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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반도체 업체가 살아남는 법…저용량 겨냥 ‘틈새 전략’

신현석

[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국내 중소 메모리 반도체 업체 제주반도체(대표 조형섭, 박성식)와 피델릭스(대표 안승한)는 저용량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고용량 메모리반도체 시장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맞춰 저용량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틈새 전략’이다. 국내 중소 메모리 반도체 업체다 보니 목표로 하는 시장 상황도 비슷해 사업 전략마저 비슷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피델릭스는 중국 기업에 넘어갔으나 비슷한 시기 제주반도체는 중국기업의 인수가 결렬됐다. 중국 기업 계열사가 된 피델릭스는 현재까지도 투자자 사이에서 ‘먹튀’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제주반도체는 일단, 이 우려는 벗어났다.

다만 애초 양사가 중국기업에 기업을 넘기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운영진의 사업 철학이 달랐다고 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기업을 팔아 이익을 취하는 것이 목표라면 언제든 중화권 업체의 인수 대상이 될 수 있다.

◆저용량 시장 노린 ‘틈새 전략’ 비슷=양사는 지난 6월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저용량 시장에 맞춘 틈새 전략을 강조했다. 제주반도체는 4Gb(기가비트) DDR4와 8Gb 이하 LPDDR4 등 저용량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피델릭스도 소비자 가전 시장에서 1Gb DDR3 제품을 LG전자에 납품하고 2Gb DDR3 개발·양산을 진행하는 등 저용량 제품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6월 5일 IR을 통해 제주반도체 관계자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삼성전자 등이 앞으로 고용량 메모리에 집중해야 하므로 저용량 메모리를 더는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특히 D램의 LPDDR1과 LPDDR2를 더는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저용량 제품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빅파이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피델릭스도 지난 6월 14일 IR을 통해 “대기업에서는 하기 힘든 저밀도 틈새시장을 우리 시장으로 공략하고 있다”라며 “대기업이 저용량 제품을 단종하고 고용량 제품을 확대 판매하고 있어 저용량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사 모두 MCP 매출 비중 높은 팹리스 업체=
사업 전략뿐 아니라, 양사는 매출 비중 측면에서도 유사한 점이 있다. 양사는 모두 멀티 칩 패키징(MCP) 매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주반도체의 작년 매출 비중은 낸드 멀티 칩 패키지(MCP) 55.83%, D램 16.98%, C램(셀룰러 메모리) 4.56%, 노어 MCP 4.55%, S램 2.80%였다. 피델릭스도 IR을 통해 MCP 매출이 전제 매출에서 65%~7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MCP 제품이 고가다보니 같은 개수를 팔아도 매출 측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력인 MCP 제품으로만 본다면 양사 모두 D램은 자체 생산하나 낸드플래시는 외부에서 공급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반도체는 낸드 MCP 제품 중 D램을 자체 제품과 외부 공급으로 해결하고 낸드플래시는 국내 대기업에서 전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피델릭스도 자체 설계·생산하는 D램과 외부에서 조달하는 낸드플래시를 합쳐 MCP를 생산한다.

양사 모두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피델릭스는 1Gb~12Gb 싱글레벨셀(SLC·1비트) 낸드 플래시를 생산하고 있으며 16Gb~64Gb 멀티레벨셀(MLC·2비트) 낸드플래시 개발·양산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MCP 제품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도 우선 외부에서 공급받다가 차츰 자체 제품으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제주반도체도 SLC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원래 MCP 사업을 위해 낸드플래시 생산에 착수했으나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점을 포착하고 작년 9월부터 낸드플래시 제품도 단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작년 사업보고서에는 잡히지 않았던 낸드플래시 매출이 올해 1분기 보고서에는 134억원(매출 비중 34.54%)으로 공시됐다. 회사 측은 국내 셋톱박스 업체인 휴맥스, 가온미디어로의 낸드플래시 공급이 증가해 매출 비중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실적 규모는 제주반도체가 더 높다. 작년 제주반도체의 별도기준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1188억원, 113억원, 73억원이다. 작년 피델릭스의 별도기준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612억원, 18억원, 5억원이다.

양사는 모두 생산라인을 보유하지 않은 채 자체 설계한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전문 파운드리 업체에 맡기는 팹리스 회사다. 제주반도체는 팹 확보 차원에서 작년부터 대만 파운드리 업체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UMC)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피델릭스는 플래시메모리와 D램 부문에서 각각 중국 SMIC, 대만 파워칩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중국기업에 인수된 피델릭스, 제주반도체는 인수될 뻔=
지난 2015년 양사는 모두 중국 기업과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주반도체는 이 계약이 취소됐고 피델릭스는 중국 기업에 넘어갔다.

피델릭스는 지난 2015년 4월 동심반도체 유한공사(Dosilicon.Co.,Ltd, 동심반도체)와 84억8000만원의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6월 최대주주가 기존 안승한 대표 외 2인에서 동심반도체로 최종 변경됐다. 동심반도체는 자원 개발, 부동산, 인프라 등 분야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국 ‘동방항신 그룹’의 계열사다. ‘강소성 최고의 부호’로 불리는 장 쉐밍(Jiang Xueming)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투자자 사이에선 중국 모회사가 피델릭스 기술을 유출하거나 ‘먹튀’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회사 측은 동방항신 그룹이 애정을 가지고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고 있어 ‘먹튀’ 가능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제주반도체도 지난 2015년 8월 중국 영개투자유한공사(WING CHAMP INVESTMENTS LIMITED)와 약 381억원 규모의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최대주주 변경 예정일자인 2015년 10월 21일을 며칠 앞둔 그해 10월 16일 이 계약이 취소됐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결국 당시 기준으로 중국 기업이 지분 53.54%를 보유하게 될 최대주주 변경 계약이 백지화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영개투자유한공사 측이 계약 내용을 변경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양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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