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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팬택 박병엽 부회장을 막다른 길로 몰았는가

윤상호 기자
- 팬택, 기술력 인정 불구 고군분투…회생 가능 시나리오는?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팬택 박병엽 부회장<사진>이 팬택 대표직을 갑작스레 사임했다. 그는 지난 24일 채권단에 사의를 표하고 ‘사임표명에 따른 담화문’을 사내 게시판에 게시했다. 박 부회장은 “역량 부재한 경영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만을 드린 것 같다”라며 “이준우 대표 중심으로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팬택으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을 당부했다. 팬택은 임직원 35%의 6개월 무급 휴직 등 고강도 구조조정도 실시한다.

팬택은 지난 1991년 설립해 일반폰 \'스카이\', 스마트폰 \'베가\' 시리즈를 만들어 온 휴대폰 전문 제조사다. 박 부회장은 팬택 창업주다.

◆대표이사 사임, 박병엽 부회장의 마지막 승부수=이번 박 부회장은 표면적으로는 경영실패와 구조조정의 책임을 진 모양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기업구조개선작업 당시 4000억원에 달하는 지분 등 사재까지 털고 백의종군하며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던 그다. 또 위기 때마다 깜짝 ‘승부수’를 던졌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사임도 또 다른 승부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승부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기적으로는 팬택의 생존, 장기적으로는 박 부회장의 경영권 회복을 위한 노림수가 숨어있다. 팬택에 대한 동정적 여론 형성으로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기대된다.

박 부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은 팬택의 위기를 공론화 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물론 위기의 근본은 전 세계적 휴대폰 업계 재편이다. 그러나 팬택이 이 파고를 넘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던 이들의 책임론이 뒤따른다. 책임을 피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팬택 회생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정치권·금융권 향한 팬택 살리기 동참 ‘압박’=박근혜 정부 들어 STX그룹 강덕수 회장,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등 ‘샐러리맨 신화’로 상징되던 회사와 최고경영자(CEO)가 줄줄이 쓰러졌다. 팬택 역시 샐러리맨 신화 한 축을 맡아온 기업이다. ‘팬택=박병엽’이라는 등식이 통할 정도였던 만큼 그의 사퇴는 ‘팬택마저 막다른 길로 몰아서는 안된다’는 여론 형성을 기대할 수 있는 극약처방이다.

박 부회장은 사석에서 채권단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했다. 채권단도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특히 퀄컴에서 262억원 삼성전자에서 530억원의 투자를 받은 뒤에는 채권단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부품사나 경쟁사도 지원을 하는데 여전히 주판알만 튕긴다”라며 “특정 회사를 살리려고 들인 돈의 10%만 줬어도 이런 어려움은 오지 않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난 8월 뒤늦게 산업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대구은행 등이 전환사채(CB) 인수 형태로 1565억원을 지원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2000억원 이상에 못 미쳤다. 신한은행 등이 빠져서다. 그나마도 740억원은 채무 상환으로 되 가져가 825억원만 팬택의 주머니에 들어왔다.

◆삼성전자·LG전자·SKT·KT·LGU+, 대기업 횡포 인식 ‘부담’=통신비 인하 수단으로 제조사를 압박해 온 정부와 정치권도 부담이 생겼다. 정부의 통신사 보조금 단속은 휴대폰 시장 축소로 이어졌다. 작년까지 월 200만대를 상회하던 시장 크기가 월 150만대 남짓으로 25% 이상 쪼그라들었다. 제조사는 매출과 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통신사는 마케팅비 축소로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아울러 정부와 여당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보조금규제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 제조사에 대한 규제를 공식화 하려하고 있다.

업계도 곤혹스럽다. 특히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그렇다. 팬택은 그동안 대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진 휴대폰 사업에서 고군분투 해왔다. 박 부회장은 LG전자와 LG유플러스의 협력이 시장 왜곡을 가져온다고 누차 지적해왔다. 삼성전자도 자유롭지 않다. 팬택에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삼성전자가 국내 시장 점유율 60% 이상 가져간 것이 팬택의 국내 판매 감소의 도화선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지위를 남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통신사와 제조사는 업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갑을관계’다.

◆관계사 대표직 유지…복귀 길 열려있어=팬택의 위기 해소와 상관없이 박 부회장이 돌아올 길은 열려있다.

박 부회장은 지난 6월30일 기준 팬택 주식 1억6462만1000주를 확보할 수 있는 주식매수선택권을 보유하고 있다. 행사기간은 오는 2019년 3월11일까지다. 주식 매수는 신주발행 조건이다. 현재 팬택의 발행주식 총수는 5억2816만9664주다. 신주발행 뒤 전부 인수하면 박 부회장의 지분율은 23.76%로 단숨에 최대주주가 된다. 물론 인수비용 988억원을 마련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주식매수선택권은 5개 블록으로 나눠져 있어 일부만 인수하고 우호지분을 규합하는 형태로 복귀도 가능하다.

아울러 박 부회장은 팬택 대표직을 사임했지만 자신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팬택씨앤아이 대표직은 유지했다. 팬택씨앤아이는 팬택 휴대폰 부품 개발 및 유통과 시스템통합(SI) 관리(SM) 업무를 맡고 있다. 여기에 팬택 휴대폰 유통과 판매 등을 하고 있는 라츠는 팬택씨앤아이의 100% 자회사다. 팬택씨앤아이는 작년 연결기준 매출액 3557억원 영업이익 151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기말 기준 375억원의 이익잉여금과 팬택 주식 409만7301주(지분율 0.78%)를 갖고 있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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