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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IT기업들 러시아와 여전히 거래 의혹… 삼성·LG 우리 기업들만 순진했나

박기록
IBM, 마이크로소프트(MS), SAP와 같은 서방의 대형 IT기업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겉으로 시늉만 낼 뿐 그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도 없다는 의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초, 애플의 러시아 판매 중단으로 서방의 IT기업들이 ‘러시아와의 단절’을 외치며 경제제재에 우르르 동참을 선언했지만 정작 이런 저런 사유로 러시아에 남아,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와 함께 이같은 상황을 폭로하는 몇몇 익명의 직원들의 인터뷰를 전했다.

실상은 이런데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만 순진하게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해, 정작 러-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이후에 다시 러시아 시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 우려된다.

보도에 등장하는 IBM, MS, SAP 세 기업은 모두 '기업용' 소프트웨어(SW)를 보유한 회사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일반인들의 눈에 잘 띠는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SNS) 기업들과 달리, 이들 IT기업들은 러시아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앞서 러-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미하일로 페도로프(Mykhailo Fedorov) 디지털전환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글로벌 IT기업들에게 러시아에서 철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MS의 브래드 스미스 CEO는 이같은 요청에 대해 “러시아내 학교나 병원 등 비제재 대상에 대해서는 계속 지원을 할 것"이라고 회신했다. 어린이와 노인 등 러시아 민간인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인도적인 지원을 명분으로 러시아에서 계속 남아있겠다는 의미다.

물론 MS는 미국, 영국, EU 정부가 원하는 제재 목표에 보조를 맞추기위해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서비스와 지원을 중단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은 유지하고 있다.

SAP 역시 이같은 요청에 대해 "병원, 민간 인프라, 식량 공급망을 포함한 러시아의 필수적인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입장을 밝힌 상태다.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장관 페도로프의 SNS계정. 그는 서방 IT기업들에게 러시아와 단절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여기에는 한국 기업들도 포함된다.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장관 페도로프의 SNS계정. 그는 서방 IT기업들에게 러시아와 단절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여기에는 한국 기업들도 포함된다.

◆“왜 러시아에서 철수 안하고 미적 거리나?” 내부 직원들 폭로

그러나 이처럼 도덕적, 인도적 이유로 러시아에 계속 지원 인력을 운영하고 있는 일부 서방 IT기업들의 행태에 대해, 정작 해당 기업의 직원들이 회사 내부 커뮤니티에서 '러시아에서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며 회사 경영진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IBM의 경우, 한 직원은 회사 최고경영자에게 2차 대전 당시 유태인 추적을 위한 펀칭 머신을 만들어 독일 나찌에 납품해 결과적으로 유태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IBM의 과거 흑역사까지 소환하며 경영진에게 러시아 시장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같은 내부 비판에 대해 IBM측이 내놓은 답변이 조금 미묘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IBM측은 “IBM은 러시아내 '외국 기업'들에 대한 지원 중단이나 정리해고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세계 각지의 러시아 기업들과 일하는 것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즉 IBM은 러시아 국적의 기업들과는 직접적인 거래를 끊었으며, 다만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과는 계속 거래한다는 의미다.

현재 다양한 업종의 외국계 기업들이 러시아에 들어가 각종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그 기업들은 여전히 IBM으로부터 IT 장비를 사는 고객사인 것이다. 실상이 그렇다면 서방 IT기업들의 러시아에 대한 IT 고립 효과는 크게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의 주요 은행 및 에너지 회사를 포함한 러시아 회사들이 SAP와 소프트웨어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SAP의 러시아 고객을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며, SAP도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IT 철수 선언만으론 러시아에 별 타격 못줄 것” 현실적

한편 기업용 SW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서방 IT기업들의 철수 선언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러시아 당국은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러시아 정부가 공격하는 서방 IT기업들은 주로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미디어 관련 기업들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의 대변인은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남게 되겠지만 떠난 빈자리는 새로운 누군가가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서방 IT기업들이 떠나면 그 빈자리를 중국 IT기업들이 차지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아직 중국 IT업체들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이는 아직 러시아가 중국 IT기업들을 부를만큼 다급한 상황이 아닐 수도 있고, 또는 미국의 견제때문에 중국이 못움직이는 것일수도 있다.

물론 '기업용 SW'의 특성상 서방 IT기업들이 러시아와의 단절을 선언한다해도 단기간에 정리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고객사와의 단절 이전에, 데이터 이전 등 필요한 조치를 선행해야하는데 이 과정이 몇개월씩 걸릴 수도 있다.

지난 3월 23일 SAP가 러시아의 클라우드 고객사게 보낸 메일은 이를 반영한다. SAP는 이 메일에서 클라우드 고객사에게 러시아 클라우드의 데이터를 삭제해야 하는지, 데이터를 고객사에 다시 전달해야하는지, 아니면 제3국(국외)으로 데이터를 이동해야 하는지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실제로 기술지원을 중단한다고 해도, 실제로 러시아가 타격을 입게될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IBM의 경우, 러시아 철도회사에 대한 IT 지원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러시아 철도의 운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러시아 철도가 IBM의 도움 없이도 몇 년 동안은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방 IT기업들의 지원 중단 선언이 진짜 말 그대로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서방 IT기업이 아니라 제3자가 해당 기업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해도 이를 마땅히 제어할 방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박기록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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