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반도체 호황’ 옛말? 中 매섭게 추격…디램 가격 전망도 엇갈려

신현석


[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반도체 호황’이 벌써 옛말이 되는 걸까. 디램 가격 상승세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시장은 매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디램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도 출혈경쟁에 강한 구조다. 장기적으로 볼 때 LCD(액정표시장치) 시장과 마찬가지로 과잉공급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부채가 상승해 계속 치킨게임을 불사할 수만은 없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대중 무역 비중이 높은 다른 나라에 부담을 떠넘기는 등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누리던 반도체 호황의 단물을 점차 중국이 가로채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중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마이크론의 판매·생산을 막는 예비판결을 내리는 등 반도체 굴기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판세 변화에 따라 반도체 시장은 들썩이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자국의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면 할수록 다른 나라 도움 없이 스스로 발전하는 자급자족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아직 메모리반도체 업체의 기술력이 미흡하지만, 중국 내에서 수요와 공급을 자체적으로 해결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미 LCD 시장에서 품질이 낮은 패널마저 자국 시장을 통해 마구 흡수함으로써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중국 반도체 시장이 다른 나라 기업에도 큰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 세계 반도체 시장이 중국 시장을 무시하고는 성장하기 어려운 형세로 흘러갈 수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 기업의 목줄을 쥐고 흔들면서 기술력을 빼내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과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맞서 싸워야 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30년간 진행됐던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다시 제2의 치킨게임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엇갈리는 디램 가격 전망...상승세 언제까지? = 디램 가격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반도체 호황의 중심 역할을 해온 디램 가격 상승세가 꺾인다면 한국 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한 반도체 시장도 기세가 사그라들 수 있다. 낸드플래시 가격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하락세 지속’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디램마저 상승세가 꺾이면 국내 경제에 암운이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다.

일단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는 디램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3분기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및 데이터센터(IDC) 신규 건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부터 시장에서는 디램이 초과 공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해왔다. 실제 ‘DDR4 4Gb 512Mx8 2133MHz’ 가격은 올해 6월 전월과 같은 가격을 유지하며 주춤했으며, 일각에선 출하량 증가로 서버 디램 가격 상승세가 다소 꺾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의 송명섭 연구원은 “최근 일부 디램 제품 현물가격 반등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디램 업체의 현물시장 출하 가격 인상은 고정거래가격을 하회하기 시작한 8Gb DDR4 현물 가격을 지지해 향후 고정거래가격이 적어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디램 현물시장 유통업자들은 공급 측면에서의 변동에 따른 소폭의 가격 상승이 있으나 수요 자체가 상당히 약하므로 본격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날 것으로는 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 中, 반도체 시장 확대 가속화 = 중국의 반도체 시장 규모는 날이 갈수록 성장세가 가팔라질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2021년 중국 팹리스 시장이 작년(255억 달러)보다 2.7배 증가한 686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에서 중국이 한국을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0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내년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올해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에서 179억6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작년(179만5000만 달러)에 이어 2년 연속 1위 자리를 유지하나 매출 규모는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봤다.

반면 중국의 성장세는 매섭다. 올해 118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며 사상 처음 2위 자리에 오르고 2019년엔 이보다 46.6% 더 증가한 173억 달러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꿰찰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와 내년 각각 대만과 한국을 제칠 것이란 관측이다. 올해 매출 성장률로만 따져도 중국(43.5%)이 일본(32.1%), 동남아시아 등 기타국가(19.3%), 유럽(11.6%), 북미지역(3.8%) 등 다른 지역을 크게 앞선다. 한국은 작년과 올해 매출 규모가 거의 차이가 없는데다 2019년엔 오히려 163억 달러로 떨어진다고 봤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성장은 멈추지만 세계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올해 세계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이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작년 566억 달러보다 10.8% 증가한 627억 달러로 성장하는 데 이어 내년에도 7.7% 성장(676억 달러)해 시장 확대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이 이 과실을 크게 누릴 것이란 뜻이다.

국내 반도체 경기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다. 지난 8일 관세청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은 최근 2개월 연속 감소했다. 반도체 경기가 좋을수록 기업은 제조장비 수입을 늘린다. 즉 제조장비 수입이 줄고 있다는 것은 기업이 반도체 경기를 어둡게 전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5월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은 17억3545만7000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6% 감소했다. 전년 동월 대비 기준,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이 감소한 것은 지난 2016년 7월(-19.4%)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2016년 8월부터 지난 4월까지의 상승세가 멈춘 것이다.

◆ 미중 무역전쟁 여파...한국에 기회일까 위기일까 = 최근까지도 미중 무역전쟁 여파가 미국 반도체 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날이 갈수록 약화돼왔다. 중국이 미국 대응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등 출혈경쟁을 다소 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다시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중국이 이에 맞대응을 예고하면서 미국 반도체 주가는 다시 떨어졌다.

11일(미국시각)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2.59% 떨어지고 마이크론(-2.80%), AMAT(-3.29%), 램리서치(-4.05%) 등 관련주도 하락세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무역전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주가가 안정을 찾던 모습과 상반된다. 결국 미국과 중국 관계가 언제든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반도체 업계도 긴 호흡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앞서 지난 3일(미국시각) 미국 증시에서 장 막판 마이크론이 중국 내 판매 금지 예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에 마이크론 주가가 전일 대비 5.51% 급락한 바 있다. 이날 마이크론 외 다른 반도체 기업 주가도 대부분 떨어졌으며 국내 코스피 지수도 미중 무역갈등 여파로 하락세를 탔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의 판매금지가 확정되면 예비 판결 때보다 더 큰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마이크론의 중국 판매 금지가 확정된다 해도 이를 한국 기업에 유리한 상황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내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 한국 기업에 유리하다는 논리는 단기적인 관측일 뿐이란 분석이다. 반도체 시장이 밀접히 연결돼 있어 중국 내 일시적 수급 불균형만으로 마이크론 및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어떻게 비화될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양산을 앞두고 있는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푸젠진화, 이노트론, YMTC는 아직 기술력이 미흡하며 초기 양산 규모도 너무 작아 별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한국과 미국 기업을 견제하고 자국 반도체 시장을 적극 육성하면서 자급자족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 공장을 짓는 한국 기업을 비판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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