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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법’ 찬성론자와도 의견 충돌…공정위 일보후퇴, 예견된 순서였나[IT클로즈업]

이나연 기자

7일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플랫폼법 제정 관련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소상공인 업종에 직접적인 피해는 주는 플랫폼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라는 응답률이 76.6%였다. [ⓒ 소상공인연합회]

[디지털데일리 이나연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에 찬성표를 던진 일부 소상공인 단체마저도 이 법안 핵심인 사전 지정·규제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이날 플랫폼법이 사실상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법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건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플랫폼법 제정 관련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플랫폼법의 규율 대상으로 언급되는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소상공인 업종에 직접적인 피해는 주는 플랫폼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라는 응답률이 76.6%에 달했다.

반면 ‘법은 최소한의 규제로 파급력이 큰 소수 거대플랫폼만 지정해야 한다’라는 응답은 14.4%에 그쳤다. 대한숙박업중앙회 관계자는 “수수료가 없거나 낮은 네이버나 카카오만 규제 대상에 오르고, 야놀자, 여기어때 등 과도한 수수료와 광고비를 요구하는 숙박 플랫폼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소식에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라고 전했다.

플랫폼 업종별로 소상공인에 미치는 시장 지배적 영향력이 방대한 만큼, 어느 특정 플랫폼 기업만 규제 대상으로 선정해선 안 된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 거대 플랫폼에 한해 사전규제에 나서겠다던 공정위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정위가 작년 12월 중순부터 추진한 플랫폼법은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 기업을 사전에 지정, 끼워팔기·자사우대(자사 상품을 유리하게 취급)·최혜대우(거래조건을 다른 유통경로 대비 유리하게 요구)·멀티호밍(다른 플랫폼 이용) 제한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지정 기준이나 대상 기업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업계는 이 법안이 적용될 사업자로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와 미국의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이 유력하다고 점쳤다.

유독 공정위가 ‘사전지정’ 제도를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선 반칙행위 시점과 시정조치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발생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즉, 대형 플랫폼에 대해 사전규제가 이뤄지면 시장 경쟁이 촉진돼 소상공인과 스타트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란 게 공정위 생각이다. 하지만 사전지정 규제를 놓고 소상공인들과 공정위 사이에 온도 차가 있다는 것 자체가 플랫폼법이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소상공인 주장처럼 ‘유관 플랫폼 모두가 법을 적용받아야 한다’라는 말은 기존 공정거래법 내용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는 “플랫폼법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참조했기 때문에 자꾸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U가 DMA를 시행하는 것은 앞서 공정위가 법 기대 효과로 밝힌 중소상공인 보호 등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시장 지배력이 큰 미국 빅테크 플랫폼에 대항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전성민 교수는 “유럽에선 플랫폼 시장 내 독점적 지위를 가진 미국 빅테크를 통해 유럽의 개인정보들이 미국으로 유츌되는 데 우려가 크다”라며 “한국과 유럽 사정이 다르다 보니 법안 논의 자체가 변질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업계 곳곳에서도 일찍이 반대 움직임이 일면서, 조만간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던 공정위도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같은 날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주요업무 추진계획’ 사전 브리핑 간담회를 열고 “당장 법안 내용을 공개하기보다 법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전문가·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라고 밝혔다.

플랫폼법의 핵심 골자인 사전지정제도의 대안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종 정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조홍선 부위원장은 “사전지정 제도가 필요한지,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더 검토하겠다”라는 취지라며, 법안 발표 시점을 무기한 연기한 게 곧 사전지정제도를 폐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플랫폼법 추진 방침이 알려진 후, 국내 정보기술(IT)협회 연합체인 디지털경제연합뿐만 아니라, 플랫폼 입점 사업자 단체와 벤처·스타트업 업계, 소비자단체까지 연이어 반대 목소리를 냈다. 최근엔 미국상공회의소와 국회입법조사처까지 우려를 표했다.

학계 전문가들도 플랫폼법의 사전규제 취지와 내용 자체가 모호하고, 플랫폼 시장 전역에 연쇄적으로 가해질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심지어 공정위가 플랫폼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두 달 차에 접어든 지금도 초안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업계에 공유되지 않아 불확실성과 혼란만 늘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나연 기자
ln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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