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 결과에 SK그룹도 대응 공식화…상고심 반전 노린다
[디지털데일리 옥송이, 고성현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그룹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 오류를 치명적이라며 공동 대응에 나섰다. 개인사였던 최 회장의 이혼소송 건이 2심 판결로 SK그룹 전체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자, 향후 상고심을 위한 토대를 미리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SK㈜ 모태가 된 대한텔레콤(현 SK C&C)을 두고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기여를 강조하는 것 역시 최태원 회장을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판단한 재판부 판결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이를 토대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된 뼈대로 시작됐다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최 회장 법률 대리인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와 SK그룹은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판 현안의 쟁점에 대해 설명했다.
"1998년 대한텔레콤 가치 평가에 명백한 오류…100배 왜곡 발생"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판단한 최종현 SK 선대회장 별세 당시 대한텔레콤의 주가 가치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잘못된 전제 하에 분할 대상 재산을 확정하고 회사 형성과 성장에 관한 각각의 기여분을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텔레콤(현 SK C&C)은 지주사인 SK㈜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1994년 최태원 회장은 아버지인 최종현 SK 선대회장으로부터 약 2억8000만원을 증여 받았고, 이를 통해 대한텔레콤 주식 70만주를 취득했다. 이후 대한텔레콤은 SK C&C로 사명을 바꿨고, 두 차례 액면분할을 거치며 주식 가격이 최초 명목 가액 50분의 1로 줄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 회장 사망 시점인 1998년을 기준으로 회사 성장에 대한 기여도를 판단했다. 재산 분할의 핵심인 SK㈜ 주식이 최태원 회장-노소영 관장 부부 공동재산인지, 노 관장 내조 기여에 따른 분할 비율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1994년 11월 최 회장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 가치를 주당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1994년부터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기여한 부분을 12.5배로, 1998년 이후 최 회장이 기여한 부분을 SK C&C가 355배로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은 재판부가 계산 수치 오류에 따라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 회장 간 가치 성장 기여 평가를 정반로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당시 기여 평가가 과도하게 축소되면서 최태원-노소영 부부 공동재산으로 평가된 금액이 커지게 됐다는 의미다.
한상달 청현 회계법인 회계사는 "SK C&C의 두 차례 액면 분할 결과, 1994년 취득했던 1주가 2009년 150개가 됐으므로 액면 분할 전과 분할 후 주식 가치를 비교하려면 액면 분할 비율인 50으로 각각 나눠 비교하는 게 회계적으로 올바른 방식"이라며 "1998년 환산 가치 산정을 위해 (당시 주당 가격) 5만원을 50으로 나누면 1000원이 되는데, 이를 100원으로 산정해 회계상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강조했다.
주식 가액을 주당 100원이 아닌 1000원이라고 본다면 최종현 선대회장 시기 증가한 가치는 125배 최 회장 시기 증가분은 35배가 된다. 2심 판결 토대가 되는 가치 평가와 비교해보면 100배 가량의 왜곡이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최 회장의 기여 평가에는 노 관장의 기여가 포함되는 만큼, 최 회장의 기여도가 변화하면 재산분할 액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변호사도 "최종현 선대회장 당시 SK C&C(대한텔레콤)는 다른 IT 기업과 비교해 엄청난 성장한 반면, 최종현 선대회장 사망 이후에는 다른 IT 기업들의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했다"며 "재판부는 이 오류에 기반해서 SK C&C 핵심 성장 요인이 최태원 회장의 경영 활동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SK그룹도 '6공 특혜 없다' 반박…"300억 비자금설, 가짜뉴스"
이번 항소심에서 불거진 '6공(共) 특혜'에 대해서는 '가짜 뉴스'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이번 소송은 개인 간의 소송이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그동안 개입하지 않았다"면서 "공식적인 입장을 낼 상황이 아니었으나, (최근) 항소심 판결 결과 가운데 SK그룹이 비자금과 비호 아래 성장했다는 정의가 내려졌다"며 그룹 차원의 입장을 밝히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SK에는 약 15만에 가까운 구성원과 고객, 투자자가 있다"며 "모든 분들에게 이 부분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슈가 됐다"라고 운을 뗐다.
이 위원장은 "SK는 6공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 절대 아니다. 이는 해묵은 가짜뉴스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태우 정부의 300억 비자금이 SK로 흘러들었다는 노소영 나비아트센터 관장 측의 주장에 대해 세부적인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또 어떤 용도로 들어왔는지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300억 비자금이 들어왔다는 말만 팩트로 치부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포스트잇 메모지에 나와 있는 비자금 내역은 1995년 비자금 조사 때 해당 내역은 나오지 않았다면서 별도의 비자금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부분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이 제6공화국 정부와 사돈이었던 인연이 김영삼 정부 시기 한국이동통신 인수 및 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취지로 판결문에 적시된 점에 대해서는 "역사에서 5공, 6공이 지난 이후 그 정부의 일원이었던 것이 그다음 정부에서 큰 힘이 됐던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SK측은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 중 '주식 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 등을 제기하기도 했다.
개인사에 경영권 위기·정경유착 이미지까지…전면 대응 나선 SK
SK그룹이 최 회장의 이혼소송 항소심과 관련해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고, 관련 현안에 대한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은 당초 이 사안을 최 회장의 개인사로 보고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판결로 그룹 성장 역사가 부정 당하고, 지배구조에 대한 리스크로 이어지면서 최 회장과 공동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SK그룹은 지주사인 SK㈜가 SK스퀘어(30.55%)·SK이노베이션(36.2%)·SKC(40.6%) 등 계열사 지분을 고루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아울러 위 3개 계열사 등이 또다른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중간지주사 역할을 한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를 확보한 최대주주다. 이러한 주식 보유 수를 통해 SK그룹 경영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밖에 비상장주식인 SK실트론 지분도 29.4%와 SK디스커버리, SK텔레콤의 일부 지분을 갖고 있다.
만약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용될 경우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4000억원 가량에 달하는 재산분할액을 지급해야 한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절반(17일 종가 기준 2조2958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마련해야만 하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2003년 외국계 사모펀드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사태를 겪은 사례가 있는 만큼, SK㈜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다만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추가적인 현금이 필요해 잠재적인 경영권 위기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SK그룹이 정경유착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진 점도 대응에 나선 배경 중 하나다. 재판부가 노 관장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그룹 자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판결하면서, 이미지 쇄신을 위한 등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날 참석한 최태원 회장 역시 판결에 따라 그룹 차원의 명예가 훼손됐음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저 뿐만이 아니라 SK구성원 모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디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라고 또 바로잡아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라고 전했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 이날 최 회장 측 기자의견에 따라 관련 수치를 경정한 판결경정 결정정본을 최 회장과 노 관장 양측에 판결경정 결정정본을 송달했다. 수정된 판결문에는 최 회장 측이 재산 분할 판단에 기초가 되는 수치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 부분이 포함됐으나 판결 결과를 바꾸지는 않았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 경정했다는 것은 원심판결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오류는 단순한 계산 오기가 아니라 판단의 전제가 된 중요한 사항에 큰 영향을 미친 판단오류이기 때문에 단순히 경정으로 수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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