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장 가동 중단한 후성..."조금 더 유연했더라면" [소부장박대리]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후성이 지난 14일 전기차용 전해질(LiPF6, 육불화인산리튬) 생산기지인 울산공장의 LiPF6 생산을 멈춘 이유로 고객사들과의 '불협화음'이 있었단 주장이 나왔다. 후성은 ‘전방 전해액 고객사 재고 조정’을 이유로 공시했지만, 실상은 이미 거래가 중단된 상황이다.
▲ 후성이 생산하는 LiPF6 제품 이미지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후성 울산공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고객사들의 신규 주문을 받지 못했다. 이미 생산된 물량은 재고로 쌓이기 시작했고, 재고의 장기 보관 등이 손해로 이어지면서 생산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재무제표상 후성의 재고자산 규모가 2021년 619억원에서 2022년 1100억원으로 크게 증가한 점도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후성이 생산하는 LiPF6는 전해액 제조에 가장 널리 쓰이는 소재다. 후성의 관련 매출은 2022년 기준 922억원이며 전체 매출 대비 15.1%의 비중이다. 국내 전해액 주요 전해액 제조사인 엔캠, 솔브레인, 동화일렉트로라이트 등이 주요 고객사였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최근 후성 대신 중국 업체를 비롯한 여러 경로에서 LiPF6를 확보하고 있다. 일례로 엔켐은 지난 17일 코스닥 상장사 중앙디앤엠과 국내 LiPF6 리튬염 생산 합작법인(JV)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전해액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해액은 IRA(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영향을 즉각 받지는 않는 상황인데 후성의 제품은 중국산 대비 가격 경쟁력이 낮다"며 "이전에도 가격 조정이 필요했던 시기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않은 점이 이번 생산 중단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컨대 전해액 원료 시세가 폭락하면 전해액 제조사들은 배터리 제조사로부터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특정 가격에 LiPF6 장기공급 계약을 맺었다면 달라진 원료 시세가 생산 단가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 이때 전해액 공급가 조정이 이뤄질 경우 제조사는 손해다.
반대로 전해액 원재료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LiPF6 장기공급 계약을 맺어야 원가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 간 이와 같은 상황에서 후성은 가격 조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후성은 사업보고서에서 자사를 '국내 유일의 LiPF6 생산 기업’으로 소개하고 있다. 원재료 공급의 안정성 측면을 고려하면 국내 전해액 제조사들에겐 우선순위의 협력사였다. 이 점 때문에 협상의 주도권은 주로 후성 측에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도 수요의 증가나 공급 부족 현상 등 사이클(Cycle) 변화가 발생하는 시기가 있다. 어려울 땐 서로 암묵적 배려가 필요한데, 후성은 이 점이 아쉬웠다"고 부연했다.
결국 국내 전해액 제조사들은 업황상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업체들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업계에선 후성의 LiPF6 판로가 막힌 지 최소 6개월 이상 지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장기보관 시 수분에 의한 뭉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소재 특성상 후성이 현재 보유한 재고 처리나 폐기도 이미 쉽지 않을 상황일 것으로 예상했다.
후성이 언제쯤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최소 올해까지는 전해액 제조사들이 중국산 LiPF6를 사용하더라도 미국 배터리 세액공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 내 리튬가격 폭락으로 중국산 LiPF6 가격도 더 낮아진 상황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후성 측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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