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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의무 부과하는 n번방 방지법··· 실효성 없는 ‘졸속 입법’ 비판

이종현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국회가 29일 저녁 국회 본회의를 개최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과 함께 이른바 ‘n번방 방지법’도 통과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마련된 n번방 방지법의 실효성 비판이 제기되며 졸속 입법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는 28일 서울 강남구 인터넷기업협회 앤스페이스에서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저작권·개인정보·인터넷·미디어 등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n번방 사태에 대해 돌아보고 디지털 성착취 범죄 근절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행사에 참여한 모든 전문가는 “인터넷사업자에게 n번방의 책임을 떠넘기는 법안은 잘못됐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n번방’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법안은 모두 18개다. 이중 특히 문제시되는 것은 백혜련 의원(더불어민주당)과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각 제출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송희경 의원(미래통합당)이 제출한 성폭력범죄처벌법이다.

3개 법안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ISP) 혹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에게 디지털 성착취 범죄물의 발견·삭제·전송방지·중단 등의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한다. 표면적으로는 하등 문제가 없는 내용이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터무니없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와 인터넷기업의 설명이다.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는 “인터넷사업자에게 일정 부분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무라는 것은 실행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며 “제출된 법안들은 사업자에게 모든 정보를 열람하고 그중 범죄물에 대한 판단과 제재 조치를 직접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착취물을 비롯한 온라인상의 불법 음란물을 모두 찾아내기 위해서는 모든 데이터를 열람해야 한다. 열람하지 않고 ‘불법 음란물’만 선택적으로 골라내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영상의 ‘해시값’을 통해 필터링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원본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동영상에 변조가 가해질 경우 해시값이 달라진다는 것도 난관이다. ▲동영상 확장자가 변경되거나 ▲파일 압축을 하거나 ▲영상에 문자나 이미지를 덧붙이는 등의 경우 해시값이 달라진다.

이를 위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불법 음란물 필터링 기술이 꾸준히 연구개발되고 있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업자가 불법 음란물을 원천 차단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를 시도하려면 모든 ISP·OSP는 자신의 서버에 들어오는 모든 데이터를 열람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자라고 해서 자신의 서버를 거치는 모든 데이터를 직접 열람할 권한은 없다. 경찰 등의 수사기관조차도 영장을 발부받아 선택적으로 볼 수 있다.

정진근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입법을 보면서 국회나 정부는 인터넷사업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너희 때문에 n번방 사태가 발생했으니 너희가 해결 해’라는 식인데, 제대로 된 논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력자가 돼야 할 ISP에게 처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처벌권의 남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n번방의 가입자가 26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다수가 10대다. 10대를 비롯해 26만명이 범죄자가 될 때까지 국가는 무슨 역할을 했나”라며 “n번방 사태는 형사사법 정책의 실패다. 이를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엉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규제 방향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뤄졌다. n번방 사태와 유사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다크웹 등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음성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n번방 사태가 발생한 곳도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이며 다크웹과 디스코드 등에서 유사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ISP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가하는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더라도 이를 해외 사업자에게 강제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법에 해외 사업자에게 동일한 책임을 부과하는 ‘역외조항’을 포함하더라도 국제 공조가 안 될 경우 실효성이 없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n번방 사태의 근원지인 텔레그램이 국내에 활성화된 것은 2014년 카카오톡 감청 논란 이후”라며 “다수 이용자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으로 ‘디지털 망명’을 하면서 커졌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내가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낼 때 그 메일을 서비스하는 기업이 내용을 한 번 들여다보고 보낸다고 하면, 누가 이 메일 서비스를 이용하겠나”라며 “n번방 사태 방지는커녕 범죄는 더 음성화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기업만 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n번방 방지법을 29일 국회에서 통과시킨다고 했는데, 과연 이 법안이 충분히 성숙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성급한 입법보다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위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종현 기자>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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