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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업무지시 그만” 연결되지 않을 권리, 한국서도 정책 논의 시동

최민지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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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업무가 확대되면서, 근로시간 외 메신저 등을 통한 업무지시가 지속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에 따른 노동자 휴식권 보호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세계 곳곳에서 제기됐다.

실제, 미국을 비롯해 각국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는 근무시간 외 연락을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지난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호 방안 마련’ 사업을 공고했다.

NIA는 “퇴근시간 후 디지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로 인한 휴식권 침해 문제 등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상황이지만, 법제‧기업 내 관행에 적합한 보호방안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부족하다”며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근로시간-비근로시간 구분 등 근로시간 제도 전반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과돼 있어 해외 입법동향과 현장 노사의견, 법적 쟁점을 종합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NIA에 따르면 이번 사업을 통해 해외 입법동향을 조사할 예정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근무 시간 외 업무 연락을 금지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률로 보호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 경우, 5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노사 협의 내용을 연례 협상에 포함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고용주에게 1년 이하 징역 또는 3750유로(한화 약 558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로그오프법’을 시행 중이다.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와 디지털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단체협약 등을 통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내 규정을 제정하도록 명시했다. 호주에서도 고용주가 긴급상황을 제외하고 근로자에게 근무 시간 외 연락하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한 고용주는 벌금을 부과 받게 된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정근로법’ 개정안은 지난 2월 상‧하원을 통과했다.

미국에서도 민주당 소속 맷 헤이니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이 퇴근한 직원에게 연락을 하면 최소 100달러(약 14만원) 과태료를 내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을 지난 2월 발의했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의 제도화 방안과 함께 사회적 공론화‧입법과정에서 부각된 쟁점 및 해결방안을 조사할 방침이다.

또한, NIA는 현장 실태조사와 노사 의견수렴을 제시했다. 국내 실정에 맞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호 방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다. 자율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우수사례도 발굴할 예정이다.

NIA는 제안요청서를 통해 현 제도를 통한 보호 가능성, 근로기준법 체계와 정합성 있는 규율 내용 및 방법 등 제도화 방안을 검토하고, 단계적으로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호는 정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 추진계획’ 8대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정부는 디지털 심화 시대 일할 권리와 쉴 권리를 균형있게 보장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사정 논의를 통해 본격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주관기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고용노동부가 맡고, 전담기관은 NIA로 정해졌다. 전문가 자문단도 필요 때 도입하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호 정책은 이제 첫 삽을 뜬 시작 단계로 최종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정책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노사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에서도 헤이니 의원 법안 발의에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가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기업 유연성을 퇴보시키고, 회사와 직원 간 의사소통을 막는 법안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도 2016년 신경민 전 의원(더불어민주당), 2022년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을 내놓았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NIA 제안요청서에서 말하는 가이드라인은 연구하는 분들이 수립하는 것으로, 실제 공표되는 최종 가이드라인이 아니다”며 “한국에서 제도화 노력에 대해서는 이제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논의는 사실상 초기 시작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노사 이슈가 첨예한 만큼, 고용노동부에서 대화의 장을 열 것으로 보인다”며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이번에 처음 소개된 만큼, 각 부처에서 고민 중이며 여러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민지 기자
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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