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모든 IT는 죽는다'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일이다. 세상에 아직 아이폰이 나오지 않았을때다. 약 3개월 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시 사용하던 휴대폰은 정지시키고 노트북과 MP3 플레이어에 영화와 음악을 가득 담아 비행기를 탔다. 여행 중 정보를 얻기 위해선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론리플래닛 같은 책자나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메모를 참고했다. 물론 무선인터넷이 되는 공간을 찾아 네이버의 여행관련 카페 접속해 정보도 얻었지만,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에 속만 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빨라진 인터넷 속도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여행 중에도 언제나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소식을 전한다. 별다른 사전 준비 없이도 쉽게 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올해는 우리가 ‘인터넷’이라 부르는 월드와이드웹(WWW, 이하 웹)이 등장한지 30년 되는 해다. 물론 웹 이전에도 인터넷은 있었지만, 웹이 등장한 이후에야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됐다. 비단 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때문에 이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면, 이로 인한 타격은 예상보다 크다.
최근 글로벌 IT 공룡 기업들의 서비스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3일 구글 접속 장애에 이어 14일 새벽을 기점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접속 장애가 미국을 비롯한 유럽, 아시아 등 전 지역에서 발생했다.
페이스북은 지난 15일 “서버 구성 변경(server configuration change)으로 많은 사람들이 앱과 서비스에 접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문제를 해결해 시스템을 복구했고 불편을 끼쳐 죄송하며 모든 사용자들의 인내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선 페이스북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페이스북 패밀리 앱의 메신저 기능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앞서 구글도 지난 13일 G메일과 구글 드라이브 등에서 약 4시간 가량 장애가 발생했으나 아직까지 장애 원인을 밝히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구글은 약 15억명, 페이스북은 23억명, 인스타그램은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글로벌 서비스다. 이번 장애로 페이스북을 활용해 마케팅을 하던 중소판매자와 광고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다. G메일과 구글 드라이브 등을 통해 업무를 보던 사람들 역시 큰 불편을 겪었다.
사실 이같은 장애는 최근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9월과 11월, 인스타그램은 지난해 10월과 올 1월에도 접속장애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서울 리전에 장애가 발생해 배달의민족이나 쿠팡과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부터 업비트, 두나무 등 암호화폐거래소 거래소 등의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비단 해외기업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카카오톡 등 국민메신저라 불리는 서비스의 장애가 종종 발생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최소 수천만~수십억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서비스의 특성상 엄청난 규모의 서버, 네트워크 등 IT장비가 활용되기 때문에 서비스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전세계에서 IT인프라 운영을 가장 잘하는 업체다. 최신 IT 기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새롭게 개발한 기술을 외부에 공개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역시 IT서비스 장애는 피할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새로운 서비스 및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다보면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원인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일수도, 개발자의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IT는 항상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용자로써는 가장 속편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기업들도 IT장애는 당연한 것으로 느끼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대수롭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수십억명의 이용자가 사용하고 있는 글로벌 IT서비스인만큼, 이들 기업들도 보다 진정성 있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재발방지를 위한 의지를 더 강력하게 가져야 한다. 일부 매체에선 이번 사태를 두고 ‘현대판 정전’이라고 비유한 만큼, 이들 서비스가 현대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일부 기업에게 페이스북의 장애는 회사의 존폐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앞선 여행 얘기도 돌아가자면, 지금처럼 사방이 연결된 인터넷 세상보다 적당히 운에 기대고 예상치 못한 우연을 기대하던 옛날이 더 아련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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