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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드라마 재방송만 하는데 우수?…이상한 방통위의 PP 제작역량평가

채수웅
<방통위 전체회의 모습>
<방통위 전체회의 모습>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의 애매한 평가 기준 때문에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채널들이 우수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는 16일 '2020년도 방송 콘텐츠 제작역량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 평가는 PP들의 방송콘텐츠 제작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시행된다. 91개 PP가 운영하는 160개 방송채널이 대상이다. 방통위는 매우 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 미흡으로 나눠 평가하며 상위 2개 등급 채널을 공개한다.

콘텐츠 제작역량 강화가 목적인 만큼 평가의 초점은 콘텐츠 제작, 경쟁력 있는 콘텐츠 수급 등이다. 하지만 몇몇 채널들은 드라마, 예능 등을 무차별 재방송하고 있지만 높은 등급의 평가를 받는 경우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매우 우수 등급을 받은 'O tvN'의 경우 tvN의 드라마, 예능을 재방송하는 채널이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찾기 어렵다. 'JTBC2' 역시 JTBC 프로그램을 주로 재방송 하고 있지만 꾸준히 오리지널 콘텐츠도 제작해 송출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제작을 하고 있는 'JTBC2' 등급은 'O tvN'보다 한 단계 아래다.

또 다른 매우 우수 등급 채널인 '하이라이트TV'나 'CNTV' 역시 마찬가지다. 영웅시대, 인어아가씨, 허준 등 주로 지상파 방송의 과거 인기 드라마로 반복해서 틀어주는 채널이지만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다.

우수 등급 채널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iHQ 계열인 코메디TV는 지상파나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재방송한다. 드라맥스 역시 지상파, 종편의 예능이나 몇몇 해외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재방송한다. 자체적으로 제작하거나 하는 프로그램은 찾기 어렵다.

이들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채널들은 편성도 그때그때 즉흥적이다. 당일 이후의 편성표가 비어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왜 이러한 평가결과가 나오게 된 것일까.

이는 평가해야 하는 PP수가 워낙 많은데다 규모별, 공급분야별로 세분화해 상대평가를 하다보니 자격이 안되는 채널도 매우우수나 우수 등급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방통위는 PP의 방송프로그램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매출규모 기준으로 가(매출 300억 이상)와 나 그룹으로 나누고 이를 A(부동산, 재테크, 스포츠, 게임 등), B(연예오락,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C(문화예술, 교육, 낚시, 등산, 건강, 소비자, 노인 등) 3개 분야로 각각 나누어 자원·프로세스·성과 경쟁력 등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매우우수 채널 비중은 15%, 우수는 25%, 보통 35%, 미흡 20%, 매우미흡 5%다. 하지만 전체 160개 채널 중 상위 15%가 매우우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매출별 2개, 분야별 3개, 즉 6개 섹터에서 각각 매우우수, 미흡을 나누는 구조다.

A나 C그룹의 경우 스포츠, 건강, 낚시, 예술 등은 자체제작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은 반면, 연예 오락 중심인 B 그룹의 경우 자체제작보다는 외부 프로그램 수급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다. 성격도 틀리고 투자 규모도 다른데 이를 억지로 분리해 상대평가를 하다보니 평가등급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매출이 300억원 이상인 가 그룹에서도 매우 미흡 채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은 나 그룹의 우수 채널보다 더 투자를 해도 매출 300억 이상 채널 중 누군가는 매우 미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방통위 관계자는 "그룹별로 편차가 심해서 공급 특성을 반영하면 편차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해 A B C로 나누었다"며 "해당 분야에서 성적순으로 상대평가를 하다보니 재방송 채널들이 우수채널로 분류되는 사례가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비용, 제작편수, 신기술 적용 콘텐츠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도록 돼있지만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없다보니 방송사의 인력구조, 영업매출 등 부차적인 경쟁력이 평가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매우미흡 평가를 받은 채널들을 살펴보면 재방송 측면에서는 다를 바 없었지만 직원수가 현저히 적거나 매출이 떨어져 미흡 평가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등급 비율을 규모, 분야별로 정해놨기 때문에 누군가는 매우 미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우수한 채널과 그렇지 못한 채널간 격차가 크다보니 기준을 세분화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지적된 한계와 단점 등은 앞으로도 꾸준히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통위는 각 그룹에서 우수한 채널을 선정해 2021년 방송대상에서 시상할 예정이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방송프로그램 제작지원 사업’에서 평가결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자격이 안되는 채널이 상을 받거나, 정부 제작지원 사업에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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