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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블록체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암호화폐는 대립관계가 아니다

박현영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한 주간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 소식을 소개하는 ‘주간 블록체인’입니다.

이번주는 정부발 뉴스가 많았습니다. 국회에선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하나 더 나왔고, 정부 관계부처는 가상자산 분야 규제에 더욱 몰입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영업 신고를 마치지 못하는 거래소는 사라질 수 있음을 연일 경고하는 모습입니다.

정부발 뉴스만큼 ‘핫한 주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였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25일 CBDC 모의실험 용역사업 공고를 내면서 관련 기업들도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네이버는 자회사 라인을, 카카오도 자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발을 들이면서 빅테크 기업이 준비에 착수해 화제를 모았죠.

이렇게 CBDC가 화제가 되면서 자주 제기되는 의문이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나오면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상자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이 자주 나오고 있는데요. (여기서는 제도 상 용어가 아니므로 가상자산 대신 암호화폐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사실 CBDC와 암호화폐는 존재 이유부터 달라서 두 가지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CBDC가 암호화폐를 대체할 것이란 주장은 논리적 오류가 있는 주장입니다. 두 가지는 공존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요, 이번주 <주간 블록체인>에서는 이에 대해 좀 더 깊게 알아보겠습니다.

◆왜 CBDC를 암호화폐와 비교하게 됐을까?

CBDC는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자로, 말 그대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화폐입니다.

한국은행은 CBDC를 ‘화폐제도의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요, 현금 사용이 점점 줄어들고 금융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고 있으므로 화폐도 전자적인 형태로 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현금 지급 대안 등으로 논의되면서 ‘금융포용’을 위해서도 CBDC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CBDC는 왜 암호화폐랑 비교 선상에 오른 것일까요? CBDC가 나오면 암호화폐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주장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요?

우선 가장 큰 이유는 CBDC 발행의 기반 기술이 블록체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CBDC를 반드시 블록체인 기술로 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디지털 형태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일원장을 사용해 발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을 포함해 CBDC를 연구하는 전 세계 은행들의 ‘대세’는 블록체인 기술인데요. 중앙은행을 비롯해 CBDC 유통에 참여하는 금융기관과 함께 안정적으로 거래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분산원장 기술이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또 CBDC를 통해 데이터 위·변조를 방지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는데, 분산원장을 기반으로 하면서 데이터 위·변조 방지와 보안성을 모두 충족하는 기술이 블록체인이죠.

지난달 PwC가 발표한 CBDC 보고서에 따르면 CBDC를 검토 중인 전 세계 중앙은행 60여곳 중 88%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합니다. PwC는 “CBDC 발행에 블록체인 기술이 반드시 쓰여야 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은 안전성, 거래투명성 등 몇 가지 특장점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CBDC 논의를 촉진한 게 다름 아닌 암호화폐이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도 있지만 페이스북의 스테이블코인 ‘디엠(구 리브라)’의 역할이 특히 컸죠.

페이스북이 금융포용을 목표로 리브라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미국 의회 청문회까지 가야 했는데요. 그만큼 정부와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로 인해 ‘화폐주권’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했다는 방증입니다.

정리하자면 ▲암호화폐처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점 ▲애초에 암호화폐(특히 리브라)를 의식해 CBDC 논의가 확산된 점 등으로 CBDC와 암호화폐가 비교 선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CBDC와 암호화폐, 존재 이유가 다르다

자주 비교되지만 CBDC와 암호화폐가 대립관계는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려면,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겠죠. CBDC가 암호화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게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 일반 암호화폐와 CBDC의 가장 큰 차이는 중앙화 여부입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임으로 극도로 중앙화되어있는 반면, 일반적인 암호화폐들은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죠.

CBDC가 블록체인 기술을 쓰긴 하지만 중앙은행과 일부 금융기관만 거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씁니다. 반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누구나 거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죠.

한국은행의 CBDC 설계방안. 허가형 분산원장 네트워크, 즉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출처=한국은행
한국은행의 CBDC 설계방안. 허가형 분산원장 네트워크, 즉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출처=한국은행
자금이 어떤 지갑 주소로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들의 큰 특징입니다. CBDC와 암호화폐는 기술적 형태만 비슷할 뿐, 존재 이유부터 다른 것입니다.

