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정책

이상한 개인정보보호 및 활용조사··· 기업이 처벌 강화 요구?

이종현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개인정보보호 및 활용에 대한 기업·기관 및 국민의 인식과 실태 등 내용을 담은 통계가 발표됐다. 그러나 일부 항목에서 의문점이 남는다. 기업이 나서서 정부에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들이 담긴 탓이다.

29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인정보위)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국민 개인정보보호 인식과 개인정보처리자의 개인정보보호 실태 등을 담은 2022년 개인정보보호 및 활용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공공기관 1000개, 종사자 수 1인 이상 사업체 8000개, 만 9세 이상 만 79세 이하 4000명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방문조사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이메일, 유선전화로 보완됐다. 통계청 국가승인통계로 지정된 이후 첫 조사다. 2022년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진행됐다.

대외 공표 가능한 국내 최초의 개인정보 관련 공식 통계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일부 요약본이 29일 우선 공개됐고 세부 내용은 30일 개인정보위 홈페이지 또는 개인정보 포털 서비스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조사에 따르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등 처리에 대한 동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정보주체의 37.8%가량에 그쳤다. 번거롭거나(37.4%) 내용이 많고 이해하기 어렵다(32.7%)는 이유에서다.
국민 10명 중 6명은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중 6명은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기관 및 국민 등 사회 전반에서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87.4%, 민간기업 83.2%, 국민 86.1%는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정보주체(국민) 중 1년 내에 개인정보 침해를 경험한 이들은 17.1%로 나타났다. 무단 수집·이용(13.7%)과 개인정보 유출(6.2%), 도용(1.5%) 등이다. 개인정보보호와 활용 중 무엇이 더 중요하느냐는 질문에는 보호가 더 중요하다(48.5%)고 한 이들이 활용이 더 중요하다(8.4%)고 말한 이들보다 많았다. 둘 다 중요하다(43.1%)고 응답한 이들도 상당수다.

정두석 개인정보위 기획조정관은 “국민들이 느끼는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이 높은 만큼,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개인정보 보호를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결과를 활용해 전문 인재 양성, 법·제도에 대한 자문 지원, 마이데이터 기반 구축 등 개인정보 신뢰사회 구현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간기업 스스로가 처별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통계결과. 산업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민간기업 스스로가 처별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통계결과. 산업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민간기업에 대한 통계에는 의아함이 남는다. 조사에서는 개인정보의 수집 목적이나 빅데이터 및 가명처리,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위한 개인정보 전송 경험이 있는 기업·기관, 개인정보보호 예산 규모, 정책 수요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는데 상당수가 ‘실태’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령 2021년 개인정보보호 예산 규모를 묻는 질문에 공공기관은 1000만~1억원을 편성했다(47.4%)고 응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전년대비 증가됐다는 응답 비율은 52.7%다. 반면 민간기업은 10만~100만원(36.7%)이라고 답한 곳이 가장 많으며 91.4%는 전년과 예산 변동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빅데이터 분석·활용 경험이 있거나 향후 계획이 있는 공공기관 30.7%, 민간기업 8.3% ▲가명처리 경험이 있거나 향후 계획이 있는 공공기관 30.1%, 민간기업 5.2% ▲마이데이터 서비스 제공 및 개인정보 전송 경험이 있거나 계획이 있는 공공기관 7% 민간기업 0.6% 등 전반적으로 공공기관이 민간기업에 비해 개인정보보호 및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산업계 종사자 대다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발했다. 조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나오기 힘든 결과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민간기업의 정책 수요 최다 응답이 과태료·행정 처분 등 처벌규정의 강화(44.6%)였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보유 규모 등을 고려한 처벌규정의 차등화 및 합리화(24%)보다도 높다. 기업들 스스로가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데, 최근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만 하더라도 처벌규정이 지나치게 강화된다는 반발 탓에 해당 내용을 완화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2021년 개인정보보호 실태조사. 이번 조사의 전신격이다.
2021년 개인정보보호 실태조사. 이번 조사의 전신격이다.

전년도 조사인 2021년 개인정보보호 실태조사와 비교했을 때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전년도에는 처벌규정의 차등화 및 합리화가 34.2%로 가장 많았고 처벌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응답은 15.2%에 그쳤다. 1년 새 생각이 반전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데 너무 극적인 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견해다.

국가승인통계에서 왜 현실과 괴리된 통계가 나온 배경으로는 통계 모집단이 지목됐다. 개인정보위는 종사자 수 1인 이상 사업체를 모두 ‘민간기업’으로 통계를 작성했다. 민간기업으로 지목된 이들 중 상당수는 자영업자 등 개인정보 업무와 연관 없는 곳들일 테고, 그 결과 답변 역시 기업보다는 일반 국민 의견에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실제 2021년 조사에서는 종사자수 1인 이상 사업체 3000개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중 5인 미만은 1410곳, 5~49명은 1015곳, 50~299명은 396곳, 300명 이상은 179곳으로 모집단이 구성됐다. 전체의 절반 가량이 5인 미만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다만 2021년 조사에서도 민간기업 대상 처벌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응답이 많지 않았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빅데이터나 가명처리, 마이데이터 같은 경우 기술적 조치가 필요한 만큼 수요처가 한정돼 있다. 수요가 있는 모집단을 대상으로 조사해야지, 자영업자에게 가명처리를 해봤는지, 계획이 있는지 묻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봐야겠지만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담겼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든다면 그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종현
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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