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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보고서]② 망 투자없이 혜택만 '꿀꺽'…리브엠에 기울어진 운동장

강소현

알뜰폰 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띤다. 가입자가 1200만을 돌파한 데다 대형 통신사를 상대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를 잘 들여다 보면 딜레마가 보인다. 가입자 대다수는 여전히 통신사 자회사와 사물인터넷(IoT) 회선이 차지하고 있고, 금융권의 잇따른 진출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실정이다. 5G 시대 다양한 요금제를 선보이지 못하는 점도 숙제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알뜰폰 시장의 명과 암을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금융 당국이 조만간 개선된 금산분리 제도를 내놓을 예정이다. 금산분리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알뜰폰 업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 규제가 완화되는 경우 금융권 기업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가 알뜰폰 시장에 이미 진출한 KB국민은행을 향해 강한 반발심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금융권 기업들이 어떠한 전략을 가져갈지 주목된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금융권 기업이 대거 진출하는 경우 기존 중소기업 중심의 알뜰폰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 알뜰폰, 금융사 부수업무로?…‘가입자 락인효과’ 기대

31일 업계에 따르면 내달 중 열릴 제7차금융규제혁신회의에는 금산분리 제도 개선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이 상정될 예정인 가운데 여기에는 알뜰폰 등 금융사의 부수 업무 영위를 허용하는 내용 등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금융사는 금융업과 관련된 전산업만을 부수 업무로 영위할 수 있다. 이에 KB국민은행의 경우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근거, KB국민은행 알뜰폰사업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준 덕에 알뜰폰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 소식에 KB국민은행뿐 아니라 다른 금융사들 역시 알뜰폰 시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과 통신을 연계한 서비스로 가입자 락인효과(Lock-in·잠금)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사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통신 요금을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은 계좌 중심의 연결 서비스다. 계좌를 통해서 다양한 연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고객에 들어간 원가 대비 이익이 더 많이 발생하는 구조”라며 “알뜰폰도 그런 연결 서비스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 “1인당 24만원 손해”…금융권 기업 향한 알뜰폰 업계 반감↑

하지만 금융권 기업들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근 KB국민은행에 대한 알뜰폰 업계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강한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2019년 출범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브랜드 ‘KB리브엠’은 도매대가 이하의 알뜰폰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알뜰폰 업계의 반발을 샀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도매대가 이하의 덤핑요금제와 과도한 사은품 제공 등으로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통신사와의 도매대가 인하 협상에 대신 나서 확보해준 가격 경쟁력으로 겨우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중소 알뜰폰 업체로서는 리브엠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업계는 토로한다. 리브엠은 예컨대, 도매대가 3만3000원인 음성·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24개월간 최저 2만2000원에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자 1인당 최소 24만원 손해보는 장사를 지속해온 셈이다.

실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영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리브엠은 2020년엔 139억원, 2021년엔 18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알뜰폰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가 금융의 부수업무로 알뜰폰 사업을 지정한다면, 거대 금융기관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이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알뜰폰 협회는 ‘알뜰통신사업자협회, 알뜰폰 금융 부수업무 지정 반대 및 공정경쟁 제도 보완 촉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거대 금융기업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른 알뜰폰 사업자들의 가입자를 뺏어가도 막을 방법이 없다”라며 금융기관들이 거대 자본력을 이용해 가입자를 빼가는 불공정한 행위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 기업의 진출은 알뜰폰 시장 활성화 자체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자본력을 기반으로 손해를 보며 가입자 모집과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 경우 시장가격이 무너져 중장기적으로는 알뜰폰 사업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진다”고 우려했다.

◆ ‘상생’ 강조한 토스…전문가들 “알뜰폰 시장 진출 당위성 증명해야”


앞으로 알뜰폰 시장 진출 계획이 있는 다른 금융권 기업들도 이런 시장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사와 중소 업체 간 공존은 알뜰폰 시장에 남겨진 과제다. 이에 같은 금융권 기업인 토스는 전날 알뜰폰 서비스 출시에 앞서, 중소 업체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알뜰폰 사업을 전개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토스모바일의 요금제는 ▲데이터 100GB 기본, 통화·문자 무제한 요금제 월 5만9800원(프로모션가 3만9800원) ▲데이터 71GB 기본, 통화·문자 무제한 요금제 월 5만4800원(프로모션가 3만4800원) ▲데이터 15GB 기본, 통화 100분·문자 100건 월 3만5800원(프로모션가 2만5800원) ▲데이터 7GB 기본, 통화·문자 무제한 월 2만5800원(프로모션가 1만4800원) 등 총 4종으로 구성된 가운데, 다른 알뜰폰 요금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대신 토스는 캐시백을 타사와 차별화된 강점으로 내세웠다. 데이터 100GB, 71GB 상품의 경우 미사용 잔여 데이터량에 따라 최대 1만원 토스포인트 캐시백을 제공하며, 토스페이 결제시 토스포인트 5000원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자 간 공존을 위해선 금융사에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통신사의 알뜰폰 자회사만 해도 도매대가 이하의 요금제를 팔지 못하도록 규제받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와 알뜰폰 업체 간 공정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논의는 스타트업은 금융업을 영위할 수 있는 반면, 금융사는 다른 산업을 할 수 없다는 ‘형평성 문제’가 지적되면서 시작됐다”라며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사가 다른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해당 시장에 이미 있는 회사들이 차별을 받게 됐다. 이렇게 된다면 SK텔레콤도 KT도 금융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금융사가 알뜰폰의 정책 취지에 맞는 서비스를 선보여, 기존 사업자에 시장 진출 당위성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당초 알뜰폰은 고착화된 이동통신시장에서 통신사 간 경쟁을 유발해 통신요금 인하를 유도하고자 도입됐다. 하지만 금융혁신 서비스로 지정돼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리브엠만 해도 지난 4년동안 저렴한 가격 외에는 통신이나 금융 면에서 서비스 혁신성이 없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렇다고 통신사 간 경쟁을 유발한 것도 아니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알뜰폰은 MVNO를 자체 전산설비를 갖춘 풀MVNO(FULL MVNO)로 키워 MNO와 경쟁시키겠다는 취지였는데, 과연 금융사들이 그 역할을 하려고 할지는 의문이다”라며 “금융사라는 사실상 막강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에 도매대가 인하라는 혜택을 주고 사업하게 하는 것이 과연 향후 알뜰폰 산업 발전에 옳은 것이냐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사가 ‘저렴한 요금제를 내놨으니 됐다’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향후 알뜰폰 시장에서 금융사의 역할이 무엇이냐에 대해 논의해봐야 한다”라며 ”중소 알뜰폰 업체 역시 산업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틈새 서비스 등 알뜰폰이 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동기를 부여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소현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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