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취재수첩] 해외보다 낮은 국내 비트코인 가격, ‘역 프리미엄’이 달갑지 않은 이유

박현영

테슬라 발 상승세가 시작됐던 8일 밤,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 거래소(바이낸스)보다 350만원 넘게 낮은 상황이 발생했다./출처=빗썸
테슬라 발 상승세가 시작됐던 8일 밤,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 거래소(바이낸스)보다 350만원 넘게 낮은 상황이 발생했다./출처=빗썸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지난 8일 테슬라가 1조 7000억원어치 비트코인(BTC)을 매수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이 들썩였다. 이는 곧 비트코인 거래량 및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크라켄조차 넘치는 거래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접속 장애를 겪을 정도였다.

그러나 같은시간 국내에선 이상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국내 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무려 350만원 낮게 거래됐다. 해외 가격으로는 5000만원을 훌쩍 넘었는데, 국내에선 4700만원 선에 머물고 있었다. 국내 시장의 수요가 해외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逆) 프리미엄’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2017년 말~2018년 초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당시엔 우리나라에서 가상자산 거래량이 폭증하면서 국내 가격이 해외 가격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이 생겼다. 국내 대형 거래소인 빗썸이 전 세계 거래소 중 거래량 1위를 차지하는 일도 있었다.

3년 전과 같은 투기 과열 현상은 지양해야겠지만, 해외에 비해 국내 수요가 떨어진다는 건 국내 시장이 주도권을 잃었다는 방증이다.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관련 산업에서 발굴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놓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은 전 세계 블록체인 기업들이 목표 시장으로 삼는 가상자산‧블록체인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였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엎친 데 덮친 격’ 규제+과세에 시장 경쟁력 저하

우선 업계 종사자들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력이 줄어든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곤 한다.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열기는 주춤했고, 큰 자금을 굴리는 전문 투자자들은 모두 해외 거래소로 이동했다는 것.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엄격한 국내 규제가 있다.

일반 투자자들의 투심은 지난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 때부터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이후 최근에 세금 이슈가 겹치면서 또 한 번 열기가 식었다. 주식 양도소득세의 비과세한도는 연간 5000만원부터인 반면, 가상자산은 250만원으로 그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서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비트코인은 250만원이상 과세, 주식은 5000만원이상 과세. 차별 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3만 5000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그동안 가상자산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소로 이동했다. 국내 한 전문 투자자는 “유망하거나 요즘 인기 있는 프로젝트들은 해외 거래소에만 상장돼 있는 게 해외 거래소로 이동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국내 거래소가 해외 거래소만큼 활발한 상장을 하기엔 오는 3월 시행되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걸림돌이다. 가상자산사업자 중에서도 거래소에 특히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면서 국내 거래소는 공격적인 상장 마케팅을 하기 힘들어졌다. 한때 국내 거래소들도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토큰을 다수 상장하긴 했지만 해외 거래소에 비해선 미미한 수준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선 상장 시 체계적인 심사가 필요하나, 엄격한 규제로 인해 해외 거래소보다 활성도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국내 한 거래소 관계자는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는 공격적인 상장을 하기는 힘들다”면서 “지금 상장을 공격적으로 하는 거래소는 특금법 시행 이후 문제를 겪을 위험도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투자만 안 하는 게 아니다…산업 성장동력도 위협

떨어진 시장 수요는 국내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의 성장 동력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로 이동한 원인 중에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실적 부진’이 꼽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국내 거래소에는 주로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상장되어 있는데, 대부분 프로젝트들은 사업 성과가 미미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업 성과가 미미하니 토큰 가격도 오르지 않는다. 반면 해외 거래소에 상장된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 성과가 있고 토큰 가격도 오르므로 전문 투자자들은 해외로 이동하게 된다.

기관투자자도 부족하다. 때문에 기관의 수요를 통해 발굴할 수 있는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들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해외에선 테슬라, 마이크로스트레티지 등 상장사가 가상자산 투자에 직접 나서고 있으나, 국내에선 기관투자자가 가상자산을 살 수 있는 경로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KB국민은행이 투자한 KODA 등이 관련 서비스를 준비 중이지만 아직 시작 단계다.

◆쉽게 여길 수 없는 ‘역 프리미엄’

3년만에 돌아온 상승장. 상승장이라는 것만 같을 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개인투자자나 중국 채굴자들이 아닌 기관투자자들이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고, 덕분에 발굴할 수 있는 사업 기회도 많아졌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예전만큼 활기 넘치지 않는다.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만 산업 진흥을 위한 업권법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외 블록체인 기업들이 너도나도 ‘한국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채용공고를 내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업권법보다 규제법이 먼저 생긴 어려운 환경이지만, 한국 시장의 매력도가 더 떨어지기 전에 어느 정도는 주도권을 되찾았으면 한다.

떨어진 시장의 수요와 약해진 성장 동력. ‘역 프리미엄’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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