아담 백(Adam Back) 블록스트림 CEO가 지난 2019년 코인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이런 관점이 잘 드러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암호화폐의 장점은 검열에서 자유롭고 탈중앙화되어있다는 것이고, 중국의 중앙화된 CBDC는 사용자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비트코인처럼 탈중앙화를 구현한 암호화폐는 특유의 익명성과 검열저항성 때문에 CBDC에 구애받지 않고 존재 가치를 지닌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주요 암호화폐 이외에도, 암호화폐 업계에는 많은 유틸리티토큰들이 있습니다. 유틸리티토큰이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블록체인 기반 애플리케이션 등에서 쓰이는 토큰을 말합니다.

유틸리티토큰의 대다수는 적절한 사용처를 찾지 못해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 중 몇 개는 유의미한 사용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유틸리티토큰은 특정 서비스 내에서 활발히 이용되기 때문에 CBDC와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문제의 스테이블코인(가치변동성이 없는 암호화폐)은 어떨까요? 가치변동성을 없애 결제용으로 만들어진 스테이블코인들은 CBDC와 역할이 너무 겹치는 것 아닐까요?

초창기의 스테이블코인이라면 CBDC로 인해 타격이 컸을 것입니다. 초창기의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로 빵 하나 사먹을 수 없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고자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즉, 암호화폐를 실물경제에서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한 경우가 종종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처가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테더(USDT)처럼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통화로 쓰이는 스테이블코인도 있고, 다이(DAI)처럼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에서 활발히 쓰이는 스테이블코인도 있죠.

특히 다이처럼 디파이에서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블록체인의 스마트컨트랙트로 이루어지는 금융 서비스, 즉 디파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필요로 하는 서비스도 많아졌습니다. 예컨대 가격이 변하는 일반 암호화폐를 담보로 맡기고,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는 식이죠.

이처럼 결제수단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나름의 사용처를 끊임없이 찾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따라서 CBDC가 등장한다고 해서 모든 스테이블코인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CBDC는 소액결제용과 거액결제용으로 나뉘어 연구되는 등 대부분 ‘결제용’으로 발행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단,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들도 법정화폐에 최대한 ‘덜’ 종속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달러에만 1:1로 연동되고, 단순히 달러 준비금을 암호화폐로 전환하는 식이라면 CBDC의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크겠죠.

미국 달러뿐 아니라 다양한 법정화폐 또는 다른 암호화폐에 가격을 연동함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거나, 단순히 준비금을 전환하는 대신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가치가 유지되게끔 하는 등 법정화폐에 최대한 ‘덜’ 종속되어야 할 전망입니다.

◆한은의 CBDC 진행 상황은?

마지막으로 한국은행의 CBDC 연구 상황을 다루면서 <주간 블록체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단 한국은행은 해외 선진국들과 비슷한 속도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오히려 미국보다 빠른 편이기도 합니다. 한국은행은 올해 하반기 모의실험에 나설 예정인 반면, 미국에선 민간단체가 실험에 나섰습니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아직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연구 중이고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CBDC 연구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중국으로, 이미 선전시에서 CBDC를 지급하는 시범사업도 진행했습니다. 또 지난해 세계 최초로 CBDC를 발행한 곳은 바하마입니다.

다시 한국은행 이야기로 돌아가서,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모의실험 사업자를 뽑는 공고를 냈습니다. 이번 모의실험에서 한은은 분산원장 기반의 관리 기술과 데이터 위·변조 방지를 위한 보안기술을 CBDC 시스템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점검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있는 기업에겐 기술력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자, 영향력있는 국가과제인 것이죠.

때문에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가 눈독을 들이는 모습입니다. 각각 라인 블록체인과 클레이튼이라는 자체 개발 블록체인 플랫폼도 있습니다. 라인은 지난해부터 CBDC용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공언해왔고, 클레이튼도 미국 유명 블록체인 기업인 컨센시스와 함께 CBDC 발행을 위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개발합니다.

금융권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신한은행은 LG CNS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플랫폼을 시범 구축했습니다. 하나은행 역시 포스텍 크립토블록체인연구센터와 함께 CBDC 유통을 위한 시범 시스템을 개발했고요.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부터 금융권까지. 어떤 기업이 어떻게 컨소시엄을 구성해 CBDC 사업을 차지할지 주목됩니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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