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부장 TF] ⑦ 美 칩스법 中 겨냥… 진퇴양난 삼성·SK

김문기 기자

전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제조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제품만 생산해내는 위탁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외 정세에도 흔들림 없는 K제조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부장 미래포럼>은 <소부장 TF>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 소부장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숙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사진=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사진=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한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특히, 올해 미국이 추진하기로 한 ‘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칩스법)’이 중국을 겨냥함에 따라 중국 내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의 부정적 영향이 예상됐다.

미국 정부는 2월 28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칩스법에 대한 세부지침을 발표했다. 칩스법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 투자 기업에 대한 생산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향후 5년간 미국 내 반도체 생산에 따른 지원금으로 약 390억달러(한화 약 50조원)를 투입한다. 생산 보조금에 이어 132억달러 규모 연구개발(R&D) 보조금도 풀 계획이다.

이같은 칩스법 지원으로 인해 우리나라 역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약 170억달러(한화 약 22조원)을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구축 중이고,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후공정 공장 구축을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

다만, 생산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 조건이 우리나라에게 독소조항처럼 군림하는게 핵심 문제로 부상했다. 생산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보안우려 국가에 대한 반도체 생산 능력을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하는데, 이 곳에 중국이 포함돼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 법안의 목적은 경기 침체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에서 기업이 반드시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돕는 것도 아니다”라며, "보조금 액수에 대해 실망하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우리의 투자는 국가 안보 목표 달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즉, 생산 보조금을 지원해 자국내 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중국을 겨냥한 견제책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장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 등에 공장을 보유하고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40%, SK하이닉스는 D램 40% 및 낸드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양사는 중국에 각각 33조원(시안), 35조원(우시·다롄)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된다면 그간 공격적 투자를 집행해온 중국 공장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시안 공장 [사진=삼성전자]


미국의 노골적인 중국 제재…가드레일 사고날까 노심초사

미국 정부는 1개월 후인 3월 21일 독소조항이라고 불리는 칩스법 ‘안전장치(가드레일)’ 세부 조항을 공개했다. 조건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경우 첨단 반도체를 대상으로 중국에서 생산능력 5% 이상 확장이 어렵다. 이전 세대 범용 반도체는 생산능력 10% 확대까지만 가능하다.

이중 첨단 반도체 기준은 28나노미터공정(nm) 미만의 로직 반도체와 18나노미터공정(nm) D램,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가 해당된다. 이 기준이라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반도체가 해당된다. 결과적으로 5% 이상의 생산능력 제한에 해당된다.

그나마 반도체 공정 기술 고도화를 제외했다. 반도체 웨이퍼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않으면 중국 공장 시설을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미국이 네덜란드와 함께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중국 수출 제한을 추진하고 있기에 실제로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다.

지난 4월 26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항자 의원(무소속) 주최로 열린 ‘美 반도체 유일주의, 민관학 공동 대응 토론회’에서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웨이퍼 한장에 약 2000여개의 범용 반도체가 생산되는데, 4GB D램이나 16GB D램이든지 하나의 웨이퍼에 생산되는 양이 같고 또 생산가격도 동일하다”라며, “하지만 갯수가 같고 생산가격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용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집적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생산비용이 올라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연히 4GB 대비 16GB 생산장비가 더 비싼데, 가격이 동일하다면 그에 따른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 대안으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웨이퍼를 더 투입해 생산량을 증가시켜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에 따르면 10년간 통계에 비춰봤을 때 D램은 연간 5%, 낸드플래시는 연간 8%씩 생산량이 늘어났다. 10년 후 낸드플래시는 220%, D램은 63% 생산량 증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칩스법 가드레일의 영향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웨이퍼 투입량은 10년간 5%밖에 늘릴 수 없다. 결과적으로 생산량을 높이지 못한다는 의미는 손실을 메울 수 없다는 의미이며, 결과적으로 공장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추정이다. 게다가 D램의 경우 EUV 장비 도입도 어려워 최첨단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아울러, 중대한 거래 규모와 관련해 상한선을 10만달러(한화 약 1억3000만원)로 규정해 투자를 제한했다. 전반적으로 반도체 생산량을 억제하겠다는 의도다.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사진=SK하이닉스]


중국 마이크론 제재에 미국 발끈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이같은 조치에 중국이 적극 대응에 나섰다는 것.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중국 내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대상으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의 사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위험은 근거로 마이크론의 중국 내 반도체 판매 금지 방침을 내리자 이번에는 미국이 발끈했다. 미국은 근거없는 제한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마이크론의 공백을 외국 메모리 제조사가 채워주면 안된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사실상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겨냥한 발언으로 읽혔다.

사정은 마이크론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새우등이 터진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마이크론은 중국 사업장에 43억위안(한화 약 7700억원) 가량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의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반도체 시장 규모와 수요가 큰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는 조치다. 중국 시안 패키징 설비에 대한 투자다. 모바일 D램과 낸드 플리시 신규 생산라인 구축도 고려하고 있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중국 사업에 대한 회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투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미국이 중국 반도체 제재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에 첨단 반도체 설비 반입을 금지한 수출 통제 유예 정책 연장을 놓고 고심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지난해 10월 유예를 받은 상태로 오는 10월이면 중국 내 최신 설비 투입이 전면 통제될 예정이다.

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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