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어코드로 살펴본 전장부품 생태계
적어도 국내에 들어오는 혼다자동차는 전장부품 채용에 있어 경쟁사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해왔다. 여기에는 특유의 철학이 깃들어 있는데 밖으로 보이는 기능보다는 자동차를 이루는 뼈대처럼 내실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 하지만 시류에 따라 첨단 전장부품 채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10년 이내에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성격의 자동차를 내놓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혼다 9세대 어코드는 과도기적인 자동차다. 어떤 기능은 (경쟁사 동급 자동차와 비교해) 대단히 앞서 있지만 다른 어떤 기능의 경우 최신 트렌드에 벗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예컨대 발광다이오드(LED) 헤드라이트나 무선충전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핸드브레이크는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2000년 초중반 이미 국산 자동차에 보편화된 ECM(electronic chromic mirror) 룸미러도 8세대까지는 모델에 따라 기본 장착이 아니었을 정도다. 전장부품 업계는 해당 지역의 자동차 생태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국은 델파이, 유럽은 보쉬나 콘티넨탈, 일본은 덴소 등을 주로 이용한다.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전장부품 업체의 공급망관리(SCM)를 그대로 이용하는 셈이다.
이런 부분은 9세대 어코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핵심이 되는 ECU와 인포테인먼트는 모두 덴소가 공급하고 있다. 내부 반도체는 르네사스 제품이다. LED 헤드라이트는 일본의 또 다른 전장업체인 스탠리일렉트릭이 담당하고 있으며 일반 리모컨키와 도난방지를 위한 이모빌라이저 시스템은 알프스전기, 스마트키는 파나소닉, 핸즈프리는 클라리온이 만들었다. 특히 클라리온은 9세대 어코드의 내비게이션을 제공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구글 안드로이드 4.2.2 젤리빈이 운영체제(OS)로 이용됐다. 이 부분이 무척 중요한데, 이 덕분에 9세대 어코드는 국내 실정에 알맞은 맵퍼스의 아틀란을 전자지도로 채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구글 안드로이드오토(국내 미적용)는 물론 애플 카플레이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인포테인먼트를 위한 중앙처리장치(CPU)는 ARM 코어텍스 A15나 SH4A/SH2A와 같은 르네사스 슈퍼H 시리즈가 쓰인다. 9세대 어코드의 ECU와 주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을 르네사스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 레인워치와 같은 후측방 카메라 연동 등을 고려했을 때 SH4A가 탑재됐을 가능성이 높다. SH4A는 32비트 RISC 기반의 마이크로프로세서유닛(MPU)으로 듀얼코어에 최대 클록은 600MHz이다. 성능으로는 크게 앞서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자동차에 특화된 만큼 안정성이 높고 특히 실수연산에 강해 3D 그래픽이나 복잡한 수학계산에 유리하다. 9세대 어코드에서는 레인워치의 그래픽 동시 처리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선충전기는 치(Qi) 규격을 지원하는 제품이라면 모두 충전할 수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6를 이용해보니 별다른 조작 없이 무선충전 패드 위에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충전이 시작된다. 아틀란 전자지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성능은 이미 검증된 상태다. 카플레이는 아이폰을 연결하면 곧바로 이용할 수 있으며 연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애플이 공식적으로 무선충전을 지원하지 않아 9세대 어코드에서는 이 두 가지(무선충전+카플레이)를 동시에 지원하지는 못한다. 안드로이드오토는 국내 법규가 가로막고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9세대 어코드는 혼다 특유의 기본기에 최신 전장부품의 채용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품성을 보이고 있다. 전장부품이 아직까지 자동차를 선택하는데 있어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으나 향후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혼다의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든 재미가 쏠쏠하다.
<이수환 기자> 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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