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소재

[테크다이브]전기차 대세는 어디로? '구세대' LFP 배터리의 반격

이건한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기존 내연기관차의 엔진을 대신할 전기차의 심장으로 '배터리'에 대한 주목도가 부쩍 높아진 요즘입니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밀도를 바탕으로 1회 주행거리가 긴 삼원계(NCM, 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 배터리가 널리 쓰이는데요. 최근에는 가성비와 차세대 경쟁 옵션 측면에서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배터리에 대한 주목도도 부쩍 높아졌습니다.

특히 삼원계 배터리로 전세계 시장을 제패한 국내 업계가 올해는 대형 전시회, 주주총회, 실적발표 등 굵직한 행사에서 LFP 양극재 및 배터리 개발 검토 의사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동안 K-배터리 업계의 '뒷전'이었던 LFP 배터리에 대한 달라진 대우가 느껴진 대목입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인사이

◆ LFP배터리는 ‘1996년생’

LFP 배터리의 역사는 의외로 깁니다. 현재 2차전지(충전 후 재사용 가능한 배터리)의 표준처럼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창시자 존 구디너프 교수가 1996년 개발한 양극소재를 활용해 개발된 것이 최초입니다. (삼원계와 LFP 배터리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에 속함). NCM 배터리용 양극재 양산은 2006년 LG화학이 최초로 시작했으니 역사만 두고 보면 LFP 배터리가 훨씬 ‘형님’인 셈이죠.

◆ 1회 주행거리가 중요했던 전기차

하지만 전기차용으로 주목받은 건 NCM 배터리였습니다. LFP와 NCM 양극재의 특성 차이 때문인데요. 양극재는 배터리의 용량을 책임지는 핵심 소재로 전기차의 1회 주행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강점인 장거리 이동의 편의성을 따지면 충분한 주행거리를 보장은 중요한 문제였죠.

NCM 배터리는 에너지밀도 개선에 유리한 니켈을 함유해 니켈 비중을 높일수록 고용량 배터리 개발에 유리합니다. 일례로 ‘하이니켈’로 분류되는 니켈이 80% 함유된 NCM822 배터리 기준 에너지 밀도는 1kg당 약 240Wh인데, 일반적인 LFP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1kg당 약 160Wh 정도로 NCM에 뒤집니다.

따라서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하려면 LFP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크기는 더 크고 무게가 더 무거워집니다. 또 하나의 예로, 2021년 테슬라가 생산한 전기차 ‘모델3’는 공차 중량 기준 LFP 배터리 탑재 모델이 1825kg인데요. NCA(삼원계에서 망간 대신 알루미늄 사용) 배터리 탑재 모델은 1700kg으로 큰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테슬라 모델3

◆ 가성비도 중요해진 전기차

시장조사업체 EV볼륨에 따르면 2022년 LFP 배터리의 전세계 시장 점유율은 27.2%였습니다. NCM·NCA 등 나머지 삼원계 배터리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점유율이죠.

그러나 2020년 점유율이 5.5%에 불과했던 점을 생각하면, 불과 3년만에 큰 폭으로 성장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LFP 배터리 탑재 차량이 많은 중국의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된 이유와 더불어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도 LFP 배터리 탑재 차량을 늘리기 시작한 영향입니다.

이런 변화의 주된 원인은 LFP 배터리의 가성비입니다. 1회 주행거리는 삼원계보다 짧지만 가격은 약 30%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극재에 니켈, 코발트 같은 값비싼 소재가 사용되지 않는 덕분인데요. 사용되는 리튬도 삼원계의 수산화리튬보다 저렴하고 생산량이 많은 탄산리튬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세계 각국은 전기차 구입 시 지급하던 보조금을 점차 줄이고 있습니다. 전기차 전환 움직임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까닭입니다. 중국은 13년간 유지했던 전기차 보조금을 아예 올해부터 폐지했습니다.

