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한물갔다는 8인치(200mm) 반도체까지 살아났다. 국내에서는 DB하이텍이 대표적인 회사다. 8인치만으로도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섰다. 투자 등 회사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DB하이텍은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은 12인치(300mm) 반도체 투자 계획이 없다.
코로나19 국면에 들어서기 전까지 반도체 시장은 8인치에서 12인치로 전환되고 있었다. 웨이퍼가 커질수록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TSMC 삼성전자 등은 10년 전부터 세대교체를 진행했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인 메모리는 이미 12인치로 전환이 끝난 상태다.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시스템반도체 응용처와 수요가 확대한데다 팬데믹 시대에 완성차업체의 수요 예측 실패가 맞물리면서 8인치 생산라인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다. 하이엔드 제품이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제조 단가가 낮은 8인치가 유리한 부분이 있다. 8인치 웨이퍼에서는 전력관리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이 제작된다.
사실 DB하이텍은 2010년대 중반만 해도 매각설에 시달렸다. 2013년까지 적자를 낼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당시 DB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주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몇몇 계열사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8인치가 퇴물 취급받으면서 향후 비전도 밝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부터 5세대(5G) 이동통신, 자율주행차 등 분야가 본격화되고 반도체 시장 전반이 살아나면서 DB하이텍도 반등에 성공했다. 2019년 8000억원, 2020년 9000억원, 2021년 1조원을 돌파하며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DB하이텍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회사 내부에서도 신공장 구축 등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설은 물론 12인치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큰 틀에서 DB하이텍은 안정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과거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바 있고 미래 시장 상황을 섣불리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인치로 가면 단가 측면에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중앙처리장치(CPU)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는 대형 파운드리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의미한다. DB하이텍은 빈틈 공략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캐파 역시 급격히 늘리기보다는 완만하게 확장할 방침이다. DB하이텍은 작년 말 기준으로 월 13만8000장 캐파를 확보했다. 당초 올해 말 또는 내년 초까지 월 15만장으로 높이려 했으나 일정이 2024년 상반기로 늦춰졌다. 8인치 장비 확보가 어려워진 탓이다. 회사는 수요 상황에 맞춰 점진적으로 캐파를 증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2024년 말 8인치 반도체 팹 생산량이 2020년 초 대비 21%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월간 웨이퍼 생산량으로는 570만장에서 690만장으로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