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퀘스트] ③ 걸음마 뗀 웹3 게임 시장… 방향키 쥔 K-게임
가파르게 성장하던 글로벌 게임산업은 최근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게임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데다, 영상 콘텐츠 산업의 약진까지 더해져 경쟁이 더욱 심화해서다. 시장조사기관 포츈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주요 고객 연령대인 18~24세 게이머 수는 전년에 비해 15% 감소했다. 미국 내에서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젊은 층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게임사로선 기존 이용자를 붙들고, 나아가 새로운 이용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퀘스트’ 수행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AI 활용, VR‧XR 게임, 웹3 게임 개발 등을 앞세워 새로운 혁신에 나선 업계 여정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블록체인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진정한 소유권을 제공함으로써 게임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게임 개발자에게도 혁신적인 기회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는 게임 산업 전체를 재편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업계 거장으로 꼽히는 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즈 회장은 각종 인터뷰와 강연에서 웹3 및 블록체인 게임이 게임 산업의 미래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더 샌드박스의 공동 창립자인 세바스찬 보르제 또한 “웹3와 블록체인 게임은 단순히 게임 산업 변화를 넘어서, 인터넷 자체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웹3 게임이 게임산업 혁신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게임 자산의 소유화가 가능해서다. 전통적인 게임은 아이템의 소유권이 전부 게임사에 있다면, 탈중앙화를 원칙으로 하는 웹3 게임은 디지털 자산 소유권을 사용자에 부여해 자유로운 거래와 이익 창출이 가능하다.
또한 서로 다른 플랫폼과 상호운용 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게임에서 획득한 자산을 다른 게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더라도 개인이 노력을 들여 쌓아둔 재화의 가치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용자가 게임의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웹3 게임의 가능성은 베트남 개발사 스카이 마비스가 개발한 ‘엑시인피니티’로 확인했다. 지난 2018년 출시된 이 게임은 엑시라고 불리는 디지털 생물을 수집해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엑시인피니티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암호화폐를 벌 수 있는 ‘플레이투언(P2E)’ 모델을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게임 내 아이템과 자산을 NFT(대체불가능토큰) 형태로 제공하고, 플레이어가 이를 거래할 수 있게 했다.
흥행세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2021년 당시, 엑시인피니티 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270만 명을 돌파했다. 스카이마비스의 기업 가치는 약 30억 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P2E 모델 중심의 블록체인 및 웹3 게임은 곧 적잖은 한계를 노출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 환경에 따라 자산 가치가 등락을 반복하면서 게임 경제 지속성과 건전성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셀링 포인트가 사라진 셈이다.
게임이 재미 추구보다는 돈을 버는 수단이 되면서, 전통 게이머들의 부정 인식이 커진 점도 웹3 게임 시장 성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수익 창출에만 초점을 맞춘, 플레이 재미와 품질이 현격히 낮은 게임들이 웹3 시장을 채우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짙어졌다.
시장조사기관 게임7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전체 웹3 게임 중 AAA급 퀄리티 게임으로 취급된 것은 1%에 불과했다. 기존 시장이 약 4~5%것과 대조된다.
해외 매체 블록체인게이머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블록체인 게임의 가장 큰 성장 장애물이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30% 이상이 ‘낮은 게임 퀄리티’라고 답했다.
일본 개발사 세가의 우츠미 슈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인터뷰에서 “P2E 게임은 지루하다”며 “게임이 재미없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반문한 일례는 유명하다.
웹3 게임을 개발하는 국내 한 게임사 관계자는 “냉정히 말해 지금 웹3 게임 시장에 게이머는 극히 소수다. 상당수가 암호화폐 투자자나 채굴자”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로 인해 웹3 게임 시장은 2022년 암호화폐 하락장 도래와 함께 하락세를 탔다. 게임7 웹3 게이밍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웹3 게임 관련 투자금액 규모는 15억 달러로 2022년 전체 투자금 대비 약 84% 감소했다.
또 빅블록체인게임 리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발이 중단된 웹3 게임은 407개로 상반기에만 248개에 이른다. 이는 보고된 웹3 게임 전체의 약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웹3 게임 시장은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고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자, IP(지식재산) 지속성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크립토윈터를 거치면서 게임사들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다각도로 고민해왔다.
이 가운데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웹2.5 게임이다. 본연의 재미에 집중한 전통 게임에다 토큰 경제를 이식한 게임을 통해 이용자 유입을 활성화한다는 복안이다.
