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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심장 ‘컴프레서’…삼성이 바꾼 혁신의 발자취

이수환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사람은 먹어야 산다. 제 아무리 건강해도 밥을 먹지 않으면 금방 기력이 바닥나기 마련이다. 이는 음식물 자체의 영양은 물론 신선도에 따라 삶의 질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냉장고는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대표적인 생활가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첫 대량생산 냉장고가 1917년에 나왔고 국산 모델은 1965년에서야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우리 주변에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국산 냉장고의 역사는 대한민국 경제개발과 궤를 같이한다. 최근에는 더 큰 용량에 냉기를 불어넣으면서도 전력소비량, 그러니까 전기를 덜 먹는 냉장고 개발이 필수다. 따지고 보면 전기료 이슈는 세탁기나 에어컨은 물론이고 PC나 TV, 휴대폰도 냉장고엔 상대가 안 된다. 오래 쓴다고 하더라도 1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에 견주긴 어려워서다.

냉장고가 잡아먹는 전기료의 대부분은 컴프레서에서 발생한다. 컴프레서(압축기)는 사람으로 치면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에 냉매는 혈액에 비유할 수 있다. 컴프레서에서 나온 냉매는 액체와 기체를 오가며 냉장고 온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다가 한 바퀴 돌면 다시 컴프레서로 돌아간다.

그리고 컴프레서는 계속해서 높은 압력과 온도로 냉매를 압축한다. 이때 냉매는 다시 원상복구를 위해 높은 압력과 온도에 노출된다. 결국 냉장고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컴프레서이다.

◆컴프레서 수입한지 13년만에 자체 기술로 수출=세계 최대 크기의 가정용 냉장고는 삼성전자 ‘셰프컬렉션’으로 무려 1000리터 용량을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게 큰 용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력소비량은 900리터급 냉장고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낮다는 점이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1976년부터 냉장고에 듀얼 컴프레서를 통한 독립냉각 시스템을 사용해오고 있다. 다른 업체가 싱글 컴프레서를 이용하는 것과 다른 행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기계적인 장치가 사용되면 전기를 더 먹기 마련이지만 삼성전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인버터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효율적인 컴프레서 관리가 가능해서다.

물론 처음부터 컴프레서를 잘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고 할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컴프레서는 밖에서 보면 그저 거무튀튀한 금속 덩어리처럼 생겼지만 내부는 복잡한 메커니즘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성능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의 엔진과 같다고 보면 된다. 냉장고 원조인 켈비네이터의 힘을 빌려 공장을 짓고 컴프레서를 자체 개발하기 위해 갖가지 방도를 찾았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컴프레서에 대한 중요성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는 회고록에서 이 회장이 “냉장고는 압축기(컴프레서)가 생명이고 주물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서 제일 실력 있는 주물 공장과 협력해 미리 준비하라”고 지시한바 있다는 말을 적었다. 컴프레서 공장을 세우기도 전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것 자체가 생활가전에 대한 남다른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후 삼성전자 컴프레서는 기술적인 진보를 꾸준히 이뤘고 1990년에는 체코 국영기업인 칼렉스와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수출계약까지 체결하기에 이른다. 기술료 500만달러가 포함된 쾌거였다. 불과 13년만에 냉장고 핵심 기술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수출하는 회사로 탈바꿈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작년에는 컴프레서의 누적 생산량이 1억500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일렬로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40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디지털 인버터+컴프레서 결합 효과↑=현재 삼성전자는 셰프컬렉션, T타입, 스파클링, 푸드쇼케이스, 양문형, 일반형 등 다양한 형태의 냉장고를 선보이고 있다. 일부 모델을 제외하면 대부분 ‘디지털 인버터’와 듀얼 컴프레서가 동시에 적용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디지털 인버터 기술이다.

참고로 인버터는 인버터 소자를 이용해 전기에너지의 양이나 전원 주파수를 변경해 속도와 토크를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에너지를 적절히 조절해 전력소비량은 물론 소음과 진동을 줄일 수 있어 최근 출시되는 생활가전에 필수적으로 적용된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디지털’을 추가해 보다 정밀한 제어 기술을 덧붙였다.

디지털 인버터를 가능케 하는 몇 가지 원동력은 컴프레서 자체의 효율과 함께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개발 능력을 꼽을 수 있다.

MCU는 특정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도체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생활가전을 비롯해 자동차, 임베디드(내장형 제어), 산업 현장에 이르기까지 활용 분야가 무척 다양하다. 버튼을 눌러 본체를 조작하는 전자제품이라면 MCU가 1개 이상씩 내장됐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특히 최근 선보이는 컴프레서는 BLDC(Brushless Direct Current)모터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기존에는 AC모터를 주로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BLDC모터를 통해 전력소비량은 물론 진동과 소음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BLDC모터는 AC모터보다 가격이 비싸고 제어가 까다롭다. 개발을 위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필요한 것도 문제다. 삼성전자의 경우 ‘컴프레서↔BLDC모터↔MCU’를 망라하는 종합적인 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마치 자동차 엔진 개발에서부터 두뇌 역할을 하는 엔진제어장치(Engine Control Units, ECU)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디지털 인버터 전략을 수립하고 생활가전사업부 내에서의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기존에 부착했던 각기 다른 로고도 하나로 통일해 선보이고 있다. 일종의 ‘원 디지털 인버터(One Digital Inverter)’ 전략이다. 통일된 디지털 인버터 로고는 중요한 마케팅 역할을 담당한다. 기존 세탁기에 ‘DD모터 10년 무상보증’, 냉장고 ‘인버터 컴프레서 10년 무상보증’ 등으로 되어 있던 것을 ‘디지털 인버터 테크놀로지’로 단일화해 고성능, 친환경 제품임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오는 2015년 전 세계 생활가전 1위 달성 및 사업부 자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괄적인 기술 개발에 매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대형 백색가전의 중심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냉장고 사업의 핵심기술 역량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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