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교묘해진 정산 왜곡…韓 음원업계도 글로벌 추세 따를까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전 세계 음원 시장에서 불법 스트리밍 또는 저품질 음원 양산 등을 통한 정산 왜곡 수법이 인공지능(AI)과 결합해 고도화하는 추세다. 특히 현행 정산 방식인 ‘비례배분제’ 영향으로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례배분제는 음원의 재생수 점유율에 따라 저작권료가 정산되는 구조로, 사재기 등 불법 스트리밍을 통해 재생 수를 인위적으로 높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디 밴드 등 비주류 장르 아티스트는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음원 시장에선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이용자별 정산’ 등 새로운 정산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인 반면, 국내는 아직 비례배분제를 중심으로 저작권료가 정산되고 있다. 최근에야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함저협)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련), 한국음반산업협회(음산협) 3개 신탁단체를 대상으로 한 ‘음악 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에 이용자별 정산이 추가됐다.
◆생성형 AI 등장으로 교묘해진 음원 정산 왜곡…해외선 당면 과제로 인식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불법 스트리밍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산업이 직면한 문제다. 프랑스 국립음악센터 CNM이 지난 2021년 진행한 스트리밍 현황 연구에 따르면 스포티파이 등 음원 서비스 전체 스트리밍 중 1%~3%가 비정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스트리밍 모니터링 기업 Beatdapp은 CNM이 미처 밝히지 못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비정상 스트리밍 비중은 10%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전 세계 음원 스트리밍 시장 규모로 환산하면 약 17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한화로 2조3000억원 이상이 불법 스트리밍 음원에 정산되는 셈이다.
업계는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불법 스트리밍 문제가 한층 가속할 것으로 우려한다. 저품질 음원을 쉽게 대량 생산해 음원 서비스에 등록한 후, AI봇 등을 활용해 스트리밍 수를 조작할 수 있어서다.
지난 5월 스포티파이는 음악 콘텐츠 제작 서비스 ‘부미(Boomy)’의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들어진 음원 상당수를 삭제했다. AI 자동 프로그램으로 청취자 수를 조작해 스트리밍 수를 부풀려 정산금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부미는 원하는 음악 스타일, 리듬 등을 입력하면 약 1분 만에 음악을 만들어 준다. 2년 동안 이용자들이 부미에서 만든 음원은 약 1400만개에 달한다. 비례배분제하에선 이러한 음원 재생 수가 늘어날수록 실제 아티스트에 정산되는 저작권료는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해외선 이용자별·아티스트별 정산 등 다양한 대안 실험 중
이미 해외에선 불법 스트리밍 등으로 인한 정산 왜곡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비례배분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산 방식에 대한 논의가 지속돼 왔다. 대표적인 대안이 이용자가 실제로 들은 음악에만 사용료를 정산하는 이용자별 정산이다.
이용자별 정산은 아무리 특정 곡을 반복 재생하더라도 이용자가 낸 사용료만큼만 해당 곡에 정산돼 매크로 등을 통한 스트리밍 수 조작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운드클라우드는 지난 2021년부터 이용자별 정산을 기반으로 자체 정산시스템 ‘팬 파워 로열티 시스템(FPR)’을 운영하고 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따르면 FPR 도입 이후, 독립 아티스트 약 13만5000명 정산금이 비례배분제 대비 평균 60% 증가했다.
독일 인디음악 단체 프로 뮤직(PRO MUSIK)이 지난 6월 발표한 리포트에서도 이용자별 정산 방식으로 한층 투명한 정산이 이루어진 데 따라 저작권료 편중 현상이 완화됐다는 조사가 나왔다.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전 세계 약 150만명 스트리밍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용자별 정산을 통해 저작권료의 32.6%가 보다 다양한 아티스트에 재분배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악셀 뮐러(Axel Müller) 프로 뮤직 회장은 “단순히 재생 수를 세는 것은 아티스트 성과를 측정하는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이용자별 정산과 같은 새로운 정산 방식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최근 세계 최대 음반 회사 유니버설뮤직은 프랑스 음원 서비스 ‘디저(Deezer)’와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산 방식(artist-centric)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AI와 전문 아티스트를 구분해 정산하는 방식으로, 한 달에 최소 1000명이 듣는 곡을 보유한 아티스트가 전문 아티스트로 분류된다. 전문 아티스트엔 스트리밍 로열티가 2배로 책정되며, 이용자가 아티스트나 특정 음원을 직접 검색해서 청취하면 로열티는 4배가 된다.
폴게이라 디저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정산 방식을 통해 아티스트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다 공정한 음원 시장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며 “지속적으로 아티스트별 정산 방식을 고도화해, AI가 만들어 낸 빗소리나 세탁기 소리 음원보다 진짜 아티스트 노래 가치가 인정받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별 정산, 국내선 ‘네이버 바이브’만 적용…업계 차원서 적극 논의해야
국내 음원업계에서도 새로운 정산 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현재 네이버 바이브(VIBE)만이 유일하게 이용자별 정산을 도입해 자체 정산시스템(VPS, VIBE Payment System)을 운영 중이다. 멜론과 NHN벅스, 플로, 지니뮤직 등 음원 플랫폼들은 이용자별 정산을 추후 필요에 따라 검토할 예정이거나, 아직 도입 계획이 없는 상태다.
다만, 업계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용자별 정산 항목을 더한 음악 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을 승인한 만큼, 이제 국내도 새로운 정산 방식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최근 AI를 이용한 무분별한 음원 제작이나, 인위적 매출 증대를 위한 음원 어뷰징 시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이러한 부정적 변화에 대비해 새로운 정산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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