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족위 ‘의견일치’…반올림, 존재이유 사라질까 전전긍긍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반도체 직업병 논란과 관련해 삼성전자와 이해당사자인 가족대책위가 일치된 의견을 보이자 노동운동단체인 반올림은 입장 발표문에 ‘기만’, ‘회피’ 등의 단어를 써 가며 다소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올림을 잘 아는 이들은 “이번 문제가 매듭지어질 경우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일 삼성전자는 1000억원의 사내 기금을 조성해 자사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 질병에 걸린 피해자 보상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본사 직원 뿐 아니라 상주 협력사 직원도 피해가 있으면 인도적 관점에서 동일하게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측은 “신속하게 보상하겠다”며 “보상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 신청을 받고 심사를 거쳐 연내 대부분 보상이 마무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족대책위에 속한 송창호씨는 “1000억원 기금 조성, 협력사 직원 포함 등 삼성전자가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며 “빨리 이 일이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올림 측은 즉각 반발했다.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신속한 보상’은 기만”이라며 “조정위가 제안한 권고안(공익법인 설립)을 수용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조정위원회는 재발방지와 보상 작업을 수행할 공익법인 설립을 위해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하라고 권고했다. 이 가운데 300억원은 운용자금으로 쓴다는 것이 조정위의 생각이었다. 운용자금이 다 떨어지면 삼성전자가 다시 채워 넣으라고 조정위는 권고했다. 또 공익법인 발기인은 진보 인사들로 하고, 이들이 뽑은 3명의 옴부즈만은 삼성전자를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권고안에 담았다. 각계에선 이에 대해 ‘과도한 요구’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해당사자인 가족대책위도 “이제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보상을 신청하라는 것은 아직도 많은 세월을 기다리라는 뜻”이라며 공익법인 설립을 반대했다. 아울러 “피해자와 가족들은 오랜 기간 기다려 왔기 때문에 하루 빨리 보상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법인 설립에 시간이 걸리고 상근 인력 운영 등 보상 이외 목적에 재원의 30%를 쓰는 것보다 고통을 겪은 분들께 가급적 빨리,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가족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반올림의 입장 발표에 대해 “그들을 언급해 새로운 논란을 만들고 싶진 않다”면서도 “노동운동단체의 활동가가 아닌, 실제 이해 당사자 입장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반올림, 이번 일 매듭지어지면 존재 이유 사라져
반올림은 민주노총 경기본부, 다산인권센터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산업보건의 공유정옥, 변호사 임자운, 노무사 이종란, 사무보조 권영은씨 등이 이른바 반올림의 ‘활동가’로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지난 수 년째 삼성과 관련된 직업병 이슈를 다뤄왔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완벽하게 매듭지어지면 성격도 모호한 이 조직의 존재 가치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반올림은 삼성전자와 가족 당사자간 대화가 진전을 보일 때 마다 회사가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협상을 방해해왔다. 매번 협상이 깨진 이유는 반올림 때문이라는 의미다. 작년 4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의 ‘도의적 사과’를 이끌어내면서 협상에 진전이 보이자 반올림 측은 “우리는 심 의원과 협의한 바 없다”며 말을 바꿨고 나중에 “메일 첨부 파일을 열어보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심 의원은 이후 이 사안에 거리를 두고 있다.
가족들 사이에선 “이해당사자 생각은 안하고 일종의 업적(삼성을 이겼다) 쌓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임자운 변호사는 당시 일부 가족에게 ‘싫으면 (반올림에서) 나가라’는 식으로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금 가족대책위가 반올림에서 떨어져 나온 이유도 이처럼 ‘협상을 진전시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 삼성 내부에 자신들의 감시기구를 두겠다고 한 것, 그리고 이번 공익법인 설립을 철저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반올림이라는 조직과 본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지난해 반올림 안팎에선 “활동가들이 기부금을 일부 가족에게만 몰아준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반올림은 활동 초기 기부금 사용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임자운 변호사의 경우 42, 43기 사법연수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낭만펀드’에서 매달 300만원의 고정 월급을 받지만 나머지 활동가들은 고정 수입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광주에 사는 한 인물은 “삼성 계열사 직업병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반올림에 연락을 했는데 ‘이런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며 대충 이것저것 물어보곤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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