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말 그대로 ‘반도체 대이동’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큰 손’을 잡겠다는 의도다.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임이 증명된 부분도 한몫했다. 다만 추가적인 유입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장비업체 램리서치는 이달 중 용인 연구개발(R&D) 센터 기공식을 열 예정이다. 지난해 9월 램리서치는 경기도와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팀 아처 램리서치 최고경영자(CEO)는 “R&D를 담당할 한국테크놀로지센터(KTC) 세우면, 램리서치의 학습 주기를 단축하고 고객에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램리서치는 주력 분야인 반도체 식각 공정을 비롯해 박막 증착, 웨이퍼 세정, 감광막 제거 등의 장비를 양산하는 업체다. 지난 1989년 램리서치코리아를 세우고 국내 고객사를 지원해 왔다. 지난 2011년에는 생산법인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를 설립, 국내에서 제품 생산을 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 건립할 KTC를 더하면 영업·생산·연구 등 3개 축이 국내에 마련되는 셈이다.
독일 소재업체 머크는 버슘머티리얼즈와 인터몰레큘러를 인수한 뒤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경기도 평택 송탄산업단지에 한국 첨단기술센터(K-ATec)를 개소한다고 밝혔다. 350억원 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아난드 남비아 머크 반도체 소재 사업부문 글로벌 대표는 “한국은 머크에 중요한 혁신 및 생산 허브”라며 “앞으로 공급망을 확장하고, 고객과 상생 파트너십을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센터는 면적 3240제곱미터(m²)에 총 5층 규모다. 고객 평가를 위한 샘플링 랩, 전문 설비 갖춘 클린룸 등으로 갖춰졌다. 고도화된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슬러리 및 포스트 CMP 클리닝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CMP 슬러리는 반도체 웨이퍼 표면을 연마해 평탄화하는 소재다. 반도체 집적도를 높인다.
머크 평택 사업장에는 차세대 CMP 소재 관련 제조센터도 있다. 이 사업장은 삼성전자 등과 물리적으로 근접, 지역 내 협업 및 지원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다.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도 우리나라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 회사는 극자외선(EUV) 장비 독점공급사다. ASML는 평택사업장 확장 및 추가 인력 배치를 단행했고, 지난 4월 한국어 홈페이지를 개선하는 등 국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 테크니컬센터를 신설, 국내 고객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일본 도쿄오카공업(TOK)은 최근 인천 송도 공장에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PR) 생산을 시작했다. 자국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기조에도 삼성, SK 등 고객사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존재로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 중요한 입지로 조명받고 있다. 코로나19 대응력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며 “이미 국내에 협력사들이 들어왔지만, 점차 규모나 기업 수가 늘어나게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긍정적인 분위기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서는 화평법으로 인해 국내에서 화학물질 제조 및 수입 시 허용량이 다른 국가 대비 부족하고, 등록까지 수개월 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과 톤 단위가 넘어야 등록하는 데 국내는 100킬로그램(kg)만 되더라도 신고·등록을 해야 한다”며 “한 번 등록 시 많은 시간이 소요돼 현행법으로는 빠른 대응이 어려운 상태”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