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게임, 중국 거쳐 중동으로 인도로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지난해 아쉬운 실적 성적표를 받은 국내 게임사가 신시장 개척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는 모양새다. 판호(허가증) 발급이 재개돼 수출문이 열린 중국 시장을 재차 두드리면서도, 잠재력이 뛰어난 중동과 인도 지역으로도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다.
◆시장 불확실성 크다지만…그래도 중국
5일 업계에 따르면 넥슨과 넷마블, 위메이드 등 국내 게임사는 올해 순차적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지난 몇 년간 판호가 발급되지 않아 막혔던 수출길이 비로소 열린 영향이다. 판호는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필요한 일종의 허가증이다.
지난 몇 년간 판호 발급에 인색했던 중국 당국은 지난해 돌연 태도를 바꿨다. 12월 외산 게임 40종에 판호를 발급하더니, 올 2월 들어선 32개 게임에 허가를 내줬다. 한국 게임으로는 ‘블레이드앤소울2(엔씨소프트)’, ‘미르M(위메이드)’, ‘라그나로크X(그라비티)’, ‘던전앤파이터오리진(넥슨)’, ‘고양이와스프(네오위즈)’, ‘더킹오브파이터즈올스타(넷마블)’ 등 7종이 이름을 올렸다.
판호 발급이 재개되며 오랜만에 중국 시장에 발 디딜 기회를 얻은 국내 게임사들은 서비스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당국의 오락가락 규제로 인해 불확실성이 크고, 한국 게임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업계는 중국을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의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2년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467억 달러(한화 약 62조)로, 한국 시장(162억 달러‧21조)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최근 국내 게임사는 대개 현지 퍼블리셔를 통해 중국 서비스를 준비한다. 이는 게임을 직접 유통하지 않는 만큼 비용 부담을 동반하지 않으면서 매출 확대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지에서 일정 성과만 거둬도 실적 개선에 동력이 생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서는 셈이다.
당장 올 상반기부터는 판호를 발급받은 게임사 중심으로 중국 진출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넷마블은 지난달 28일 현지 퍼블리셔 텐센트를 통해 ‘제2의나라: 크로스월드’의 중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 37게임즈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은 위메이드는 ‘미르4’의 2분기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넥슨도 효자 게임 ‘던전앤파이터모바일’을 연내 선보여 독주 체제를 굳히겠단 각오다.
◆7조 잠재력 가진 중동 시장… K-게임, 실크로드 개척할까
상대적으로 낯선 중동 땅에서 활로를 찾는 게임사도 있다. 중동은 종교로 인한 폐쇄성과 미비한 통신 인프라 등으로 인해 과거 ‘험지’로 통했다. 다만 최근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주도로 게임 산업 지원이 활성화되면서 잠재 가치가 높은 신흥 시장으로 떠올랐다.
특히 빈 살만 왕세자의 국부펀드(PIF)를 앞세운 사우디의 성장이 괄목할 만하다. 사우디는 게임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국내외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아츠(EA) 등 유명 해외 게임사 뿐만 아니라 엔씨소프트와 넥슨 등 국내 게임사에도 투자해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이스포츠 사업 확대도 꾀하고 있다. 수도 리야드에선 올해 여름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상금을 내건 ‘e스포츠월드컵’이 개최될 예정이다. 사우디는 리야드에 15만평에 달하는 게임‧e스포츠 지구를 만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스포츠 전용 구장을 건립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니코파트너스는 이러한 행보에 힘입어 중동 게임 시장 규모가 2022년 18억달러(2조4000억원)에서 2026년 28억달러(3조73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유럽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2021년 30억달러(약 4조원) 수준이었던 중동·북아프리카(MENA) 게임 시장이 2027년에는 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동 내 게임 관심이 커지고 있는 점도 시장 매력을 키우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게임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콘진원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와 UAE 이용자들이 타 국가 대비 월평균 게임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UAE 이용자는 PC·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에서 각각 평균 159.05달러, 155.03달러를 써 1위에 올랐다. 사우디 이용자는 콘솔 게임에 가장 많은 117.39달러를 사용했다.
보고서는 “중동 지역은 코로나19 이후 게임 시장 붐이 일어나 플랫폼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즐기는 인기 있는 오락 중 하나가 됐다”며 “특히 여성과 X세대와 같은 과소 평가된 집단으로부터 소비자 유입이 증가하며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크래프톤을 시작으로 여러 게임사가 중동 시장 개척을 모색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모바일’이 사우디와 UAE 양대 앱 마켓에서 매출 선두권에 오르면서 연착륙에 성공했다. e스포츠 월드컵 종목으로도 채택되는 등 추후 영향력 확대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위메이드는 가상자산 위믹스를 중심으로 중동 시장 공략을 꾀하고 있다. UAE 아부다비에 ‘위믹스 메나’ 법인을 설립했고, 두바이 상공회의소와 두바이국제금융센터 이노베이션허브 내 ‘위믹스 플레이 센터’ 설립도 추진 중이다. 컴투스 또한 중동 지사 설립을 검토 중이다.
◆중국 추월할 수도… 무섭게 성장하는 인도 시장
인구 성장세를 바탕으로 무섭게 규모를 키우는 인도 시장도 국내 게임사 레이더에 들고 있다.
KPMG 조사에 따르면 2016~2020년 인도 온라인 게임산업은 연간 280억~900억 루피(한화 약 4505억원~1조4481억원)씩 성장하며 연평균 성장률 34%를 기록했다. 중국 게임 시장이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것과 유사하다.
니코파트너스는 지난해 4억4400만명 규모의 인도 게임 이용자 수가 2027년에는 6억41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1조원을 넘어선 게임 시장 규모는 2027년 16억 달러(약 2조1345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2023년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로 자리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2017년부터 2027년까지 10년 간 인도의 게이머 수는 343% 급증한다”고 설명했다.
인도의 높아진 소득과 인터넷 접속성의 확장, 저렴한 스마트폰의 보급 등이 이를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도 게임 이용자 중 96.8%는 모바일 이용자다.
실제 인도 시장 잠재력은 크래프톤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2021년 출시한 ‘배틀그라운드모바일인도(이하 BGMI)’는 10개월간 서비스가 중단됐음에도 2년간 누적 매출 1억 달러(약 1334억원)를 올렸다. 덕분에 크래프톤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치인 매출 1조9106억원을 거뒀다.
후발주자도 등장 중이다. 데브시스터즈는 최근 크래프톤과 ‘쿠키런’ 지적재산(IP)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인도 시장 진출 의지를 피력했다. 데브시스터즈는 신작 흥행 부재로 경영 위기에 빠진 상황인데, 크래프톤의 노하우를 빌려 인도 시장에서 반등을 꾀하겠단 심산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중동과 인도 시장은 최근 인터넷 인프라와 게임 기기 공급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게임 이용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모바일 게임에 대한 수요가 높아 한국 게임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편이다. 중국처럼 판호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동과 인도는 여전히 폐쇄적인 지역이다. BGMI 중단 사례에서 보듯 예상치 못한 변수도 발생한다”면서 “현지에 맞춰 아이템 등을 변경해야 하는 등 세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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