INF크립토랩은 ‘웹3 게임의 원피스는 웹2.5 게임에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블록체인 게임 성공의 핵심은 웹3, 탈중앙화, 새로운 P2E가 아닌 웹2 유저들의 온보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순 웹2 게임 회사들이 가지고 있던 개발력과 기획력, UI/UX를 활용하고 여기에 블록체인의 기능을 조금씩 감미하는 웹2.5 게임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부연했다. 이들은 게임 특화 블록체인 오아시스(OAS)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 암호화폐 전문 투자 벤처 a16z는 ‘2024년 블록체인 시장 전망’에서 웹3 게임이 P2E에서 ‘플레이앤언(Play and Earn)’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웹3 게임들이 그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이제 진정 게임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국내 게임사들에게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관측된다. 국내 블록체인 게임 선두주자인 위메이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사 게임에 토큰 경제를 입힌 게임을 블록체인 전문 게임 플랫폼 위믹스플레이를 통해 공개하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토큰 경제를 구현해 출시한 ‘나이트크로우글로벌’은 동시 접속자 34만명을 돌파하고, 이달에만 750억원 매출을 거둬들이는 등 시장 수요와 잠재성을 재확인했다.
게임업계 맏형 넥슨도 웹3 게임 시장 문을 두드리려는 참이다. 넥슨은 연내 블록체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유니버스’를 출시한다. 출시 20주년을 넘긴 장수 게임이자 전 세계 1억8000만 이용자를 보유한 자사 대표 IP ‘메이플스토리’를 기반해 만들었다.
유니버스 내 ‘메이플스토리N’과 ‘SDK’ 등 샌드박스 형태의 게임으로 이용자 창작 활동이 가능하고, 필드 내 아이템 공급 수량을 제한하고 투명하게 공개한 점이 원작과 차별 지점이다. 20년간 누적한 콘텐츠가 깊고 다양한 만큼,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 받는다.
웹3 게임사 한 관계자는 “웹3 업계에선 넥슨이 희망이라는 얘기를 하곤한다. 넥슨이라는 대형 게임사가 시장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도 시장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메이플스토리유니버스의 차별화된 시장 경제 확립 시도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웹3 게임들이 토큰노믹스 중심의 생태계에 집중하는 반면, 메이플스토리유니버스는 토큰 기반 리워드 시스템과 함께 커뮤니티 활동에 초점을 맞춘 C2E(Creat to Earn) 구조를 취했다.
창작자들에게 NFT 기반 아이템 제작 기회를 제공하는 해당 방식은, 게이머의 능동적인 생태계 참여를 장려하고 더 넓은 선택 폭을 제공해 생태계 선순환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 국내 게임사들도 관련 투자를 지속하며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컴투스 그룹은 국내 주요 게임사 가운데 유일하게 신년사에서 웹3 게임을 언급하며 시장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은 자사 플랫폼 엑스플라의 게임 라인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글로벌 게임사 카보네이티드의 게임을 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게임을 생태계에 합류시킬 계획이다.
네오위즈는 웹3 게임 플랫폼 인텔라X 플랫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가상자산 지갑 인텔라X 월렛을 소프트런칭하고 16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출시를 준비 중이다. 넷마블은 ‘마브렉스’, 카카오게임즈는 ‘보라’를 통해 게임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한층 완화된 암호화폐 시장 환경은 게임사 사업 전략에 탄력을 더할 전망이다. 최근엔 암호화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이어 이더리움도 사실상 현물 ETF 상장 승인을 받으면서 관련 시장에 다시금 활기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 시장조사기관 맥시마이즈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웹3 시장규모는 2021년 56억9000만 달러에서 2022~2029년 643억8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밴티지마켓리서치는 글로벌 웹3 블록체인 시장이 2028년까지 233억 달러에 이르고, 2022~2028년까지 연평균복합성장률(CAGR)이 41.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규제 완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웹3 게임 시장이 콘솔 등 패키지 게임 중심의 서구권 지역보다는 부분 유료화 모델이 익숙한 아시아 지역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와 경쟁하려면,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단 지적이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P2E 게임 때문에 한참 된서리를 맞았던 터라, 최근엔 웹3 게임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도 “그럼에도 웹3 게임은 미래에 가야 할 방향이다. 개인 창작자 시대가 오면서 꼭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콘텐츠에 기여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리워드가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국내에선 이런저런 규제로 인해 성장에 문제가 많다. 22대 국회에서는 가상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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