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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KB 내분 사태'의 악몽?… '관치' 우려 떨쳐낸 KB 차기회장 숏리스트 [DD인사이트]

권유승 기자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차기 회장 후보 숏리스트를 3명으로 압축했다. (왼쪽부터)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 허인 KB금융지주 부회장, 김병호 베트남 HD은행 회장. ⓒKB금융‧하나금융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차기 회장 후보 숏리스트를 3명으로 압축했다. (왼쪽부터)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 허인 KB금융지주 부회장, 김병호 베트남 HD은행 회장. ⓒKB금융‧하나금융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다소 중량감이 약하다."

지난 29일 '2차 숏리스트' 공개후, KB금융그룹의 차기 회장 후보 3인중 김병호 베트남 HD은행 회장에 대한 전반적인 업계의 평가다.

김병호 회장은 이번 KB금융의 2차 숏리스트 대상자에서 유일하게 외부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며 관심을 받았다. 내부 후보자는 예상대로 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과, 허인 KB금융지주 부회장이 나란히 선정됐다.

김병호 회장에 대한 관심은 앞서 KB금융이 1차 숏리스트 선정 당시 외부 후보자들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았던 영향이 크다. 1차 숏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던 외부 후보자는 모두 3명이었다.

그러다보니 외부 후보자에 대한 추측과 억측도 즐비했다.

특히 MB, 박근혜 정부 등 과거 보수 정권때 호흡을 같이한 중량감 있는 금융경제 관료 출신이 포함 됐을 것이란 예상이 적지 않았다.

더구나 최근 금융 당국의 금융권에 대한 입김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어쨌든 당국과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관출신이 적합하지 않겠냐는 이유도 나왔다.

여기에 '포스트 윤종규'로 거론되던 내부 후보자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아 이와 경합을 벌일 수 있는 거물급 정치권 인사가 낙점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관출신이 아닌 기업인 출신인 김병호 회장이 등장하자, 뻔한 판을 뒤흔들 다크호스를 기대했던 관중(?)들의 맥이 빠진 모습이다.

물론 김병호 회장 역시 하나은행장,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후보자들과 비교했을 땐 특별히 눈에 띄는 이력은 아니라는 평가다. 양종희 부회장과 허인 부회장의 경우 각각 금융권 수장으로 '3연임'을 달성한 바 있다. 사실상 '양종회-허인' 2파전으로 좁혀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가운데 KB금융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그 이면엔 일명 'KB 내분 사태'를 의식한 처사가 아니냐는 말이 나와 관심을 끈다.

'KB 내분 사태'는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KB국민은행의 전산주기 교체를 두고 당시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 은행장이 소위 '집안싸움'을 일으킨 사건이다.

KB금융은 2014년 5월 주전산시스템을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감사의견서를 이사회에 제출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이사회에서 감사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건호 은행장이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요청하는 초강수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임 회장 측과 이 행장이 지지하는 국민은행의 주전산시스템 기종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의 주전산시스템(메인프레임 기종)을 공급해온 IBM이 이건호 행장에게 자사 기종의 사용을 계속 사용해줄 것을 청탁한 메일이 세간에 공개되기도 했다. 반면 임 회장측은 당시 국내 은행들이 차세대시스템으로 채택했던 '유닉스'(UNIX) 기종을 지지했다. 물론 여전히 국민은행은 국내 은행권에서는 유일하게 IBM 메인프레임 기종을 주전산시스템으로 사용중이다.

결과적으로, KB 내분 사태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고, 끝내 각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마무리 됐다.

특히 KB 내분 사태에서 주목할 부분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의 권력 싸움의 본질이 결국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임 회장은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으로 KB금융 회장에 올랐을 때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으며, 이 행장 역시 당시 정권의 압력으로 행장에 선임 됐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KB 내분 사태로 인한 내홍으로 KB금융은 대외 이미지 추락은 물론 실적마저 한동안 내리막 길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이 때 소방수로 나서 KB금융을 리딩금융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이 바로 윤종규 KB금융 회장이다.

윤종규 회장이 일찌감치 회장 승계 절차에 관심을 두고 이를 진행했던 것도 관치 논란에 물들었던 당시 KB 내부 사태와 관련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외부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았던 1차 숏리스트 당시 이를 두고 오히려 관치를 위한 장치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었다.

그러나 이번 KB금융 차기 회장 레이스에서 외부 후보자로 김병호 회장이 낙점되면서 관치 우려도 애초에 사라졌다.

올해 수장으로 선임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준 농협지주 회장이 아직까지도 관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결과적으로 KB금융의 '관치 논란 피하기' 전략은 세련됐다.

오는 8일 세간의 관심을 모은 KB금융의 차기 회장이 결정된다. 과거 'KB 내분 사태'로 쏘아올려진 작은 공이, 10년뒤 KB금융의 자율경영을 보다 공고하게 하는 반면교사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권유승 기자
ky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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