전기차 보조금이 감소하면 소비자 부담이 높아지고 전기차 모델의 가격 경쟁력은 내연기관차보다 낮아집니다. 이를 상쇄하려면 전기차 제조사 입장에서 제조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낮출 필요가 따르죠. 주행거리는 다소 포기하더라도 LFP 배터리가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더불어 LFP 배터리에 집중했던 CATL과 BYD 등 중국 기업들이 주행거리가 개선된 LFP 배터리를 잇따라 내놓으며 LFP 배터리의 기술적 한계도 재조명되고 있는데요.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와 CATL의 ‘기린 배터리’가 대표적입니다. 둘 모두 CTP(Cell to Pack, 셀투팩) 기술을 중심으로 에너지밀도를 끌어올린 것이 특징인데요. CTP란 ‘셀-모듈-배터리팩’ 단계로 이어지는 기존 배터리 구조에서 모듈 단계를 건너 뛴 설계를 말합니다.

▲ CATL 기린배터리 구조

이 중 CATL은 기린 배터리의 에너지밀도가 255Wh/kg, 1회 주행거리 1000km라고 공언했습니다. 물론 과장이란 업계의 의심이 따르지만, 실제 양산 차종에서 이 같은 성능이 증명된다면 적잖은 반향을 불러올 성능입니다.

가성비와 더불어 전기차는 안전도 중요시됩니다. 배터리 화재는 ‘열폭주’ 현상이 따르는 특성상 진화가 어렵고 주변에 큰 피해로 번지기 쉽기 때문인데요. LFP 배터리는 삼원계보다 화재 내성이 높다는 장점을 부가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화학적으로 LFP는 크리스털 형태 육면체들이 격자형으로 연결된 ‘올리빈 구조’를 중심으로 높은 안정성을 보입니다. 덕분에 과충전, 과방전으로 인한 화재 위험이 적고 배터리 수명도 긴 편입니다.

만약 LFP 배터리 기술 개발이 지속돼 1회 주행거리가 충분히 증가한다면 전기차 제조사들의 다음 경쟁 포인트는 가격과 안전이 될 수 있습니다. 초기 스마트폰 산업의 경쟁 구도가 속도와 화면 크기 중심이었다가 상향평준화에 도달한 지금은 카메라 성능 경쟁으로 변화된 것처럼 말입니다.

◆ LFP 배터리 개발·도입, 한국도 본격화

실제로 전세계 전기차 선두업체인 테슬라는 이미 장거리용 롱레인지 모델에는 삼원계를, 보급형 스텐다드 레인지 모델에는 LFP 탑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법안을 발효하며 제조상 중국과 관련된 배터리 탑재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를 주지 않기로 했지만, 테슬라가 CATL과 미국 내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란 보도도 잇따랐죠. 현대차도 신형 전기차 일부에 LFP 배터리 탑재를 검토 중이란 소문이 지난 3월 전해졌습니다.

포드는 아예 올해 2월 미국 미시간주에 35억달러를 투자해 CATL과 합작공작을 세우겠다고 공식발표했습니다. 이는 포드가 지분 100%를 갖고 CATL은 기술 라이선스만 갖는 방식으로 IRA를 우회하는 방식인데요. 미국 정부가 이를 묵인할지 아직 미지수지만, 완성차 제조사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LFP 배터리에 대한 중장기 수요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같은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은 국내 배터리 제조사, 양극재 소재 개발사들의 행보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2023년 1분기 실적발표에서 그간 LFP 배터리 개발에 미온적이었던 삼성SDI는 NMX 배터리와 더불어 LFP 배터리도 개발 중이란 소식을 전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3조원을 들여 ESS(에너지저장시스템)용 LFP 배터리 제조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는데, 2025년부터는 이곳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도 생산할 계획입니다. 같은 달 SK온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에서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하기도 했죠.

나아가 정부도 국내 업계가 LFP 배터리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지난 27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양극재 제조사 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삼성SDI ▲동화일렉트로라이트 ▲한국화학연구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성균관대 ▲한양대 등 민관이 고루 참여하는 ‘LFP 배터리 개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건한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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