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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중국‧미국‧러시아는 간첩 아냐”… 국회서 잠자고 있는 간첩죄 개정

이종현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제21대 국회의 시간이 차츰 끝나가고 있다. 마지막 국정감사도 후반전에 접어들었는데, 국정감사 이후로는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북한을 대상으로만 간첩죄를 적용하는 것을 바꾸기 위한 형법 개정안의 폐기 가능성도 짙어지는 중이다.

<디지털데일리> 확인 결과 22일 기준 제21대 국회서 발의된 법안 중 현재 계류돼 있는 것은 총 1만7266개다. 이중 제21대 국회 임기 첫날인 2020년6월1일 발의된 법안만 해도 33개에 달한다.

법안은 대표발의자를 포함해 10명의 국회의원을 모으는 데서 시작한다. 그렇게 발의된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향하게 되는데, 이때부터가 ‘진짜’ 난관이 시작된다. 관심을 끌지 못하는 법안이라면 우선순위에 밀려서 논의 주제로도 선정되지 못한다.

형법 개정안이 현재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 총 4개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는데 발의자 명단에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20명,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32명, 무소속 의원 1명 등 총 53명이다. 여‧야가 뜻을 모아 추진하는 몇 안 되는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현재 간첩죄의 적용을 적국, 즉 북한으로만 한정해 있는 것을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로 변경해 국익을 저해하는 행위를 막자는 것이다.

해당 법안의 개정 필요성은 십여년 이상 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던 것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작년 국제인권단체가 중국이 세계 각국에 비밀경찰서를 운영하며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는 폭로 때문이다.

외교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은 실태조사 끝에 서울 강남구의 중식당 ‘동방명주’가 비밀경찰서 역할을 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관련 법이 없어 탈세와 식품위생법, 옥외광고물법 위반 등을 명분으로 조사하고 우회적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올해 초에는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실도 미군 기밀 문건이 유출되면서 드러났다. 양국의 관계상 흐지부지됐지만 현행법은 이와 같은 미국의 행위도 간첩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간첩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는 다른 나라의 법안들과는 차이가 큰 부분이다.

이는 외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해커의 활동들 역시 간첩죄로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중국 및 러시아 해커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안으로도 침해 행위자를 추적하고 있지만 이를 ‘간첩 행위’로 판단하고 조사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간첩죄를 다루고 있는 형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위원으로 회의에 참석 중인 법원이 제동을 건 탓이다. 9월12일 진행된 회의에서도 법원행정처 박영재 차장은 “적국을 위한 국가기밀과 외국에 대한 국가기밀은 서로 달리 해석될 소지가 있는데 똑같은 용어를 쓰면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은 “(간첩죄에) 적국의 개념이 아니라 외국의 개념을 넣는 것이, 동맹이라도 언제든지 국익을 위해서는 우리 비밀을 빼내는 상황을 경험하잖나. 모든 나라가 그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규율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나가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정도의 안보의식이나 간첩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논의는 종결짓지 못했다. 법무부에서 제출한 재수정안을 살핀 뒤 논의를 이어가는 데 그쳤다.

법안심사소위만 통과한다면 남은 것은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다. 여‧야 국회의원의 의견이 엇갈리지 않는 법안인 만큼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법안심사소위 단계에서 지속적인 법원의 반대,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제21대 국회의 시간이다. 보다 적극적인 법안 처리 노력이 필요한 배경이다.

이종현 기자
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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