는 2021년부터다. 현재는 정부에서 시행령을 마련하는 단계다.
부가통신사업자는 통신망을 이용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뜻한다. 네이버,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등이 해당된다. 당초 이 법안에는 ‘역차별 방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었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다.
문제는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실태조사 자료 요청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정감사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반면 국내 기업들에게는 실태조사가 되려 큰 부담과 규제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사업자를 겨냥한 법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울러 상당수가 부가통신사업자에 속하는 스타트업에게도 심각한 규제로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 지난 17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용현 의원(바른미래당) 주최로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스타트업 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은 법안의 문제를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에서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부가통신사업자 중에서 시장지배력 통해 시장을 교란시키고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수준의 사업자가 존재하긴 하나”고 반문하며 “국내 인터넷기업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런 우려를 어느 의원이 하셨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존재한다고 해도 공정위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고 지적했다.
당초 이 법안에는 기간통신사업자에게 적용하는 사전적 규제 성격의 ‘경쟁상황평가’가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업계의 반발이 심하자 논의과정에서 ‘실태조사’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똑같은 ‘꼼수 법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미 통과된 법안, “시행령으로 바로잡아야” =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입법화됐으므로, 경쟁상황평가의 대안이 아니라 부가통신사업의 진흥 및 정책지원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경 교수는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제출 요청의 범위, 방법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특히 자료제출 의무 대상자에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스타트업을 제외해야 한다. 인적 구조상 행정력이 미비한 스타트업은 수시로 발생하는 자료제출 요구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관련 공공기관, 협담체 등으로 자료제출 대상자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태조사의 내용과 범위를 예측할 수 있도록 일시, 취지 및 내용 등을 조사 계획을 미리 공표하고 이를 조사 대상자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역차별 방지를 위해 해외 사업자에게 집행되지 못한 사항을 국내 사업자에게도 요구해서는 안될 것을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도 두 가지 제안을 냈다. 우선 법 개정에 대한 후속조치로 독소적 상황이 해독될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가 기업을 겁박하는 용도로 실태조사를 악용하는 사례를 미리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다른 실태조사도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 ‘기업 겁주기’ 등 기업을 겁박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며 “조사원이 조사권을 남용하거나, 기밀유지 의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실태조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지하게 돼 있으나, 대부분 고지하지 않는다.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자료제출 요구가 절차를 위반했거나 다른 이익을 침해할 경우 이의제기를 위한 절차와 방법도 필요하다”고 보탰다.
◆스타트업 업계, “실태조사도 좋다, 목적만 정확하게” =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이 스타트업 업계를 대변했다. 정미나 팀장은 “실태조사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스타트업이 매출액, 투자액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니다. 다만 핵심은 불확실성, 실태조사의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실질적으로 이해관계 충돌이나 담당 공무원의 문제제기 등 갈등이 발생할 때 실태조사가 들어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그럼 저희도 손 쓸 수가 없다.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또 이게 어느 정도 스타트업부터 적용되는 지도 알 수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실직적인 권한은 담당 공무원이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다 보면 결국 결론은 ‘안된다’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액션’ 자체가 권력의 행사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한 프로세스 개선이 없으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과 최세정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 규제 문제를 비판했다. 최 교수는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규제체계 마련에 있어서 혁신 속도가 늦어지다 보니 사업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기술 혜택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을 빼앗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개방된 글로벌 경제에서 소비자들 역시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고 있는 상황인데, 국내에서만 규제 때문에 이뤄지지 않는 서비스로 인해 느끼는 박탈감이 크다”며 “기술 발전의 혜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투명성’, 이를 통해 사후 규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부 관점에서 규제 마련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바라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형두 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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