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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하드캐리]③후발주자 꼬리표 무색...'고속열차' SK온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지동섭 SK온 대표이사. (사진=SK온)
지동섭 SK온 대표이사. (사진=SK온)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SK온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 '후발주자'란 인식이 강하다. 적자기업 딱지도 아직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고속성장'이란 네 글자는 함께 주목할 만한 키워드다. SK온이 그동안 걸어온 길과 달성한 결과들은 다음 5년 후 업계의 판도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점들이 있다.

◆ 생각보다 긴 SK온 배터리 역사

후발주자 이미지와 달리 SK온의 배터리 사업 역사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그리 얕지 않다. SK㈜ 시절인 1996년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시작으로 2006년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를 자체 개발했다. 2010년에는 현대자동차가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순수 전기차 ‘블루온’ 배터리 납품 계약도 따냈다. 이는 삼성SDI의 2008년 BMW 전기차 배터리 공급, LG에너지솔루션의 2009년 GM 배터리 공급 성과와 비교해 크게 늦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력이다.

이어 2011년 충청남도 서산 배터리 공장 착공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전기차용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인 NCM 622 개발에 성공했다. NCM 622는 주요 양극소재인 니켈과 코발트, 망간이 각각 6:2:2 비율로 사용됐다는 의미다.

NCM 배터리는 지금도 니켈 비중 극대화를 통한 배터리 에너지밀도 개선 및 안정성 보완을 두고 업계에서 치열한 기술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제품군이다. SK온은 2016년에는 NCM811,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NCM9 배터리 개발에도 성공한다.

자료=SK이노베이션 뉴스룸.
자료=SK이노베이션 뉴스룸.

SK온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된 건 2018년부터다. 헝가리와 중국을 시작으로 2020년 미국 땅을 밟았다. 유럽과 아시아, 북미 내 성장 발판이 각각 마련된 셈. 이후 ‘사고 위험성 낮은 양질의 배터리’를 마케팅 포인트로 앞세워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성장 속도는 주목할 만하다. 2019년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점유율은 9위에 그쳤으나 2022년에는 5위에 올랐다. 4위를 기록한 삼성SDI보다 매출이 뒤질 뿐, 배터리 출하량은 오히려 앞선 기록을 세웠다. 2023년 1분기 배터리 사용량 조사에서도 점유율 5.3%를 기록, 삼성SDI를 제쳤다. 매출 역시 2019년 6903억원에서 2022년 7조6177억원으로 3년만에 11배 증가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부가 물적분할되어 지금의 SK온이 탄생했다. 이어 2022년 미국과 헝가리 공장이 양산 단계에 돌입하고 포드와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설립하는 등 지속성장을 위한 기틀 마련이 본격화됐다.

◆ ‘본게임’은 2024년부터…적자기업 꼬리표 뗀다

이처럼 사업 이력은 경쟁사들보다 뒤지지 않아 보이는 SK온의 후발주자 이미지가 유독 강한 이유는 적자 상태의 재무제표가 꼽힌다. SK온은 2022년 매출 7조6177억원, 영업손실 1조72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16%나 늘었지만 손실 규모 또한 241% 커지면서 빛이 바랬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각각 1조2000억원, 1조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SK온이 늘어난 매출에도 적자폭이 확대된 이유는 해외 거점 투자비가 단기간에 급등하고, 공장 생산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수율이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지난 2월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실적발표 당시 “(SK온의) 해외 신규공장 생산 능력 증가에 따라 선행적으로 증가하는 고정원가 영향, 원소재 가격 및 유럽 유틸리티 비용 상승이 적자 악화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자료=SK온 2022년 사업보고서.
자료=SK온 2022년 사업보고서.

SK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SK Battery America(미국 법인)’과 ‘SK Battery Manufacturing(헝가리 법인)의 2022년 당기순손익은 각각 -4608억원, -3193억원으로 SK온 연결 적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점이 확인된다.

이에 SK온은 공식 행사 등에서 수율이 안정화된 우수 법인의 노하우를 헝가리와 미국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란 입장을 지속해서 피력하고 있다. 그만큼 적자 해소의 관건은 수율 개선이란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SK온은 2024년을 흑자전환의 원년으로 공언했다.

◆ 290조원의 수주잔고, 시장은 SK온을 믿는다

이 같은 공언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확정된 막대한 규모의 수주잔고와 더불어 신규 파트너십 체결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제조업은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해외에 배터리 제조공장 하나를 세우려면 평균 2~3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며 착공부터 완공까지 걸리는 시간도 3년여에 이른다. 완공 후에는 양산과 수율 최적화까지 다시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완성차 업체들도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충분한 신뢰 없이 합작법인(JV)을 설립하거나 투자 비용을 분담하고, 수조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 어렵다.

2024년 이후 SK온의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2022년 기준 SK온의 누적 수주잔고는 290조원에 이른다. 1위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잔고 385조원에는 못 미쳐도 삼성SDI의 수주잔고 약 140조원(증권가 추정)는 크게 앞선다. 수주잔고는 고객사와 확정된 계약에 따라 예정된 회사의 미래 매출이다. 매출화 시점은 상이하나 이미 많은 완성차 업체가 SK온에 일을 맡겼단 의미다.

