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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용료 해부]③ 망은 공짜?…‘빌앤킵’의 역설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망 이용대가 소송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난 16일 이뤄진 항소심 1차 변론에서는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낼 수 없는 근거를 들고, SK브로드밴드가 이를 하나하나 반박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넷플릭스가 1심 재판 때와 달리 이번 변론에서 중점적으로 주장한 것이 바로 ‘빌앤킵(Bill and Keep·상호무정산)’이다. 지난 1심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논리로, ‘빌앤킵’은 앞으로 넷플릭스가 항소심에서 주장하게 될 핵심 근거가 될 전망이다.

◆ 넷플릭스 “SKB와 우리는 ‘상호무정산’ 관계”

‘빌앤킵’ 즉 상호무정산이란 서로 직접적인 대가를 주고받지 않아도 사실상 정산을 한 것으로 인정하는, 쉽게 말해 ‘퉁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통신업계에서 ‘빌앤킵’이란 초창기 음성통신 시장 때부터 나온 개념이다. 예를 들어 A 통신사 이용자가 B 통신사 이용자에 전화를 걸어 통화할 경우, A와 B 통신사 둘 다 트래픽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각 통신사가 부담할 트래픽 양은 서로 엇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굳이 정산을 따로 하지 않는다. 이는 데이터통신 시장에도 적용돼, 통신사들은 타사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번 2심에서 이러한 ‘빌앤킵’의 개념을 들어, SK브로드밴드와도 상호무정산의 관계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넷플릭스는 자체 개발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기반 캐시서버인 OCA(오픈커넥트어플라이언스)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하면 인터넷제공사업자(ISP)의 트래픽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트래픽 부담이 없으니, 망 이용대가는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 “망 이용은 유상”을 주장하게 되는 ‘빌앤킵’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거꾸로 말해 ‘망을 이용할 때는 대가를 내야 한다’는 점이 내포돼 있다. 소위 ‘퉁친다’는 개념은 겉으로는 서로 주고받은 것이 없어도, 실제로는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어떤 대가가 오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호무정산은 망 이용이 ‘무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유상’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1심 재판에서 “콘텐츠 전송은 ISP인 SK브로드밴드의 의무이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전송하기 위해 SK브로드밴드 망을 이용하는 것은 무상”이라고 거듭 주장해왔다. 하지만 2심에서 SK브로드밴드와의 ‘빌앤킵’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역설적으로 1심에서의 논지와 정반대의 논리를 펼친 셈이 됐다.

◆ OCA는 망 이용대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만약 ‘빌앤킵’의 개념이 인정되더라도,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대로 OCA가 망 이용대가를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OCA는 넷플릭스가 2011년 자체 CDN 기술로 구축한 캐시서버다. 한마디로 ‘트래픽 절감 솔루션’이 적용된 ‘콘텐츠 저장고’인 셈인데,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트래픽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넷플릭스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약 95%의 트래픽이 절감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SK브로드밴드가 이른바 ‘통행세’를 받아내기 위해 OCA 설치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넷플릭스의 입장이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의 생각은 다르다. 만일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대로 국내에 OCA를 설치한다 하더라도, 이는 ISP들의 트래픽 부담을 줄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송 과정을 들여다 봐야 한다. 예컨대 이용자가 콘텐츠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접속하면, 미국 본사 서버로부터 홈페이지 데이터를 송수신한 뒤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사용자 인증을 거친다. 이것이 1단계다. 이어 이용자는 넷플릭스 홈페이지에서 콘텐츠를 검색하고 선택하며(2단계), 넷플릭스는 이용자가 선택한 콘텐츠를 송신할 OCA의 위치(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경우 일본 도쿄에 설치된 OCA에서 콘텐츠를 송신받는다)를 결정한 후 이용자 단말기에 콘텐츠 송신을 요청하는 OCA 주소 정보를 송신(3단계)한다. 마지막으로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단말기에 넷플릭스 콘텐츠를 스트리밍 형태로 송신(4단계)하게 된다.

SK브로드밴드는 1단계에서 3단계까지는 넷플릭스 주장대로 ISP에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지만, 4단계 과정에서 대부분의 트래픽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트래픽 절감 구간은 미국 본사 서버에서 일본 도쿄 OCA까지일 뿐이고, 정작 대부분의 트래픽이 초래되는 구간은 마지막 단계(도쿄 OCA→SK브로드밴드 이용자)라는 것이다. 결국 넷플릭스의 OCA로는 SK브로드밴드가 받아야 할 망 이용대가를 ‘퉁칠 수 없다’는 것이 SK브로드밴드의 입장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말하는 것처럼 상호무정산이 성립되려면 결국 양 당사자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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