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소재

韓, 반도체 규제 이어 IRA 유예 확보 총력…가능성은?

김도현
- 업계 “근본적인 해결책 필요…유럽 RMA도 대응해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미·중 갈등이 경제 전쟁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산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와 배터리가 미국의 대중(對中) 규제 핵심으로 꼽힌 탓이다. 중국에 공장을 두거나 현지 기업과 거래 중인 회사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국내 업체들은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술 확보를 막기 위해 특정 수준의 칩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중국 제조사는 물론 현지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곳(개별 허가 필요)도 대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시안, 우시에 양산라인을 두고 있어 직간접적인 피해가 예상됐다.

다만 이들 기업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1년간 별도 절차 없이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들일 수 있도록 미국 상무부와 협의가 된 덕분이다. 지난 12일 SK하이닉스는 이례적으로 관련 내용을 공유하면서 당장 차질이 없음을 강조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년 뒤 다시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어 완전한 해소는 아니나 그동안 대안을 찾는다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기간 어떤 식으로 규제안이 바뀔지 알 수 없다. 최대한 여러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가 한숨 돌리면서 이제 시선은 배터리 업계로 향한다. 지난 8월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했다.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다루면서도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법안이다.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원, 중국 등 특정 국가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을 일정 이하로 사용 등이 골자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불똥이 한국으로도 튀었다. 1차적으로 미국 내 전기차 전용공장이 없는 현대차그룹. 미국 조지자에 해당 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나 빨라야 2025년 가동으로 2~3년 동안 손실을 피할 수 없다. 현지 전기차 시장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상승 궤도에 올라 더욱 뼈 아프다.

2차적으로 배터리 3사도 영향권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미국 공장 가동, 삼성SDI는 연내 착공으로 겉보기에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유럽 고객사 역시 미국 생산거점이 없다면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현대차와 같은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배터리 원재료인 광물 분야에서 중국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다변화 작업이 시급해졌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와 경제단체 등에서는 대책 및 시간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최근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은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나 “IRA 시행 시기를 3년 이상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자들도 미국을 찾아 어려움을 적극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표면적인 반응은 긍정적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12일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 13일 SK온 삼성SDI 임원진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국내 기업은 IRA 적용 유예를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와 찰스 프리먼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총괄 선임부회장 등은 한목소리를 냈다. 요지는 한국의 우려를 미국 정부에 전달하겠다는 점. 프리먼 선임부회장은 “한국산 전기차에도 IRA 관련 세액공제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국내 업계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북미 외 생산 전기차 보조금 제공을 넘어 광물에 대한 조치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아직 광물 제재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가령 중국에서 리튬을 추출하고 미국에서 제련한다면 상관이 없는지 등이 사례다. 최대한 동맹국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현지 전기차 공장 구축과 달리 단순히 2~3년 미룬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세부사항 조율은 필수적이다.

유럽 원자재법(RMA) 관련 대책이 나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제기된다. RMA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추정된다. 배터리 3사가 폴란드, 헝가리 등에 공장을 운영 중인 만큼 발빠른 대응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18일 윤창현 산업부 통상정책국장은 “EU는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 역내 생산 강화 등을 위해 RMA를 추진 중”이라며 “RMA가 국제규범에 합치되고 우리 기업에 차별 없이 설계되도록 초기 단계부터 민관의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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