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 오히려 ‘n번방 양산법’ 될 수도…우려 커지는 이유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인터넷 업계가 ‘n번방 방지법’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실효성 없는 법이라는 비판하는 가운데 국회는 오는 20일 본회의를 개최해 법을 처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n번방 사례의 재발을 막기위한 충분한 공감대가 모아졌지만 막상 이를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과연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또한 오히려 졸속 입법이 더 큰 화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 관련 인터넷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n번방 방지법'의 취지에 찬성을 전제로, 관련 법을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자는 게 관련 인터넷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 논란이 되는 것은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법 적용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 지정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매년 투명성 보고서 제출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조치의무 및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 부과 등을 골자로 한다.
◆n번방 방지, 과연 실효성 있을까 =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실효성 여부다. 국내법을 개정하더라도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 효력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회의에서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우리나라 법안이 해외 사업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규정을 두더라도 실제 집행력을 확보하고 안 하고는 별개의 문제”라며 “역외 규정이 입법되더라도 선언적 의미의 규정일 뿐이기 때문에 집행력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조사와 행정제재,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 등의 제도를 활용해 실질적인 규제 집행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n번방의 근원지인 텔레그램에는 적용되지 않아 사실 ‘n번방 방지법’이라 부르기 어렵다. 즉, 실질적 효과를 담보할 수 없다.
특히 텔레그램의 경우 국내에서 사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외규정 조차도 해당되지 않는다. 국내에 지사를 둔 구글, 페이스북 등도 최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지만 불성실하게 일관했던 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예 국내 지사조차 없는 텔레그램에 국내법의 영향력을 미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실효성 없이 규제부터 만들고, 이후에 실효성을 갖추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실제 효력을 나중에 확보할 것이라면, 법도 나중에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실효성없는 법때문에 애꿎은 인터넷업계만 더 힘들어진다는 지적이다.
◆검열 우려 없다? 논란 여지 = 전기통신사업법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때문에 논란이다. 이것이 자칫하다간 '검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검열 우려에 대해 15일 방통위는 기자회견과 설명자료를 통해 이를 반박했다. n번방 방지법은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촬영물, 불법편집물(딥페이크물), 아동·청소년이용성착취물에 대한 유통방지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지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는 대상 정보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이같은 방통위의 주장은 부분적으론 맞고, 부분적으론 사실과 다른 말이다. 방통위는 기술적·관리적 조치의 대상을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이메일,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나 개인 간 주고받는 문자서비스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즉, 일반에게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커뮤니티나 블로그, 카페 등으로 범위를 넓히게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미 사례가 있다.
지난 2009년 방통위는 다음 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삭제 요청했고 게시자는 이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제기된 위헌법률심판사건(2008헌마500)에서 합헌 5명, 위헌 3명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때 방통위가 삭제 요청한 것은 ‘방통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21조 4호의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를 근거로 했다.
해당 판례에 따르면 블로그의 게시글은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에 해당되며, 이는 복수의 이용자가 이용하는 커뮤니티 등에도 적용될 여지가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돼 유통되는 성착취물을 발견한 사람 있나. 성착취물이 공개 유통되면 당연히 알아서 지우고 신고한다”며 “(15일 방통위의 설명자료·기자회견은) 개정안이 불필요한 법안이고 국민을 감시하는 정부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주목적임을 확인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검열 않고 모든 불법촬영물 잡는다? 불가능 = 인터넷사업자에게 부가하는 의무 중 ‘기술적 조치’가 불분명하고 지나치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모든 데이터 중 불법촬영물‘만’ 골라서 잡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인터넷 사업자가 일일이 데이터를 들여다보지 않고 막으려면 미리 입력한 값은 통과되지 못하도록 하는 ‘필터링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4월23일 방통위는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으로 기존 웹하드 사업자에게 의무화되던 필터링 기술을 전 인터넷 사업자를 대상으로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삭제 대상도 불법촬영물에 한정하던 것을 디지털 성범죄물 전반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필터링을 적용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필터링을 하려면 필터링할 대상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동영상의 경우 해당 영상이나 영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가령 미국이나 일본에서 유통되는 저작권이 있는 성인물의 경우 동영상의 해시값이나 DNA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필터링 기술이 유효하다. 웹하드에 적용되던 필터링은 이를 응용한 것이다. 원본이나 원본의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n번방 같은 불법음란물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어렵다.
제한된 데이터만 업로드·다운로드되는 웹하드에 적용하는 필터링을 모든 인터넷 사업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태다.
◆AI 필터링 대안으로 주목받지만···=기존 필터링 기술의 한계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필터링 기술이 대두되고 있다.
AI 필터링의 기술 현황은 페이스북이 최근 발표한 ‘공동체 표준 도입 결과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2020년 1분기 동안 페이스북 AI 시스템을 통해 필터링 기술을 적용한 결과를 발표했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1분기 동안 삭제 조치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 관련 콘텐츠는 약 3950만건이다. 이중 사용자 신고 전에 페이스북이 사전 조치한 것은 99.2%, 사용자가 신고하기 전까지 삭제되지 않은 비율은 0.8%가량에 불과하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 관련 콘텐츠는 약 860만건으로 99.5%를 페이스북이 사전 조치, 0.5%를 사후 조치했다.
페이스북의 조치가 100% 완벽한 것은 아니다. 삭제 조치된 게시물 중 성인 대상 게시글 230만건에 대해 이의신청이 있었고 이중 63만7500건이 복구됐다. 아동 대상 게시글에 대한 이의신청은 5만4800건, 복구된 것은 4600건이다. 하지만 음란물을 차단하기 위함인 만큼 1~2% 남짓한 오류는 허용 범위 내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페이스북이라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매출액 707억달러(한화로 약 87조1731억원)인 페이스북 수준의 기술을 모든 인터넷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관심법’ 요구=인터넷 업계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서 인터넷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불법촬영물등’에 법률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반포’,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 등의 촬영물에 대한 삭제·차단을 의무화하고 있다.
성폭력 행위자(정범)을 처벌하는 개별 법률과 달리 해당 내용을 인터넷 사업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인터넷 업계의 주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15일 “인터넷 사업자는 영상 속 대상자가 의사에 반해 촬영을 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방법이 없다”며 “그럼에도 의무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고 질의한 상태다.
◆시행령에 있는데 굳이··· 생색내기 입법 우려=또한 전기통신사업법의 하위법령인 시행령 제30조의3에서는 이미 기술적 조치를 부가하고 있다. ▲정보의 제목, 특징을 비교해 해당 정보가 불법정보임을 인식할 ▲인식한 불법음란물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정보를 이용자가 검색하거나 송수신하는 것을 제한 ▲불법음란물을 인식하지 못해 해당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 해당 정보를 이용자가 검색하거나 송수신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 ▲사업자가 불법음란정보 전송자에게 유통 금지 등에 관한 경고문구를 발송하는 조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는 현재 방통위가 말하는 ‘기술적 조치’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미 시행령에 있는 내용을 상위법으로 옮기는 듯한 모양새, 그리고 법의 실효성 부재 등으로 ‘생색내기 입법’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n번방을 방지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인터넷 사업자는 한 명도 없다. 협회가 반대하는 것은 n번방 방지법을 빙자한 졸속입법”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지, 실효성도 없는 법 개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과거 카카오톡 사찰 이후 텔레그램이 커졌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국내 서비스 이용을 막는다고 해서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서비스를 규제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해외 서비스로 옮겨가게 된다. 자칫하다가는 n번방 방지법이 아니라 n번방 양산법이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종현 기자>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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