SK온은 4일 진행된 모회사 SK이노베이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의 미국 내 배터리 공급망 확보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회사는 많지 않다"며 "SK온에도 계속해서 파트너십 확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현재 SK온의 주요 고객사는 ▲현대자동차 ▲포드 ▲폭스바겐 ▲다임러 ▲페라리 ▲폴스타 ▲엑스펑 등 다양하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핵심 전장인 미국에선 포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2025년까지 연산 129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3개 건설할 예정이다. 조지아 1,2 공장과의 생산용량을 합치면 2025년 기준 생산량은 총 150GWh에 이르게 된다.

SK온은 현대차와도 2025년 이후 북미에서 배터리를 공급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상태다. 그간 SK온의 배터리는 수출용 아이오닉5, 현대차의 대형 전기SUV 아이오닉7, 기아의 EV6와 EV9, 제네시스의 첫 전기차 GV60 등 다양한 차종에 탑재됐을 만큼 양사의 관계는 끈끈하다.

유럽의 주요 파트너는 독일에 본사를 둔 폭스바겐이다. 전동화 SUV 플래그십 모델 ‘ID.4’ 탑재 배터리 공급업체로 SK온을 선정했다. 현재 SK온이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 중인 배터리가 폭스바겐 ID.4에 조립되고 있다.

특히 ID.4는 최근 강화된 조건의 미국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 차종 중에서 현재 미국 외 브랜드 중에선 유일하게 명단에 오른 모델이다. 폭스바겐의 전기차 전환을 이끌 핵심 모델이기도 한만큼, 당분간 폭스바겐과 SK온의 관계 역시 견고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폭스바겐 ID.4
사진=폭스바겐 ID.4

SK온은 유럽에서 헝가리 코마롬에 2개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1공장은 2020년, 2공장은 2022년 가동을 개시하고 양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17.5GWh 수준이다. 미국과 비교해 규모는 다소 작지만 유럽 시장 수요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헝가리 이반차에 3번째 공장도 증설 중이다. 2024년 가동이 시작되면 유럽 내 생산능력은 연간 47.5GWh 수준으로 증가한다.

국내를 제외한 아시아는 2020년 이래 중국에도 4개의 공장을 운영 중이다. 각 생산 능력은 창저우 7GWh, 후이저우 10GWh, 옌청 1공장 27GWh, 현재 공사 중인 2공장은 33GWh다. 국내 생산능력은 5GWh다. SK온은 지속적인 생산거점 신·증설을 통해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220GWh, 2030년에는 500GWh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다.

SK온의 배터리 안정성 역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SK온을 이따라 파트너로 낙점한 이유로 꼽힌다.

SK온은 배터리 분리막 사이에 양극과 음극을 지그재그로 균일하게 쌓아 안전성을 극대화한 ‘Z폴딩’ 3세대 기술을 핵심으로 화재 위험성 낮은 배터리를 경쟁사 대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또 ‘S팩’이란 자체 신기술은 열 차단 및 가스 경로 제어를 통해 배터리 화재 발생 시 열이 다른 셀과 배터리 팩의 다른 부분까지 확산되지 않도록 돕는다. 배터리 구조를 단순화해 에너지 밀도 효과도 있다. 더불어 독자적인 이중 전극 코팅으로 18분만에 최대 80% 고속 충전이 가능한 기술을 보유해 안전과 편의 측면의 고객사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있다.

다만 올해 초 포드 F150 라이트닝 모델에서 발생한 배터리 화재는 옥의 티다. 이 때문에 양사의 관계도 경직되는 듯했으나 생산 공장이 2주만에 가동을 재개하며 원만한 해결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배터리 제조를 위한 SK온의 주요 소재·부품 파트너로 양극재는 ▲에코프로비엠 ▲유미코아, 음극재는 ▲BTR, 분리막 ▲SKIET, 전해액은 ▲엔켐 ▲동화일렉트로라이트 ▲솔브레인 등이 있다. 또 SK온은 최근 북미에서 우르빅스, 웨스트워터 등과 잇따라 음극재 공동 개발 및 공급 논의를 이어가며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공격적 투자와 흑자전환 두 마리 토끼 잡는다

SK온의 2023년 주요 사업목표는 현재 진행 중인 증설 프로젝트의 조기 램프업 달성(안정적인 생산능력 확보)이다. 올해 증권가에서도 SK온의 헝가리 공장 수율 개선 속도가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공장 수율 최적화 기간과 비교해도 늦지 않은 편이라며 연내 수율 안정권 진입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SK온은 조기 램프업, 수율 안정화를 통한 연내 EBIT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흑자전환도 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4일 1분기 실적발표에서 미국 현지 배터리 제조시설 가동 및 예상 판매량(10GWh~15GWh)에 따른 SK온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세액공제 혜택은 2023년 최소 6000억원에서 최대 9000억원 수준으로 전망, 실적 개선의 근거를 한층 가시화했다.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동섭 SK온 대표는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공급 흐름을 보면 이미 상위 5~6개 회사가 전체 시장 수요의 80%를 차지한 상황”이라며 “SK온은 초기 성장 단계인 배터리 산업에서 시장의 ‘판도’가 굳어지기 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 내 포지션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과감한 성장 전략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한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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