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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귀로 영화를 본다면…시각장애인 눈 돼준 ‘배리어프리’

강소현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가까운 미래,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류는 우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지구와 달의 궤도면 사이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쉘터를 만드는데 성공한 인류는 수십 년에 80여개의 쉘터에 시민들을 이주시킨다.

넷플릭스의 K-SF(공상과학) 영화 ‘정이’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이 같은 정보를 취득할 수 없다. 영화에서 세계관은 텍스트로만 표시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자 넷플리스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서비스를 도입했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30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정이’의 배리어프리 극장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비장애인 관객 뿐 아니라, 시·청각장애인과 특수학교 교사 등도 직접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물리적·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모든 서비스를 의미한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는 배리어프리의 일환으로, 대사 외 소리·음악 등에 대한 설명도 자막과 함께 오디오 화면해설 기능을 도입해 차별없이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VOD·OTT 등 비실시간 방송에서 장애인 방송을 의무화하고 있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일찍이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도입했다. 넷플릭스는 영화 및 시리즈에 오디오 화면 해설 및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적용, 한국어 포함해 최대 33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배리어프리의 유용성을 알리고자 마련된 가운데, 넷플릭스는 행사 기획단계에서부터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등 관련 단체의 자문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행사는 무대인사부터 달랐다. ‘정이’의 연상호 감독과 김현주, 류경수 배우가 영화 상영에 앞서 무대인사에 나선 가운데, 이들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각장애인을 배려해 자신의 머리 스타일, 착장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됐다. 눈을 감고서도 화면이 그려질 정도의 상세한 오디오 화면해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임을 상징하는 로고가 화면에 등장하자 “가는 빨간색 선이 밤하늘로 솟아올라 다양한 밝은 색상의 스펙트럼으로 이어진다. 이미지가 회전하면서 수많은 색상이 하나의 뚜렷한 빨간 리본으로 융합되고, 리본이 접혀 알파벳 대문자 N이 된다. 빨간색 알파벳 대문자 N이 검은색 배경 위에 나타난다”는 화면에 대한 묘사가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특히, SF영화에서 이런 오디오 화면해설 작업에 더욱 힘을 쏟는다고 밝혔다. SF영화의 경우 대사없이 특수효과 만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이’만 해도 영화 도입부 약 3분동안 특별한 대사없이 로봇과의 전투씬만이 이어진다. 아래는 안드로이드 ‘정이’의 등장씬에 대한 오디오 화면해설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공장 바닥에 부서진 로봇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곳곳에서 불꽃이 일고 있다. 불꽃이 튀는 로봇 잔해를 사이로 슈트를 입은 여성이 있다. 꿈쩍도 않던 여성은 의식이 돌아오는지 미세하게 움직였다. 여성은 쓰러진 상태로 눈동자만 움직여 주위를 둘러본다.”

화면해설 검수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권순철 씨는 “화면해설 수요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뜻깊은 행사로, 이번 배리어프리 상영회를 계기로 더욱 많은 분들이 배리어프리 콘텐츠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국내 OTT의 경우도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티빙과 웨이브는 지난해 연말 기준 각각 1800개, 1000개의 콘텐츠에서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특히 특히 웨이브의 경우 최근 코코와(KOCOWA)를 인수, 코코와가 보유하고 있던 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 자막과 더빙을 활용해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배리어프리 서비스 확대가 쉽지만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근 텍스트음성변환(TTS) 등 기술 고도화에도 불구, 음성이 인식되지 않는 경우 속기작업을 통해 자막을 직접 제작해야 하는 등 많은 인력과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배리어프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존재한다”라며 “그렇다보니 한 회차 당 약 60분의 16부작 드라마의 자막을 신규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 뿐만 아니라 검수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귀띔해다.

향후 국내외 OTT업체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자동 자막 기술 고도화 등을 통해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콘텐츠가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넓힌다는 믿음 아래, 장애 유무를 넘어 회원분들이 콘텐츠를 함께 즐기고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배리어프리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며 “넷플릭스가 전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즐거움과 특별함이 모두의 일상이 되도록 앞으로도 배리어프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전하며 지속해서 발전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강소현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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