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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옥 문턱서 회귀한 다자요 “규제 풀렸지만 마이너스서 출발”

이나연
[제주=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처음 창업할 때는 0이라는 단계에서 시작했다면, 규제에 한 번 부딪힌 후에 다시 시작할 때는 0이 아닌 마이너스에서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죠.”

기존 업계와 이른바 ‘혁신 플랫폼’으로 불리는 신산업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택시 단체 압박으로 사실상 명줄이 끊긴 ‘타다 사태’ 이후에도 현재 로톡(법률)·강남언니(의료)·직방(부동산중개)·삼쩜삼(세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단체와의 대립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갈등이 봉합된 뒤에는 어떨까. 플랫폼이 족쇄처럼 차고 있던 규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예전처럼 다시 훨훨 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고 고개를 젓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농어촌 민박업계와의 갈등과 현행법에 대치된다는 이유로 사업이 중지됐던 제주도 빈집 재생 숙박 플랫폼 ‘다자요’다. 지난달 28일 <디지털데일리>는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다자요 사무실에서 사업을 재개한 남성준 다자요 대표를 만났다.

◆규제에 부러졌던 다자요의 요즘 모습은=제주도가 고향인 남성준 대표는 ‘제주도에 온 이들이 이곳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옛것을 살려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다자요를 시작했다. 현재 다자요가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은 12곳인데, 향후에는 전국을 넘어 해외까지 진출하는 게 남 대표 목표다. 다자요가 내세우는 강점은 일반 호텔과 달리, 누군가의 취향과 이야기가 묻어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지역 빈집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는 사회공헌적 가치도 크다. 예컨대, 배우 류승룡은 다자요 사업 취지에 공감해 기획부터 소품까지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리모델링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이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하천 바람집’이다. 남 대표는 “방문객들로부터 이런 사업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웃어 보였다.

첫 번째 빈집 재생 프로젝트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던 다자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꾸라졌다. 현행법인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불법 숙박업’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결국 다자요는 지난 2019년 7월부터 1년 넘게 영업하지 못했다. 그러다 2020년 9월 정부의 신산업 갈등 조정 메커니즘인 ‘한걸음 모델’로 선정돼 상생 방안을 마련하면서 가까스로 규제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규제 이슈 이후에 다자요 사업 근황은 어떨까. 남 대표에 따르면 제주 집 두 채는 내년 4월까지 이미 예약이 꽉 찼을 정도로, 예약률이 예전 수준으로 올라오고 있다. 사실 다자요 경우, 일반 관광객을 통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사업보다는 법인에서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일환으로, 직원을 위한 워케이션(Work+Vacation) 장소를 고를 때 정형화된 리조트나 호텔보다 다자요를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남 대표가 사업을 재개할 때 “0이 아닌 마이너스에서부터 시작하는 듯했다”고 전한 이유는 여전히 다자요 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기 때문이다. 일단, 다자요의 시간이 멈추는 동안 유사한 업체들이 많이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위해 투자 유치가 필요하지만, 이 사업은 일반 플랫폼업계와 달리 ‘빈집’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벤처캐피탈 투자를 받기가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선택한 크라우드 펀딩에서도 온갖 제약이 따라붙어 아예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위)제주 고산리의 한 빈집 (아래)지붕 공사 중인 모습 /사진 제공=다자요
(위)제주 고산리의 한 빈집 (아래)지붕 공사 중인 모습 /사진 제공=다자요
◆“복지를 산업 이슈에 연결하면 안 돼”…당사자가 말하는 갈등 해법=남 대표는 신구산업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자체로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서비스 출현으로 기존 업계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을 정부가 손 놓고 지켜만 봐서는 안 되지만, 이들 단체가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산업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걸음 모델 당시 남 대표는 민박 사업자들과 대화하면서 “전통 사업 종사자들이 겁내는 게 플랫폼 자체라기보단, 자신들의 경쟁력 약화”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줘야 하는 주체는 경쟁자인 신산업이 아닌 정부이며, 사회 전반의 이익 증대를 위해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지원을 펼쳐야 한다는 게 남 대표 생각이다.

남 대표는 “설령 구산업이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종사자들이 다른 곳으로 재취업할 수 있거나 신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게 정부 역할”이라며 “새로운 산업을 계속해서 옥죄면 혁신 산업은 나타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규제 이슈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 태도에도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한국은 소극적인 행정을 유도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어떤 공무원이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면 반대쪽에서 “규제를 풀어준 이유가 뭐냐”라는 식의 민원이 들어오는 일이 빈번해서다. 논란이 커질 경우, 자칫하면 그 공무원이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그는 혁신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현행법 규제들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남 대표는 “한국은 다른 사례가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사례가 없어야 최초고 혁신적인 건데 정부는 늘 사례를 찾아오라고 한다”며 “다자요도 예산 지원 같은 걸 받으려고 하면 지방자치단체 사례나 해외 사례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는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남 대표가 바라는 규제 방향성은 어떤 모습일까. 무조건 규제 철폐를 외칠 것 같던 그의 입에서 “규제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정반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당장 네거티브 규제(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 방식)를 못 만든다면, 시장 상황에 맞는 규제를 속도감 있게 만들어 갈등 불씨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남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건 스타트업에 대한 자유방임적 태도가 아니다”라며 “분명한 스탠스를 가지고 틀에 맞춰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게 시대에 맞는 규칙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연
ln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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