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성장’의 즐거운 부작용…양극재 기업들, 현금흐름 악화에도 "괜찮다" [소부장박대리]
- 마이너스 현금흐름, 늘어난 재고자산…부정적으로 보기 어려워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국내 주요 양극재 제조사들은 2002년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의 급성장기를 맞아 ‘폭풍성장’의 시간을 보냈다. 매출, 영업이익과 같은 대표적 성과 지표는 업계 공통으로 ‘우상향’을 그렸다. 다만 그 과정에서 회사의 현금흐름은 오히려 악화되는 변화가 다수의 업체에서 관측된 건, 이차전지 소재 사업의 이례적 성장세가 만든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22일 기준 2022년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앨엔에프, 포스코퓨처엠(구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비엠, 코스모신소재 등 주요 양극재 회사의 손익계산서 및 현금흐름표 지표에서는 위와 같은 변화가 잘 드러난다.
이 중 엘앤에프는 지난해 양극재 제조사 중 가장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인 회사다. 2022년 연결매출 3조8872억원, 영업이익은 2663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300%, 501% 성장했다. 마이너스(-1122억원)였던 당기순이익도 2710억원을 기록, 대대적인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영업활동 현금흐름(이하 영업 현금흐름)’은 -8642억원을 기록했다. 직전년도 -138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영업 현금흐름은 기업이 제품의 생산, 판매와 관련된 영업활동에서 지출하거나 벌어들인 현금을 나타내는 지표다.
간단히 말해 영업 현금흐름이 플러스(+)면 해당 시점에 회사가 지출한 돈보다 회사에 유입된 돈이 더 많다는 의미이고, 마이너스는 그 반대다. 손익계산서에는 아직 회사에 실제 현금으로 유입되지 않은 장부상 이익 등도 포함되므로, 이익 대비 영업 현금흐름이 적절한 규모를 유지하는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다른 제조사들은 어떨까? 포스코퓨처엠은 2022년 매출 3조301억원, 영업이익 165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66%, 36.3% 성장한 수치다. 영업 현금흐름은 2021년 1030억원에서 2022년 -609억원으로 마이너스 전환됐다.
에코프로비엠은 2022년 매출 5조3576억원, 영업이익은 3806억원이다. 전년보다 매출은 260%, 영업이익은 230% 증가했다. 영업 현금흐름은 2021년 -1008억원에서 -2412억원이 됐다.
코스모신소재는 경쟁사들 대비 상대적 규모는 작지만 역시 유의미한 성장을 보였다. 2022년 매출 4856억원, 영업이익은 32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8.7%, 49% 증가했다. 영업 현금흐름은 5억4000만원이며, 마이너스 전환은 면했지만 전년도의 260억원 대비 크게 감소했다.
이처럼 이차전지 소재 산업에서 지난해 큰 매출, 이익 성장을 거둔 회사들이 영업 현금흐름에서 약세를 보인 이유는 지난해 이차전지 소재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던 영향이 크다. 이차전지용 양극재 소재로는 크게 리튬(Li), 니켈(Ni), 코발트(Co), 망간(Mn), 알루미늄(AI)이 널리 쓰인다. 그런데 전기차용 중대용량 배터리 수요가 늘면서 이들 소재를 확보하려는 제조사들의 경쟁도 심화됐다.
관련해 엘앤에프가 공시한 사업보고서 내 ‘원재료 및 생산설비’ 파트를 보면 2022년 회사가 구입한 원재료 중 99.52%를 차지하는 ‘NCM外(니켈, 코발트, 망간 등)’ 매입액은 총 4조4457억원으로 전년 9804억원 대비 35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포스코퓨처엠은 MCN 소재 매입 비용으로 전년보다 82.9% 증가한 1조6144억원을 지출했다. 코스모신소재는 리튬 비중이 크다. 2022년에 전년 대비 447% 증가한 2060억원을 리튬 매입에 지출했다. 연매출의 약 절반을 원재료 구입에 쓴 셈이다.
이를 두고 양극재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매출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계속된 원재료 구입이 영업 현금흐름에 영향을 미쳤다”며 “마이너스 현금흐름은 결국 (시장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소재 업체들이 재료 매입에 더 열을 올리는 이유는 이차전지용 양극재 소재 중 핵심인 리튬, 니켈, 코발트의 경우 ‘희소광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시장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확보 가능할 때 최대한 사들여야 장기적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부 광물들의 가격이 일부 하락 조정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엘앤에프와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재고자산 규모가 전년 대비 각각 369%, 99.5% 증가했다. 재고자산의 증가는 보통 부정적으로 해석되지만,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이차전지 소재처럼 ‘생산량=판매량’ 공식이 작동하는 시장에선 이 같은 재고가 큰 부담은 아니다. 소재 가격이 지금보다 더 하락하지 않는 이상 미리 매입한 원재료는 오히려 안정적 시장 공급을 뒷받침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한편 올해는 소재 기업들의 영업 현금흐름이 전년보다 안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원재료 구입 비용이 증가했지만 그만큼 다량의 제품 공급 계약도 체결되면서 ‘매출채권’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매출채권은 일종의 ‘외상판매’ 개념으로, 기업이 나중에 받을 돈이다. 따라서 매출채권의 증가는 단기적 현금흐름의 감소로, 매출채권의 감소는 현금흐름의 증가로 이어진다.
일례로 엘앤에프는 2022년 유동자산에 총 8000억원의 매출채권이 포함됐다. 전년 대비 195.5% 증가한 규모다. 유동자산은 보통 1년 이내에 현금화가 용이한 자산을 의미하므로 이 중 상당수는 올해 앨앤에프로 유입될 현금이라 볼 수 있다. 에코프로비엠이 기록한 2022년 매출채권은 8773억원이다. 역시 전년보다 254.6% 증가했다. 포스코퓨처엠은 2022년 전년 대비 20.5% 증가한 2882억원의 매출채권을, 코스모신소재는 202% 증가한 1180억원의 매출채권을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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