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넷플릭스의 ‘코리아 패싱’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국내외 망 이용대가 갈등이 결국 제대로 터졌다. 망 사용료를 내라는 국내 통신사(ISP)와 그럴 수 없다는 글로벌 콘텐츠기업(CP)의 설전이 소송전으로 치달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글로벌 기업의 행태다. 국내 절차를 무시한 ‘코리아 패싱’과 배짱 영업이 도를 넘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넷플릭스는 지난 13일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망 이용대가와 관련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말 그대로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뜻이다. 그간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킴에도 망 사용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고 지적해왔다.

문제는 넷플릭스의 민사소송이 정부 중재 와중에 벌어졌다는 점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 협상에 조차 나서지 않는다’며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재정(중재)을 신청했고, 이에 방통위는 양측 입장을 듣고 대면 질의를 이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내달이면 재정 확정안을 도출한다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넷플릭스는 그러나 방통위 중재안이 나오기 전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재정 절차가 중단됐다. 글로벌 기업이 규제 사각지대임을 악용해 정부의 정책과 판단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법원이 이번 소송에서 넷플릭스의 손을 들어줄 경우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해외 CP와 달리 망 사용료를 내는 국내 CP에 대한 역차별이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과 비슷한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행정력을 무력화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전문 규제기관이지만 해외 기업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이 수차례 있었다. 이러한 망 사용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지난해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방통위의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글로벌 CP라도 국내법을 준수해야 하며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차별적인 계약을 맺어선 안 된다. 하지만 해외 CP들은 망 사용료를 한푼도 내지 않거나 페이스북처럼 체면치레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들은 이미 해외 CP보다 약 6배 많은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 미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통신사에 망 이용대가를 지급한 바가 있다는 점이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트래픽 유발에 따른 서비스 속도 저하에 대한 책임이 CP에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동시에 국내에서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사건을 계기로 정책부터 입법까지 전면적인 점검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에 대한 국내 규제기관의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재정 절차는 중단됐지만 방통위의 자체적인 결론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신속한 법 제·개정은 국회의 몫이다. 제도적 법적 공백이 불공정행위를 묵인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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