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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공공 인터넷 외친 시민단체, 현실은 빅테크 하수인?

강소현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최근 한 비영리단체가 특정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이 단체는 표면적으론 이러한 활동들을 공공의 인터넷 생태계 조성을 위한 것처럼 포장해왔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피해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데일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비영리단체 오픈넷(Opennet)은 당초 주장과 달리,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에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진행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3’ 출장을 명목으로 2000만원을 추가 요청했다.

오픈넷은 넷플릭스로부터 후원금을 분기별로 지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에 추가 요청한 2000만원은 분기별 지급되는 후원금과는 별개의 것이다.

오픈넷은 앞서 ‘유럽 망사용료법 논의 동향’ 연구활동 명목으로 넷플릭스가 지급한 후원금 중 일부를 MWC 출장에 이용한 건 맞으나, 넷플릭스에 MWC 출장을 조건으로 추가 후원을 요청한 사실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오픈넷이 넷플릭스에 추가 후원을 요청한 사실은 미국 국적인 박경신 오픈넷 이사의 육성을 통해 확인됐다. MWC 출장을 가기 전인 지난 2월14일 진행된 오픈넷 사무국 회의에서 박 이사는 “예산이 없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 MWC에 갈 예산이 있냐”라는 질문에 “(MWC) 예산을 확보했다. MWC 참가비만 4000불(약 525만원)로 비용이 부담되어 내가 넷플릭스 측에 요청했다”고 답하며 넷플릭스에 추가 후원을 요청한 사실을 시인했다.

다음날인 15일 박 이사는 해당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 문제가 될 것을 의식한 듯 전 직원이 속한 텔레그램에서 “연구용역을 받기로 하고 그 예산을 저희가 내부 예산으로 이용하는 거다. 외부에서 물어보면 오해없도록…”이라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요청 후 실제 지급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디지털데일리가 입수한 메일에는 넷플릭스로부터 MWC 출장을 명목으로 '추가 후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이사가 MWC에 다녀온 이후인 지난달 8일 전 직원에 보낸 메일의 내용은 이러하다.

“넷플릭스 측에서 저 한 사람의 MWC 등록비용, 비즈니스 항공권, 호텔숙박비를 대충 산정해서 2000만원을 주겠다고 했고, 형식적으로는 연구용역 목적이다."

특정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되냐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되새겨야 할 건 오픈넷이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가 아닌, 공익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넷플릭스부터 추가 후원을 받은 사실을 숨긴 것은, 오픈넷이 과연 공공의 인터넷 생태계 구축을 위해 모든 사업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 그 투명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실제 오픈넷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는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는 오픈넷 의뢰로 지난달 17일부터 22일까지 7일간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망사용료법에 대한 국민 인식을 확인하기 위한 여론조사를 진행, 허위 또는 편향된 가정에 기반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왜곡된 답변을 유도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빅테크기업에 불리한 결과를 보고서에서 제외하려고 한 정황도 포착됐다. 텔레그램 방에 여론조사 결과가 요약된 보고서가 공유되자, 박 이사는 “설문지에서 Q5가 빠지지 않았네요”고 말한다. 당초 Q5를 제외시키라고 지시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Q5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내 콘텐츠사업자 네이버·카카오 등과 해외 콘텐츠사업자인 구글·유튜브·넷플릭스·페이스북 등 사이에 역차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해당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1.6%가 “역차별이다”라고 답한 가운데, 오픈넷이 정말 공공의 인터넷 생태계를 위한 단체라면 왜 빅테크 기업에 불리한 결과는 보고서에서 제외하려고 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결국 기자들에 배포된 보도자료에서 해당 내용은 제외됐다. 지난달 20일 오픈넷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국회가 논의 중인 ‘망사용료법’ 법제화에 반대하는 응답자의 비율(43.7%)이 찬성한다는 응답자의 비율(30.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등 빅테크 기업에 유리한 설문결과가 중점적으로 포함됐다.

게다가 오픈넷의 경우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인 것이 처음이 아니다. 오픈넷은 구글코리아 망사용료 부과 법안 반대 서명운동을 펼친 가운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구글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변재일 의원실에 따르면 오픈넷은 2020년 한해에만 구글코리아로부터 후원금 2억2000만원을 받았다.

<사진 : 변재일 의원실>
<사진 : 변재일 의원실>

이러한 오픈넷의 행위를 외면하는 경우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나 이익을 위해 입법 과정에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부분이 우려된다.

실제 디지털데일리가 입수한 자료에선 오픈넷이 국내 입법에 관여하려 한 정황들이 다수 발견됐다. 박 이사는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국회의원 1명이라도 우리 편으로 만드는게 중요하다. A의원은 망중립성을 지금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관련 법안에도 관심있는 의원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특정 의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망사업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MWC에서) 우리도 좋은 식당에서 밥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2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힘없는 개인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의를 강조한 바 있다. 과연 그와 오픈넷은 현재 힘있는 빅테크가 아닌, 힘없는 개인을 위한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돌이켜볼 때다.

강소현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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