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소문만 무성했던 삼성전자 정수기 시장 진출이 현실화됐다. 삼성전자는 맞춤형 가전 비스포크 제품 확대를 위해 1분기 중 정수기를 출시한다. 국내 정수기 시장은 경쟁업체가 많아 기술이 고도화됐고 이미 성숙기에 있다. 후발주자로 참여한 삼성전자가 업계 영향력을 끼칠지 주목된다.
지난 12일 삼성전자는 온라인 미디어브리핑을 통해 비스포크 정수기를 공개했다. 지난해 정수기가 탑재된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한 적은 있지만 정수기 단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수기가 국내 시장규모가 3조원 이상으로 ‘필수가전’으로 자리 잡자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비스포크 정수기는 공간 최소화를 위해 싱크대 안에 넣는 직수형 언더싱크 방식으로 설계했다. 정수 모듈만 사용하다 필요할 경우 다시 구매할 필요 없이 냉·온수 모듈만 추가하면 된다. 모듈은 가로 혹은 세로로 설치 가능하다. 물이 나오는 파우치 색상은 네이버·실버·그린·골드·화이트·블랙 등 6가지다. 음성 명령을 통해 원하는 용량의 정수를 정확히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새롭게 뛰어들었지만 업계는 판도가 단기간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렌털 시장에서 정수기가 가장 보편적인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렌털 점유율은 정수기 점유율로도 고려할 수 있다. 국내 정수기 시장에서 1위인 업체는 코웨이로 약 30~40% 점유율을 차지한다. 이어 LG전자와 SK매직이 각각 기술력뿐 아니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영향력 확대하고 있다.
정수기는 냉장고·세탁기 등 다른 가전과 다른 점이 있다. 렌털 방식 판매가 기본 전제가 된다는 것. 위생과 직결되는 제품이다 보니 2~4개월에 한 번씩 전문 인력이 각 가정을 방문해 정수기 점검·세척·필터 교환 등을 진행한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정수기는 자가관리형이다. 렌털 방식이 아닌 일반 구매 방식으로 소비자가 직접 필터 교체를 진행한다.
물론 비대면 문화 확산과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자가관리형 제품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코웨이와 SK매직, 쿠쿠 등도 자가관리형 제품들을 속속들이 출시 중이다. 그러나 SK매직의 경우 ‘스스로 직수정수기’를 구입할 때 필터를 직접 교체하는 셀프형을 구입한다 해도 1년에 1번씩 취수부 전체 무상교체와 방문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편리함이 자가관리형 장점이지만 오래 써도 세밀한 부분까지 깨끗하게 유지하는지가 더 중요한 셈이다.
렌털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자가관리형 제품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긴 했지만 전체 정수기 수요 비중과 비교하면 일부에 속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오토 스마트케어 솔루션’을 내세워 위생을 강조했다. 방문관리 없이도 편리함 뿐 아니라 위생적이라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정수기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출시할 때 가격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다. 자가관리형 제품은 관리 서비스비가 제외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모듈형’을 내세운 만큼 정수 기능만 담긴 모듈형 기준 가격을 강조할 수 있다. 냉온수 기능이 빠진 정수 전용 제품은 가격이 훨씬 저렴할 수밖에 없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통상 렌털 방식으로 정수기(5년 기준)를 구매한다고 가정하면 통상 일시불 제품보다 3~5%가량 비싸진다. 대신 관리서비스와 필터 교체비가 포함됐다. 또 냉장고 안에 정수기를 갖춘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 가정에선 정수기를 구매할 때 냉온수 기능이 탑재된 제품을 찾는다. 비스포크 정수기의 냉온수 모듈 추가비용까지 고려해 가격을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정수기는 렌털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만큼 기존 렌털업체들과 계정 수를 다투는 등 직접 경쟁하진 않는다. 다만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단순히 정수기를 판매하기 위해서 이번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국내 정수기 시장은 정기 방문 서비스를 통해 추가영업을 할 수 있는 주요 판매 채널로 통했다. 정수기 자체만 보면 이미 시장 포화 상태로 기존 업체들도 제품군을 늘리거나 서비스를 추가하며 활로를 모색 중이다.
삼성전자도 정수기 판매를 시작한 후 다른 가전제품과의 결합상품이나 필터 정기배송 서비스 등 별도 조직을 꾸리지 않아도 추가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렌털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정 수를 집계하진 않을 것”이라며 “아직 제품 출시 전이라 라인업 확장 여부는 미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