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유럽 車 수요 반등에 이목…투자 시기 재는 K-배터리 [소부장박대리]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배터리 업계가 내년 유럽 전기차 시장의 수요 회복 가능성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대규모 생산거점이 위치한 만큼 유럽 시장 점유율 회복이 실적 반등의 열쇠 중 하나로 꼽히고 있어서다. 유럽이 탄소 배출 규제와 중국 전기차 관세 등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어, 이에 따른 반사이익과 투자도 이뤄질지 관심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최근 헝가리 괴드 공장 1동의 기존 설비 철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철거 시점과 신규 설비 반입 시기 및 생산능력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기존 1동 생산능력 규모를 고려했을 때, 괴드 내 다른 라인 대비 생산능력 규모가 적은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철거될 라인은 삼성SDI의 각형 4세대 제품(P4) 이하가 생산되는 라인으로 과거 폭스바겐이 출시한 전기차 모델용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관련 라인의 전기차 모델을 단종하면서 물량 공급이 줄어왔다. 이에 따라 P5· P6용 신규 설비를 도입해 신규 수주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외 추가 배터리 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중장기적인 신규 전기차 프로젝트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다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유럽 내 전기차 수요 하락으로 인해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내 최대 규모 공장을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도 계획했던 증설을 멈추고 시장 살피기에 들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당초 2022년 연간 생산능력 70GWh 규모인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을 추가 증설로 100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잇따른 전기차 수요 저하로 관련 계획이 미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파우치 배터리 수요의 급격한 하락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타 용도로의 라인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유럽 전기차 시장은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저하로 침체기를 맞이한 상황이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력비 인상 등 불안 요소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독일 등 주요 국가가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 및 폐지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비야디(BYD) 등 중국의 저가형 전기차가 유럽 시장 판매를 늘리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보조금 축소로 전기차의 구매 단가 매력이 하락하자, 값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모델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의 집계에 따르면 중국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9%에서 2023년 21.7%까지 상승한 바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이전부터 괴드 외 추가 투자 부지를 검토해왔으나,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로 투자 심의 등을 다소 연기한 것으로 안다"며 "폭스바겐, BMW, 벤츠 등 유럽 완성차 제조사의 공급 니즈가 떨어진 만큼 당분간 국내 배터리 업계의 유럽 내 투자가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이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희소식으로 꼽힌다. EU는 내년부터 완성체 업체의 승용차 배출량 기준을 95g/km에서 93.6g/km로 높이기로 했다. 이를 초과하는 경우 1g/km당 95유로의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아울러 2030년부터 관련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전기차 비중이 다시금 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가 확정된 점도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요소다. EU가 기존 관세율인 10%에 제조사별 관세를 차등 부과하기로 하면서 LFP 중심의 저가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희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BYD는 27%, 지리자동차는 28.8%, 상하이자동차(SAIC)는 45.3%의 관세를 받게 됐다. 업계는 이러한 중국 중심 규제 정책이 지속된다면 유럽 제조사들의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고, 이에 탑재될 국내 배터리사의 배터리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내년 유럽 시장 내 전기차 수요 반등 회복에 따른 수혜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측 중론이다. 탄소 배출량 규제는 풀링(Pooling) 계약 등 내연기관을 유지할 수 있는 우회책이 존재하는 데다, 법인차량 점유율을 높이고 관세 타격이 적은 BYD의 향방을 예단하기 어려워서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3사의 가동률 향상과 투자 시점은 내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시장은 주요 국가의 보조금이나 탄소배출 정책 외에도 전쟁 장기화, 거시경제 환경 등 지켜봐야 할 대외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며 "이러한 불안요소가 해소되면 전기차 업체의 배터리 주문이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고, 이에 맞춰 국내 배터리 업계의 투자 시점도 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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