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이경주 칼럼] 안주(安住)는 도태다. 혁신해야 한다

이경주
1987년 7월에 문을 열었던 용산전자상가에 손님들이 줄어들고 있다. 당초 용산전자상가는 청과물시장이었다. 청과시장이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이전함에 따라 당시 청계천 세운상가에 입주해 있던 전자제품 판매 상가들이 옮겨오면서 조성된 곳이 용산전자상가의 시작이다. 이후 원효상가, 선인상가, 터미널상가, 전자랜드, 전자타운 등이 추가되면서 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취급 제품도 조명기구, 전기재료, 컴퓨터, 가전제품, 수입 음향기기, 방송통신기자재 등으로 매우 다양해졌다. 용산전자상가는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전자상가로서 하루에 수백 명의 외국인들이 꼭 들렸던 한국의 관광명소였으나 지금은 급격히 위상이 급격히 상실되고 있다.

반면에 변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구로디지털단지일 것이다. 1960년대에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섬유·봉제산업 위주의 업체들이 모여 있던 구로공단이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을 바꾸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구로산업단지 첨단화계획에 따라 고부가가치 첨단·정보지식형 산업을 유치한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IT벤처타운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현재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에 97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약 16만명이 일을 하는 곳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이다.

또 다른 성공적인 사례는 2004년 12월 경기도 판교신도시의 자족기능을 확보하고 국제비즈니스, IT 기반 지식산업과 R&D혁신 기능이 융합 발전하는 첨단지식산업도시로 정착되고 있는 판교테크노밸리다. 판교테크노밸리는 IT, BT, CT, NT 및 융/복합 기술 중심의 첨단 연구개발 단지로 조성했다는 점이 미래지향적이다.

현재 용산전자상가들이 어려운 반면에 구로디지털단지의 성공적인 변신과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적인 정착은 시대의 흐름에 잘 맞춘 결과라고 생각한다. 용산전자상가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 상거래 발전으로 주요 고객층인 젊은 고객들의 외면을 받는 것이다.

즉 시대흐름에 대응한 변신을 하지 못한 것이 주요원인일 것이다. 한국의 제조 산업은 1970년대 일본과 미국 등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밤잠을 줄여가면서 제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갖춘 결과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1990년대에는 3차 산업혁명의 정보화 시대에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하는 선투자를 통해 초고속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알렸다.

이를 기반으로 영원히 쫓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세계 최고의 소니,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을 추월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가 중국 등 후발국가에 쫓기는 입장에서 벌써 많은 부분을 추월당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과거처럼 시대흐름을 예견하고 선투자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제 때 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구로디지털 단지와 판교 테크노밸리를 변화시키자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시련과 난관이 있었을까? 몇몇의 선구자적인 리더들이 성공의 확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주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 일본, 중국은 제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국가뿐만 아니고 기업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생존차원에서 대응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의 용산전자상가 단지가 미래 한국의 IT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모습이 될까 두렵다. 현재 한국을 지탱했던 조선 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수출의 역군이었던 건설업도 세계 경제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간 3차 산업혁명의 근간인 정보화 사회에 주역이었던 IT분야도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용산전자단지가 생존하고 다시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과 큰 희생이 따를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메카 또는 각종 게임이나 영화, 음악 등 컨텐츠를 제작/개발 또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등으로 특성화되고 전문적인 차세대 미래형 단지로의 탈바꿈이 시급하다. 더 이상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비빔밥 문화 등 여러 가지를 융/복합화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훌륭한 DNA를 타고난 민족이다. 자신감을 갖고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차세대를 선점하는 혁신을 꾀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경주 본지 객원논설위원 (주)hub1 의장(전 삼성전자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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