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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쏘아올린 공, ‘망 중립성’ 2라운드 열린다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망 중립성’ 규제 개선 논의가 현재 벌어지는 코로나19 사태와 만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망중립성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통신사가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이용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통신사 측은 신산업 및 망 투자 확대를 위해 망중립성 완화를, CP는 인터넷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며 망중립성 유지를 각각 주장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인터넷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넷플릭스, 유튜브 등 일부 CP는 네트워크 망 부하를 막기 위해 화질을 낮추기 시작했다. 망 중립성 예외 상황을 인정하고, 위기 상황 돌파에 동참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망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통신사는 5G 신산업을 육성하고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망중립성 규제에 유연성을 두고 경기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CP는 5G 성숙도를 봤을 때 아직은 시기상조며, 코로나19 이후 네트워크 공공성을 주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위기상황, 네트워크 규제 유연성 필요=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 주요 국가는 자국민에게 야외 활동 자제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재택근무, 원격수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 등 디지털 서비스 접근과 온라인 상호작용이 증가했다. 아카마이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은 전월 대비 30% 상승했다. 보통 월 3% 증가세를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19 이후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망중립성 원칙에 따르면 데이터 내용이나 양에 따라 데이터 속도와 망 이용료 등에 차이를 둘 수 없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트래픽 비중이 높은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플러스 등 주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유럽연합(EU) 권고에 따라 당분간 영상스트리밍전송률을 낮추기로 했다. 스트리밍 화질을 낮추고 다운로드 속도를 늦추는 등 급증하는 트래픽 제어에 나선 것이다.

특히,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지난 6일(현지시간)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고 네트워크 연결성을 지속 제공할 수 있도록 권고안을 내놓았는데, 이 중 첫 번째로 제시된 방안은 ‘네트워크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탄력성)’다. 네트워크와 관련해 규제 유연성을 제공하자는 것이 골자다. 네트워크 트래픽과 서비스 품질 매개변수를 관리해, 소비자와 기업이 모든 서비스에 접근하고 네트워크 복원력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규제 유연성과 확실성을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제2기 망중립성 연구반 위원장인 이성엽 고려대학교 교수는 “망중립성 원칙은 코로나19와 같은 긴급상황에 대해 예외를 허용할 수 있다”며 “망 혼잡이나 과도한 트래픽 용량으로 이용자 불편을 초래한다면, EU에서 전체 사용자 복지를 위해 OTT 화질을 낮춘 것처럼 트래픽을 관리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온라인 개학으로 트래픽 용량에 과부하가 걸린다면 통신사 트래픽 관리 권한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CP 측도 코로나19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의 망 중립성 완화는 예외 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코로나19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 통신사는 CP와 협의 아래 트래픽 관리에 나설 수 있고, 이는 망중립성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그 후…경기회복 위한 기업 투자, 망중립성 통해 이끌어야=그럼에도,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회복을 위해 5G 기반 신산업을 활성화해야 하고 여기에는 망 중립성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각국은 국경 통제, 자가격리 등 강도 높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로 인해 각국은 내수 부진에 직면했고,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예상되고 있다. 9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경기부진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겪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금융위기 때보다도 훨씬 충격의 강도가 셀 것이며, 한국 경제도 어려움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벗어나겠다며 정부가 주목한 곳은 ‘5G’다. 정부는 지난 8일 제3차 범부처 민‧관 합동 ‘5G+ 전략위원회’를 영상회의로 개최하고, 5G를 위기극복 돌파구로 삼고 공격적인 5G 인프라 확충과 다양한 비대면 서비스를 발굴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 통신3사는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상반기 망 투자규모를 예정된 규모보다 50% 늘린 4조원으로 확대하고, 영세사업자와 소상공인에 약 42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5G 핵심 서비스로는 실감콘텐츠, 스마트공장,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디지털 헬스케어를 꼽고 있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각국은 외부접촉을 피하기 위해 자율주행, 디지털 헬스케어, 드론배송 등 새로운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통신업계는 이러한 핵심 서비스는 안정적 데이터 전송 품질을 보장해야 하는 만큼,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한 전용 네트워크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망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통신망을 고도화해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한다면 통신사 망 투자도 대폭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앞서, 미국은 2018년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한 행정명령을 공식 발효했고, 지난 2월 미국 법원까지 망중립성 폐지에 손을 들었다. 유럽연합(EU)은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허용하는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망중립성을 산업정책 일환으로 봐야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원격업무 등 인터넷으로 가능한 서비스들이 많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됐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을 통해 최적화된 인터넷 품질을 5G 기업(B2B)시장에 제공할 수 있는데, 이를 못하게 할 것이냐”라며 “산업적 해결책을 봐야지, 갈등을 증폭시켜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제로레이팅이 망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유럽 등 해외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정책이며 요금인하에도 도움이 된다”며 “망중립성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며, 도덕원칙이 아닌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CP “시기상조, 네트워크 공공성 강조”=이에 대해 최성진 대표는 5G 산업 육성을 위해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 망중립성 완화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최 대표는 “현재 5G 망은 전혀 혼잡하지 않으며, 자율주행과 원격의료 서비스는 법적으로도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며 “0.1초라도 지연되면 생명에 위협이 생기는 5G 로봇수술 등 생명‧안전 영역 등 5G 초저지연이 필요한 경우라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관리형 서비스로 인정할 수 있지만 현재는 이를 논의할 단계조차 접어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통신사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프리미엄 요금을 책정할 수 있고, 경제적인 이해관계 등에 따라 사업자를 차별하고 트래픽 관리를 불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최 대표는 코로나19로 네트워크 공공성 이슈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경제는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모든 스타트업과 기업이 적절하고 낮은 비용으로 시장에 참여하려면 부담 없는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대표는 “공공데이터로 초기 확진자 동선, 마스크 공적재고 위치 등을 서비스하는 곳들이 나타났다. 트래픽이 몰리고, 비용을 감당 못 해 서비스를 중단하는 상황도 발생했다”며 “코로나19 이후 국가에서 망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며, 스타트업 등이 디지털 경제에서 혁신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네트워크 환경이 마련된다면 국가 경쟁력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제2기 망 중립성 연구반은 지난 2월 킥오프 1차 회의를 개최했으며,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멈춘 상태다. 이르면 오는 5월 연구반 회의를 재개하고 관리형 서비스 세부 제공조건, 트래픽 관리 투명성 확보 방안,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개정 관련 사항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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