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발자국] 방송혁명 이끈 '셋톱박스'…비디오대여점 역습에 위기
그동안 다양한 전자제품이 우리 곁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을 반복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기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그 이유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편집자주>
아울러,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들을 즐기거나 방금 방송을 통해 본 상품을 TV에서 바로 구매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인터넷도 가능하고요. 이런 ‘양방향 서비스’를 TV에서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셋톱박스(STB)’입니다.
셋톱박스는 Set-Top Box라는 그 이름처럼, ‘TV 위에 설치하는 박스’를 의미하는데요. IPTV와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이나 데이터를 보내면, 셋톱박스가 이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 TV화면에 구현해내는 방식입니다.
◆ 꿈의 200개 채널…위성방송 등장으로 성장한 ‘셋톱박스 시장’
이런 셋톱박스 시장은 2000년대 초 빠르게 성장했는데요. 위성방송 등장에 따른 방송의 디지털화가 계기가 됐습니다. 인공위성으로부터 전파를 직접 수신받아 서비스하는 위성방송이 1990년대 처음 등장한 가운데, 이런 위성방송을 시청하려면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용 셋톱박스’가 요구됐기 때문인데요.
위성방송은 화질과 음향이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TV방송을 크게 능가했습니다. 또 디지털 압축기술을 통해 다채널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됐죠. 당시만 해도 ‘200개 채널’은 꿈의 이야기였습니다.
양방향 서비스도 위성방송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방송사업자가 보낸 방송이 아닌, 보고싶은 콘텐츠를 이용자가 직접 골라서 보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이에 당시 헤드라인들을 살펴보면 ‘위성방송개막, 동네 비디오가게 떨고 있다’ 등 비디오대여점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위성방송으로부터 시작된 방송의 디지털화로 비디오대여점은 우리 삶에서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국내에선 스카이라이프가 처음 위성방송을 시작하며 셋톱박스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셋톱박스 시장은 스카이라이프를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스카이라이프는 셋톱박스 성능 업그레이드를 통해 위성방송의 서비스 품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갔습니다. 2.5세대 셋톱박스에서 예약된 시간에 자동으로 영상을 녹화하는 ‘맞춤형 녹화(PVR·Personal Video Recorder)’ 기능을 도입하는가 하면, 3세대 셋톱박스에선 방송화질을 SD(표준해상도)에서 HD(고화질해상도)로 개선했는데요. 4세대 셋톱박스에선 실시간 방송과 VOD 서비스를 모두 제공, 오늘날 우리에 익숙한 UI(유저인터페이스)를 갖추게 됐습니다.
◆ IP 셋톱박스로 전성기…인터넷+방송 결합상품으로 가입자 락인 효과↑
이후 국내 셋톱박스 시장은 KT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들이 IPTV(인터넷TV)를 통해 디지털방송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통신사업자는 왜 방송시장에 뛰어든 것일까요. 이는 가입자 락인(Lock-in·잠금) 효과를 기대한 것인데요. 셋톱박스를 사용하려면 인터넷 가입이 필수적인 가운데 인터넷 상품만 단독으로 판매하긴 보단 방송과 결합한 상품을 저렴하게 내놓으면, 가입자를 좀 더 오래 묶어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IPTV 서비스를 위한 IP 셋톱박스는 기존 케이블TV·위성방송 셋톱박스와 달랐는데요. 방송을 전송할 때 케이블TV·위성방송은 주파수(RF·Radio Frequency) 기반의 MPEG-2 신호를, IPTV는 IP 신호를 사용하는 가운데 IP 신호는 채널 수 확대와 신규콘텐츠 수용이 용이했습니다.
특히 KT는 국내 셋톱박스 중에는 처음으로 자체 OS(운영체제)가 아닌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탑재해 주목받았습니다. 휴대폰에서 앱을 다운로드 받 듯, TV에서도 구글플레이스토어를 통해 TV용으로 제작된 엔터테인먼트 앱 다운로드가 가능해진 것이죠.
◆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시장 개편…셋톱박스 혁신 시도
이렇듯 방송의 디지털화 흐름에 맞춰, 셋톱박스 기반으로 함께 성장했던 유료방송시장은 최근 몇 년간 정체기를 맞았는데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평균 유료방송 가입자 수와 시장점유율'에 따르면 지난 6개월 평균 가입자 수는 3600만5812명으로, 지난 하반기 증가폭(53만명대)보다 크게 둔화된 증가세(37만명)를 보였습니다. 특히 이 기간 SO와 위성방송 가입자 수는 각각 1282만4705명, 297만7656명으로 10만2758명, 4만2568명의 가입자를 잃었습니다.
배경에는 OTT(Over The Top)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최근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시장이 개편되면서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방식이 바뀐 것인데요. 이용자들이 TV 대신 모바일 기기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면서 유료방송시장은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이런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을 주도해온 넷플릭스가, 셋톱박스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비디오대여점으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이에 유료방송시장 역시 그동안 ‘셋톱박스 혁신’을 통해 반격을 시도해왔는데요. 셋톱박스 자원을 클라우드 서버에 구현해 하드웨어 교체 없이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인터넷공유기와 셋톱박스를 일체화해 설치의 불편을 줄였습니다.
최근에도 이런 혁신은 이어지고 있는데요, 먼저, IPTV는 최근 콘텐츠 추천에서 고도화된 AI기술을 적용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OTT의 약점을 파고든 것인데요. 예컨대 요일과 시간대별 시청 이력을 분석해 고객이 특정 시간에 자주 보는 채널정보를 제공하는 가 하면, ▲나와 비슷한 사람은 무엇을 시청했을까요 ▲당신의 취향, 이런 영화 어때요 등 나와 선호도가 비슷한 사람들이 시청한 콘텐츠를 장르별로 추천한다.
케이블TV는 ‘적과의 동침’을 결정, OTT의 인기에 편승한 스트리밍 전용 셋톱박스 ‘OTT박스’를 선보였습니다. 권역사업자인 케이블TV의 지역 콘텐츠와 함께 다양한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OTT박스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로, 일반TV와 연결하면 스마트TV·IPTV와 같은 기능을 구현합니다. 가격도 10만원 초중반대로 스마트TV와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입니다.
다만 앞으로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셋톱박스 기반 TV 환경이라는 제약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과제입니다. 스마트TV의 보급으로 안방 역시 삼성전자·LG전자에 내줄 위기에 처했는데요. 셋톱박스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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